▲ 설교본문
◇마태복음 13:1~9

마13: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마13: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마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마13: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마13: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마13: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마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마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ㅣ금천교회

▲설교전문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의 천국 비유입니다. 본문을 주의 깊게 상고해 보면 이 비유들은 단편적인 비유가 아니라 천국에 대한 7가지 골자를 각 비유를 통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비유들은 지상 천국인 교회의 생성과 발전 단계를 사실 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 교회의 건설(3~9절) -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느냐에 대한 비유가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교회의 건설은 파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여 복음을 듣는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대 다수의 사람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나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이 악한 자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돌밭에 덜어진 씨와 같이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받으나 환란이나 핍박이 일어나면 넘어지게 되고 어떤 이는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 와같이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 와 재리의 유혹에 갇혀 결신치 못하고 맙니다.

그러나 어떤씨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와 같이 말씀을 듣고 깨달음으로 30배 60배 100의 결실을 맺게 돕니다.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리고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린 것 같다”

교회는 의로운 자들만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회에 가라지가 있음을 빙자하여 교회를 심하게 비난 합니다. 밭에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자라는 것과 같이 교회 안에는 참 신자와 거짓 신자가 섞여 생활 하고 있습니다.

가라지를 발견한 종들이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을까요? 물었습니다. 그때 주인은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을까 염려된다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분 하기란 사람의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 합니다. 또 거짓 신자를 교회에서 제거 하려는 것은 지상 교회의 임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추수 때에 주께서 하실 일입니다. 알곡 가운데 자라고 있는 가라지를 가라지인 줄 알면서 재거하지 못하는 교회의 괴로움이 있습니다.

2. 교회의 성장(31~32절) - 교회 안에는 거짓 신자도 잠복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성장이 가능한가? 이를 설명하는 비유가 겨자씨 비유입니다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당시 그리스도의 복음 운동이 세상 권력 속에 극히 미미할 때에 제자들로 하여금 큰 포부와 뜻을 간직하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갖도록 교훈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복음 운동은 너무도 미미 했습니다.

갈릴리 어부를 중심하는 그들 에게는 정치적인 뒤 바침도 전무 하였고 물질도 사람의 수효도 능력도 모든 점에서 미미 했습니다. 그러나 그 미미한 단체가 겨자씨의 생명을 지녔고 누룩을 지녔습니다.

그러면 그 겨자씨의 생명력은 무엇이며 누룩의 생명력은 무엇입니까? 팔레스틴에서 흔하게 서식하는 일년생입니다. 그러나 팔레스틴 지방의 겨자는 3-4미터 크기의 키로 자라서 새들이 깃들일 정도라고 합니다. 천국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 가지 의미를 내포 합니다. 복음 운동은 미미하여 세상 세력으로부터 경시 당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날 교회의 시작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튼튼해지고 자라게 됩니다. 결국은 새가 깃들인다는 말과 같이 힘이 있고 영화롭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방법으로 교회의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억지로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 으로 세상 욕심으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느냐 참된 기도와 참된 전도 참된 교육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겨자 나무의 성장하는 비결입니다. 복음은 생명이 있는 겨자 나무와 같습니다.

겨자씨가 자라서 나무를 이루면 공중에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입니다. 여기 새는 성도에게 유익을 주는 새가 아닙니다. 유해무익한 새입니다.

이 비밀은 첫째로 비난과 곤고 속에 건설된 교회가 말지 않아 세속 주의와 타협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겨자씨와 같이 미약했던 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하면 새들이 깃들이기 시작합니다. 이때 교회가 속화 내지 부패 하지 않도록 진리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새들이 와서 시끄럽게 부산을 떨면 새 신자가 들어와 안식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가고 맙니다.

3. 누룩과 같이 변화시키자 

가루 서 말속에 적은 누룩을 넣으면 누룩이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루가 많아도 그 가루가 누룩을 가루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적은 누룩은 많은 가루라도 변화 시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변화 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에 공중의 새들이 둥지를 틀면 교회의 내부는 어떻게 되나? 누룩 비유가 해답을 줍니다. 이 비유의 가루 서 말은 교회를 가리키고 누룩은 교회를 부패케 하는 세속을 뜻합니다.

성경에는 바리새인의 외식의 누룩과 헤롯당의 속화의 누룩과 고린도 교회의 음행의 누룩을 조심 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교회는 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부패에 부패를 더하고 있습니다. 세상 풍조는 물결처럼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속화와 부패를 방지하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교회는 속화되어 복음 운동은 사라지고 마는가? 감추인 보화가 여기에 해답을 줍니다. 복음은 일시적으로 부패와 세속의 잡초 속에 파묻혀 매몰 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보화는 영원히 숨어 있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머리를 들고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땅속에 깊이 묻혀 진 보화라도 보화는 마침내 사람의 손에 찾게 되기 마련입니다. 세속과 부패 속에 감 추인 복음 진리는 발굴되고야 맙니다. 복음은 부패 속에서도 썩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세속적인 와중에서 중단 되거나 상해를 입지 않습니다.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극히 귀한 진주 하나를 만나매 자기 소유를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이 넓은 우주에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보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많고 많은 보화 가운데 가장 진기한 보화를 찾는 길은 성경에 묻힌 보화를 찾는 일입니다.

창세 후에 인간이 발견한 가장 값비싼 보화는 성경에서 발견한 복음 진리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느니라’하신 주님의 성경에서 발견하는 복음은 인간이 소유한 가장 고귀한 보물입니다.

농부가 보화가 묻힌 것을 발견하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돌아가 집과 모든 전토를 팔아그 보화가 감 추인 밭을 산 것과 같이 우리가 참으로 진귀한 보화란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지불하고 오직 하나님의 이 복음 진리만 독차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 보화는 무엇을 말합니까? 진리가 보화인데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신 보화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보화이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보화입니다.

‘진리는 요한복음14:6절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이란 말은 생명에는 거짓이 없다는 말입니다. 생명은 영원한 것이며 생명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리의 생명은 변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영원합니다.

마태복음 16:26절에 예수님께서 “온 천하보다도 생명이 귀하다고 하였습니다. 돈도 생명이 일을 때 필요하지 생명이 떠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명예도, 권력도 생명이 있을 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생명을 얻기 위해 진리인 보화를 부지런히 찾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도리를 따라 바람 부는 대로 적당히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다. 무엇이 보화입니까? 사랑이 보화입니다. 주님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가치 있는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사랑에 진실함이 있을 때 보화가 담겨진 사랑이고 희생이 뒤 따르는 사랑을 보화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은 희생적인 사랑이 어떤 것임을 보여 주신 것이고 가룟 유다가 도망치는 것은 희생을 회피한 것이요?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것은 자기희생을 감수 하지 못한데서 일어난 것입니다.

희생이 따르는 사랑만이 진정한 가치를 나타냅니다. 성경 잠언 23:22-23 너희는 진리를 사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탐구 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에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 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성을 사하리라.’ 진리를 사랑하여 수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살2:10에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사55:1에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진리는 댓 가없는 선물입니다. 사람 편에서 무료요 무대가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댓 가로 주어지는 선물이 진리요 보화입니다. 그러므로 이 선물은 값 비싼 하나님의 선물이요 이 선물을 받을 자격은 영적으로 가난한 자요 갈급한 자입니다.

스스로 부요하다고 하는 자는 이 진리의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살전 5:19 ‘성령을 소멸치 말고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진리를 팔지 말라는 말은 허비하지 말라

‘둘째 아들은 재산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거기서 허랑 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 하더니’ (눅15:13)

진리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였고 고후 6:1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 말씀에는 은혜 받는 태도가 진실치 못 함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또한 은혜 받는 자에게 결실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보화를 선물로 받은 자는 마땅히 감사가 따라야 합니다. 진정 감사를 아는 자는 그 은혜를 계속해서 보존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받은바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고 그 은혜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이 또한 진리를 파는 행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러 할지니라’ (잠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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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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