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달 월례포럼에서는 ‘종교와 정치’ 문제가 다뤄졌다. 이 포럼에서 김진호 목사(동연구소 연구실장)는 기독교의 교세 감소 원인을 진단하는 한편, 이와 맞물려 펼쳐지고 있는 기독교의 정치세력화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차분히 논했다. 본지는 그의 동의를 얻어 강연문 ‘교세 감소와 정치세력화, 위험한 만남’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배후―감소의 종교사회학

▲ 김진호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베리타스 DB

한국 개신교의 교세가 1990년을 전후로 하여 갑작스런 반전이 일어난 것은 1990년이라는 시간성에 대한 해석을 필요로 한다. 나는 변곡점으로서의 ‘1990년 어간’이라는 시간 해석의 중심 변수를 ‘민주화’와 ‘소비사회화’로 이야기한 바 있다. 여기서는 ‘1990년 어간’을 ‘1990년’으로 표기할 것이다.
 
한데 한국교회는 민주화 담론이 청산하고자 했던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그 체제만큼이나 전례 없는 급성장을 이룩했다. 뿐만 아니라 그 체제의 성장 중심적인 병영적 총동원체제(militarylike mobilization system)와 흡사한 성장 중심적 교회체제가 제도화되었다. 특히 이 두 체제는 영웅주의적 신화를 공유했고, 영웅적인 카리스마적 지도자에게 자원동원의 전권을 부여하였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한데 민주화는 영웅주의의 탈신화화 과정(de-mythologizing process)을 통해 전개되었는데, 교회는 여전히 변함없이 영웅주의적 체제 논리를 핵심적 가치로 견지하고 있었다.
 
1980년대 내내 벌어진 평신도와 목회자 간의 권력투쟁은 목회자와 그의 주변에 포진한 교회 엘리트 집단의 승리로 귀결되었고, 교회 민주화에 대한 담론은 1990년 이후에는 사그라들었다. 대신 교회체제 주변부에 이른바 ‘평신도교회’를 표방하는 작은 교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어간이다. 하여 주류 교회는 민주화 시대에 구시대의 찌꺼기와 같은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다.
 
더욱이 민주화로 인한 사회적 정치적 주권의식에 대한 감수성이 고도화되고, 소비사회화로 인해 ‘자신의 느낌을 솔직히 표현하는 자아’가 시대의 화두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교회의 모든 자원을 독점하는 상징적 이미지를 과대표하고 있던 목사는 참을 수 없는 부정적 캐릭터로서 인식되었다. 하여 직업으로서 개신교 목사에 대한 신뢰도는 급락했고, 교회는 구태스런 이들의 모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 안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으나 교회 주변부와 외부에서 그 신화는 붕괴되었다. 이제까지 교회 안팎의 많은 이들에게 좀처럼 포착되지 않던 교회에 관한 추문들이 많은 이들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목사의 도덕적 문제들, 기독교인들과 교회들의 무뢰한(無賴漢) 같은 태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부정적 모습들 등이 들춰졌다. 빠른 속도로 시민사회는 교회에 대한 호감을 철회했고, 민주화를 더 많이 추구했던 이들이 교회로부터 먼저 철수를 시작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의 붕괴를 의미했다. 교회에서 진보신학을 추구하는 대중이 사라졌다. 그리고 교회는 급속도로 보수화되었다.
 
특히 미국에 대한 순응적 태도와 북한에 대한 냉전적 태도는 교회와 민주화의 감각에 경도된 시민 간의 괴리감을 넓혀놓았다. 하여 청년층이 매우 많은 종교였던 개신교가 노년층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집단으로 전화하게 되었다.
 
한편, 소비사회가 진전됨에 따라 여가산업(lesure industry)이 발달하면서 교회 출석률이 낮아졌고, 특히 청년층을 끌어당기는 교회의 유인력이 현저히 감퇴했다. 교회는 과거처럼 모던공간으로 체감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공간처럼 여겨졌다. 또한 소비사회는 ‘자존성 강한 여성’이 등장하는 사회구조적 기반이 된다. 기든스가 말하고 있듯이 후기자본주의적 소비사회는 감성적 요소를 높은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중요한 자원으로 부상하게 했고 이에 따라 감성의 전문가인 여성에게 유리한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었으며, 이는 일부 엘리트 여성의 자존성을 향상시키는 사회구조적 요소가 되었다. 한데 이들 자존성 강한 여성들에게 교회는 전(前)민주적인 가부장적 문화가 여전히 지배적인, 쇠락한 공간으로 인식되게 했다.
 
마지막으로 1990년 어간에는 한국사회의 성장은 둔화되지만 사람들의 성공감각은 극대화되던 때였다. 5,6공 정권이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내구소비재산업의 비중을 높임에 따라 검약보다는 소비의 미덕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인식이 전환되기 시작했었고, 문민정부의 세계화 정책으로 금융시장이 개방되면서 시장에 유통되는 돈이 넘쳐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후기자본주의적 소비사회를 성찰할 틈도 없이 그 사회의 화려함과 풍요에 도취되어 있었다. 이 시기 종교인구는 전반적으로 성장 추세가 둔화되었다. 특히 종교인구의 상승을 주도하던 개신교의 성장 추이가 급격히 둔화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빈곤에서 풍요로의 전환을 신앙의 성공과 동일시했던 한국교회의 전형적 성장주의 담론이 1990년대 성공을 향유하던 대중에게는 덜 매력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이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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