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ㅣ금천교회

[기독일보] 오늘은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벌써 금년 한해도 반이 지나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도시 생활을 하다보면 농사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지금비가 와야 할 때인지 오지 말아야 할 때인지를 잘 모르고 지날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자연과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레위기 23:9~14을 보면 하나님이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년 유월절과 수장절과, 맥추절, 오순절을 기지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명령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지어 추수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 들에게 먼저 익은 곡식의 한단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간 광야에서 먹이신 만나는 첫 것을 바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자 손, 손이 누릴 수 있는 기업을 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절기를 지키라는 것은 그냥 먹고 마시고 잔치하는 명절날이 아닙니다. 명절을 지키되 모여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은 핵가족 시대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바쁩니다. 형제간에도 친척 간에도 자꾸 멀어 집니다. 오고 가는 것도 뜸 할뿐 더러 왔다가도 금방 돌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형제들의 동질성이 희박해 집니다. 가족 간의 동질성과 공동체 의식이 분산 되거나 약화되거나 깨져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명령 하십니다

"너희는 매년 맥추절을 지키라" 이 말씀은 매년 추수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진짜 감사는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 잘 할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 보아야 하늘의 위력을 알 수 있고 하늘의 고마움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 할 수 있습니다.

1. 메마른 도시 생활에서는 실감 있는 감사를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7:11-19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10명의 문둥 환자 들이 고침 받은 기사가 나옵니다. 다 고침을 받았지만 오직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감사하러 왔다는 사실을 생각해 봅니다.

이 병은 천형 병으로 사회에서 격리되어 살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로 병을 확증 받은 환자들은 격리 되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짧은 기간 이지만 가쳐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내 남편, 가족, 자녀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 죽겠다고 들 아우성 이었습니다.

이 문둥 환자 들은 기한이 없습니다. 아마 이때도 집단 탈출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그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난치의 병에서 순식간에 나음을 얻었으니 기절할 일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주님 나 좀 봐요 하면서 눈물을 쏟아 놓아야 할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홉 사람은 난 다 나았다 됐다, 됐어, 하면서 그저 좋다고만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 중의 한 사람만 예수님 앞에 큰 소리로 주님 다 나았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부르짖으면서 나은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고침 받은 자는 열 사람 이었는데 감사하는 사람은 한 사람 이었으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런데 오늘은 어떻습니까?

십분의 일 백분의 일 천 분의 일이나 될 런지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병 들었다 나은 것을 감사한다면 병 안 걸리고 건강한 것은 더욱 감사할 일이건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그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아무도 내게 나아와 영광을 돌리러 온자가 없느냐? 감사에 희박한 시대를 향하여 개탄 하실 것입니다.

2. 구원해 달라는 소리는 크되 감사하는 소리는 작습니다.

문둥이 10명이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는 소리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구원을 얻은 후에 와서 감사한자는 한 사람 뿐이었으니 그 소리가 큰들 얼마나 컸겠습니까?

어느 때든지 구원을 달라는 소리는 크고 "복을 달라" 뭘 해 달라는 소리는 크게 마련입니다.

여기 아홉 사람도 감사하는 마음이 전연 없을 수야 왜 없었겠습니까? 주님께 감사하는 다음에 해도 충분 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떠한 구실이라도 다 감사심이 미약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섹스피어의 시(詩)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불어라 겨울바람아.
너는 감사를 모르는 사람같이
무정 하지는 않다.
네 호흡은 거칠지라도
네 이빨은 보이지 않아 날카롭지 않다 .
불어라 불 어라 찬바람아 너는 배은 하는 것처럼 사납지는 않다.
비록 물은 얼게 하나 네 쏘는 것은 친구의 은혜 망각함 같이 아프지는 않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쌀쌀하게 부는 겨울바람 보다 더 무정하고 물을 얼개 하는
쏘는 바람 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3. 받은 은혜는 크나 보답은 적습니다.

어떤 천주교인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기도하기를 "주님이시여 이 위기에서 건져 주옵소서. 만일 물에서 건져 주시면 육지에 가면 돛대만한 촛불을 드리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행이 구조가 되었는데 그가 상륙하여 성당에 가서 드리는 촛불을 보니 손가락만 한 것을 드리더랍니다. 그래서 자기도 그것을 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들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 아닙니까?

받을 때 같아서는 이 다음에 몇 배로 갚겠다고 서원 기도를 합니다. 몸을 드리겠습니다. 시간과 물질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받아 놓은 다음에는 마음이 변합니다. 이 다음에 하지 이렇게 됩니다.

이렇게 미루다 보면 내일이면 반감이 되고 몇 날이 지나면 십분의 일 20분의 일하다가 좀 더 지나면 아예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외상이 없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사형 언도를 받았는데 살아날 길이 단 한길이 있다고 합시다.

너희 재산을 다 내어 놓으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무어라고 대답 하겠습니까? "목숨만 구해 주십시오." 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에게 있어서는 목숨이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주님은 그 귀한 목숨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지옥의 사형에서 풀어 놓아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북에서 홀로 월남해온 배 기동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젊은 날에 고생하며 울던 과거를 생각하며 성림 고아원을 설립했는데 그 고아원을 거쳐 간 고아 들이 상당수 성공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보람을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서운한 일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자기를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이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사람이 마음이 메마르게 되면 그 마음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좋은 환경을 주시고 축복을 주셔도 이 땅의 집집마다 가보면 감사보다는 원망과 시비 갈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환경이나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많이 가졌거나 적게 가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감사함을 발견 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도시 산업 사회에서 살다보니 가슴이 자꾸 메말라 갑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큰 것을 주시고 좋은 것을 주셔도 그 의미를 모르고 고마움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감사의 기도가 나올 수 없습니다.

하박국 3:17을 보면,

"비록 무화과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없고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인간의 생존이 위협 받을 만한 한계 상황이 오고 죽음의 위기가 닥쳐 온다해도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감사의 충분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현대어로 표현해 보면 '직장을 잃었으나 마땅한 일 자리는 없고 처자식이 굶주리고 있지만 먹일 양식이 없어도' 이럴 때에라도 감사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감사인데 하나님은 이러한 감사를 외면 하 지 않으십니다.

세상은 다 그렇게 살아간다고 해도 택함 받은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골로새 3:12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단점이 있다면 어려운 환경에 있을 때에 받은 은혜를 잘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면 그렇게도 부르짖다가 막상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또한 자기의 노력이 자기의 힘으로 성공하고 출세한 줄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은 스승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고 자녀는 부모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듯이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범사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맥추감사 주일에 임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장 좋은 감사는 받아서 하는 감사도 훌륭하고 깨달아서 하는 감사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좋은 감사는 범사에 믿음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서 나타 날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믿음이 척도 입니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말은 무엇을 근거로 말하는 것입니까? 감사하는 것을 보면 그 믿음을 측정 할 수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너희는 감사 하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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