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신학단상' 은 평신도들의 신학적 소양 함양(涵養)을 위해 각종 행사 등에서 신학자 및 목회자들의 발제문을 뽑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난 9일 '성소수자(LGBT) 인권운동에 대한 비평'을 주제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3회 탈동성애 인권포럼에서 발표한 홀리라이프 대표 이요나 목사의 '성소수자 인권문제의 꼼수 비평과 대응(기독교적인 관점)'을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이요나 목사(탈동성애미션센터·홀리라이프 대표)

■ 동성애와 퀴어 문화축제

오는 6월 9일 서울의 심장 서울광장에서 제16회 퀴어문화축제 (Korea Queer Festival)가 국제적인 규모로 개최된다. 해마다 진화되어 온 저들의 축제는 이제 세계 각국의 동성애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미국 대사관을 비롯하여 유럽연합, 프랑스 대사관과 구글을 비롯한 다수의 국제기업이 참여한 가운데 1만 명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이 말하는 동성애자 축제에서 백미는 동성애자들의 광란의 포퍼먼스로 펼쳐지는 '퀴어퍼레이드'다. 이미 우리는 작년 유월, 신촌 대학가에서 펼쳐진 동성애자들의 포퍼먼스를 두 눈을 뜬 채 보아야 했다. 저들은 감히 부부의 침실에서도 입기에 민망한 팬티 차림으로 고막이 터져라 괴성을 지르며 신촌 대학가 구석구석을 카 퍼레이드로 질주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저들의 광란의 횡포를 보고 있는 젊은 참가자들의 반응이다. 마치 유명 연예인들의 축제를 보듯이 손뼉을 치며 즐기는 모습들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도덕과 윤리를 뽐내던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와 있는 것인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성직자로서 이 시대를 사는 것이 죄인 된 기분이다.

■ 성소수자들의 슬로우건

저들의 지난해 구호는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이며, 올해의 구호는 "사랑하라, 저항하라, 퀴어 레볼루션(Revolution)"이다. 올해는 좀 더 공격적인 용어 '혁명'이란 단어를 사용하였다. 저들의 전략은 기독교의 중심 사상인 '사랑'이라는 단어를 통해 교묘하게 기독교를 공격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의 성적탐욕을 '동성애'(Homosexuality)가 마치 성경이 말하는 '사랑' 인 것 같이 포장한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동성 간의 성행위가 저들의 말대로 사랑에 범주에 속한 것인가를 논증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에 대한 성경적 정의는 결코 성적쾌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 성경이나 우리말 성경이나 '사랑(LOVE)'이라는 단어는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기록될 당시 사용된 헬라어를 영어나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는데 있어서 언어의 표현 부족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우리말 성경에서 '사랑(LOVE)'이란 원어 헬라어는 그 대상과 상황에 따라서 '아가페' 곧 하나님의 사랑 '필레오' 곧 사회적 우정 '스토로게' 곧 부모의 사랑, '에로스' 곧 '남녀의 애정관계 등으로 나누어진다. 그 만큼 헬라어는 사랑에 대한 많은 표현 어휘를 갖고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성경에서 남녀 간의 성적 애정관계를 뜻하는 '에로스'는 한 번도 기록되지 않았다. 아가서에 에로스의 개념은 있어도 에로스가 뜻하는 남녀의 애정행위를 뜻하는 단어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저들이 말하는 동성 간의 '사랑'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만약 그들이 말하는 바 동성연애가 성경적 '사랑'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수간'이나 '음행', '간음', '수음'도 모두 사랑에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다.

두 번 째로 저들은 '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저들이 사용한 '혐오'라는 단어도 구약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가증'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성경의 언어를 들어 기독교가 사회적 약자에 속한 성소수자들을 혐오한다고 홍보하기 위한 공격용 구호이다. 그러나 저들이 사용하고 있는 '혐오'라는 단어는 신약의 복음의 은혜 시대에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다.

혐오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한 인간으로서 행할 수 없는 죄악 곧 하나님께서 '토해낼 정도로 인간의 가증한 행위'를 뜻하는 종교적이고 율법적인 용어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비롯한 우상숭배와 음행과 간음과 같은 인간의 패역한 행위를 가증하다 하셨고 혐오하셨다. 따라서 저들이 교회를 공격하기 위해서 성경의 혐오를 사용한 것은 자신들의 변태적인 동성섹스가 토해낼 만큼 가증한 행위임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저들은 성경의 온전한 뜻을 헤아리지도 못하고 또한 전후좌우 문맥을 참조하지 않고 사랑과 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을 혐오하는 단체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의 이러한 수법은 이미 하나님의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 아담과 이브를 넘어뜨릴 때 사용한 수법이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타난 사단이 사용한 수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라고 경계하였다. 이처럼 오늘날 동성애자들은 성경적 용어를 이용하여 기독교를 공격하는 것은 성스러운 종교활동을 훼방하는 반 종교적 행태인 것이다.

■ 성소수자, 갑질 논쟁

얼마 전 한국 최초로 공개적으로 동성연애자의 결혼식을 올려 비합법적인 동성연애자 부부가 된 김조광수와 김승환이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성소수자 혐오와 관련해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의 발표는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동성애 확산을 염려하는 기독교에 대한 선제 공격이라고 볼 수 있다.

헌법의 명시된 혼인법을 어기고 남자와 남자가 결혼식을 올린 자들이 동성연애를 권장하는 비윤리적 문화행사를 반대하는 기독교를 대상으로 총을 겨눈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종교적 활동에 대해 오히려 불륜행위자들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말이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오로지 양성에 기초한 혼인만을 결혼으로 인정하고 있다. 헌법 제36조 1항에서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명시하여 혼인이 남자와 여자, 즉 양성에 기초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지금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전분투하고 있다. 따라서 동성결혼문제로 기독교를 공격하는 것은 헌법을 파괴하는 범죄행위와 같다.

또한 저들이 사용하고 있는 무기는 바로 '성소수자'라는 용어이다. '성소수자'라는 단어는 신조어로 한국어 위키백과의 성소수자에 대한 정의를 보면 사회적 다수인 이성애자와 비교하여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들을 성적지향과 성정체성과 관련된 소수자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여 자기들을 정상적인 성생활을 사람들을 대비하여 자신들을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다.

저들의 의도는 정상과 비정상을 대비하여 자기들은 '소수자' 곧 '사회적 약자라'라고 지칭하여 사회로부터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는데 있다. 이를 위하여 그동안 저들은 동성애는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처럼 타고난 성적지향이라고 홍보하며 놓고 동성애의 패역함을 증거하는 기독교와 '갑질'과 '을질' 논란 구조를 만들어 메스컴의 조명을 받도록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저들이 자신들을 마치 사회적 약자처럼 미화시키려는 '성소수자'를 바르게 정의 할 필요가 있다. 성수자란 영어로 "LGBT"로서 '레즈비안' 곧 '여성동성애자', '게이' 곧 '남자 동성애자', '바이섹스' 곧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곧 '성전환자'를 지칭하는 영어의 이니셜이다. 즉 비윤리적인 불륜행위들의 이니셜만을 사용하여 홍보하므로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국민들이 그들이 말하는 성소수자 곧 LGBT가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성행위이며 자연의 섭리에 역행하는 성행위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건전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추구하며 자녀의 장래를 염려하는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절대로 저들을 사회적 약자라고 보지 않을 것이며 LGBT라는 이니셜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혐오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 성소수자의 용어적 고찰

저들은 '성소수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교묘하게 자신들이 약자라는 인식을 갖게 하고 '보수 기독교'라는 강자가 약자를 탄압하는 구조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유도하므로 친동성애 단체들은 인권을 존중하는 단체로 보이게 하는 반면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는 성소수자 혐오단체로 인권을 유린하는 단체로 분류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인권위에서 조사한 성소수자에게 비우호적이라고 느끼는 영역은 군대(86.9%), 개신교(86.8%), 정부(83.1%), 국회(81.9%)로 나타내고 있다. 통계자료를 볼 때 비우호적이라고 묶은 기관의 비율의 결과는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따라서 보편적인 사람들조차 소위 저들이 말하는 성소수자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저들은 유독 기독교만을 지목하여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기관들은 공권력과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려워 여론화 하지 못하고 힘없는 기독교를 집중 공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저들은 '성소수자', '사랑', '혐오'라는 용어로 자신들을 사회적 약자인 것처럼 교묘하게 위장하여 본질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저들은 "차별금지법"을 통해 일반인들의 공감을 얻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저들은 '차별금지법' 안에 '성소수자', '성적지향'이라는 동성애 용어를 교묘하게 삽입하여 동성애를 반대하는 국민을 인권유린자로 규정하고 감옥에 보내는 일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목표로 한 일이다. 기독교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면 이를 이용하여 기독교가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탄압하는 집단으로 부각시켜 나가는 것이다.

즉, 불륜의 단체가 정의의 단체를 인권을 탄압하는 집단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용어 사용을 선점한 것으로 볼 때 친동성애 단체들이 얼마나 치밀한 계획을 갖고 대응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들의 치밀한 준비와 계획들로 이미 인권이란 미명 아래 제일 먼저 국가인권위원회를 장악했고 국가기관의 공권력을 통하여 언론기관과 행정기관의 내부 강령에 성소수자 정책을 삽입하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초중고 교과서에까지 친동성애적 내용이 들어가도록 하는데 성공하여 자라나는 세대들을 친동성애자들로 세뇌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전도와 부흥에 몰두하고 있을 때 친동성애 단체들의 정부산하 단체와 언론기관 교육기관 산하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으로 침투하여 기독교가 사람을 혐오하고 인권을 무시하며 소수자를 차별하는 곳으로 인식시키는데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들의 궁극적 목적은 기독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끊임없어 사회적 약자를 돌봐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와서는 사회적 약자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짓밟는 문제가 많은 집단으로 사회적 낙인을 찍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간신히 무산시킨 서울시 인권헌장을 살펴보면 '서울 시민은 성별, 종교, 장애......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병력 등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제정하려하였다. 이 부분에서 언급된 '성적지향'이란 단어는 매우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다. 이 단어 속에 친동성애자들의 음모가 숨어 있다. 사실 법이나 헌장은 대부분의 조문을 그 내용에 있어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고 포괄적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의 안녕질서를 위해 만든다는 법조문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포괄적으로 설정하면 극단적이긴 해도 소아성애 지향성이나 짐승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지향자들에 대한 대항력도 상실될 수밖에 없다. 만약 성적지향을 내세운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권력층에 있는 자들이 변태적 성추행이나 혐오스러운 행동을 하고서도 버젓이 지도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성소수자의 인권문제의 정치화

동성애에 대한 이러한 이슈들은 기독교에는 치명적인 반면에 성소수자의 인권과 관련된 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의로운 사자와 같이 인식이 되어 정치적으로 급부상할 수 있기 때문에 헌장제정이나 법제정 추진에 앞장서고 있다. 그런 이유로 진보좌파 정치인들은 항상 동성애 문제를 이슈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시민헌장이 제정되든지 안되든지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든지, 안되든지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사회적 약자를 도왔다는 반사적 이익만 얻으면 지지층의 박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종북정당으로 규정되어 해산당한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에는 소수자를 차별했을 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사실 우리 헌법에는 외부의 압박에 강제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가 있다. 그렇다면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다수의 양심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생각해 봐야한다. 만약 동성애를 반대하는 다수의 국민들이 잠잠하고 저들의 막무가내식 인권주장을 그대로 법제화 한다는 이 나라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특히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계에 재갈을 물린 상황에서 누가 온전한 양심의 소리를 낼 수 있는가? 오히려 소수가 '갑'이 되고 다수가 '을'이 되어 질질 끌려 다니게 되고 말 것이다. 이미 이러한 현실이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 동성애 코드와 동성애 정책의 문제점

오늘날 염려되는 것은 동성애 코드의 확산과 국가의 잘못된 동성애 확산정책이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바 종말의 날의 악한 영들의 역사이다. 그만큼 적그리스도의 시대가 성큼 다가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성애 코드는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이미 유럽에서의 동성애는 일반화 되었고, 청교도 신앙으로 시작한 미국마저 동성애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서 마지막 보루처럼 버티던 동성애상담 전문사역 그룹 "International Exodus"은 38년의 막을 내림으로 미국교회의 자존심마저 무너져 버렸다. 이로서 우리는 동성애의 배후세력들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정치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알 수 있다. 이미 서방국가와 미국은 동성애결혼이 합법화되었다. 아직 몇몇 주정부들이 버티고 있지만 그들도 언제 무너질지 예측할 수 없다.

선교대국으로 자리매김을 하던 거대한 기독교 국가 미국이 이처럼 무너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제 동성애 문제는 한국교회의 몫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최종병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한국교회가 연약해지고 있다. 한국교회가 갈수록 복음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성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기독교적 제안

저들은 이미 성소수자의 인권을 빌미로 국가인권위를 장악했고 '언론보도준칙'이라는 장치를 통해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은 보도되지 않도록 언론에 재갈을 물렸고 지자체별 시민인권헌장과 초중고 교과서에 친동성애 코드를 심었고 심지어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에이즈 확산 관련 통계들을 발표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방대한 부분에서 손을 뻗치고 있다.

만약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면 동성애 결혼은 물론 모든 행정 입법 사법기관을 통하여 기독교를 압박할 것이다. 이미 교회의 위상을 상실한 유럽과 미국을 보라. 동성애를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가고 억 단위의 엄청난 벌금을 물고 있다. 목회자들은 더 이상 동성애자들을 설복할 명분은 고사하고 동성애자 목사안수 거부와 동성애자의 결혼식 주례를 거부할 명분조차 상실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일한 상황이 오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자들을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혐오하거나 비인간적인 태도로 대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이 헌법에 보장된 인권을 보호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인권은 오히려 다수의 인권이 훼방을 받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마저 봉쇄당하는 잘못된 인권이라는 것이다.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지향의 문제들이 타고난 것도 아니고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약 성소수자들이 주장하는 인권이 법적으로 보장된다면 그들보다 더 소수자에 해당하는 탈동성애자들의 고백이나 삶의 증거들이 원천 봉쇄당하고 더 나아가 탈동성애지향자들과 그 가족들이 실의의 빠져 탈동성애의 길을 포기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또한 목회자들은 성경적 관점에서 동성애를 언급할 길이 원천 봉쇄되어 법적으로 보장된 종교활동에 훼방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는 단지 기독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성애를 반대하는 모든 종교계, 모든 국민이 당해야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 성소수자의 인권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그 해답을 동성애로부터 회복한 증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동성애자들에게 있어 최고의 인권은 탈동성애이기 때문이다. 탈동성애의 길이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 탈동성애의 증인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고 또 어떤 사람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누구든지 동성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누구든지 탈동성애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지금까지 만나 상담을 했던 '탈동성애지향자'(동성애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일천 명이 넘는다. 기독교 안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찾고 있겠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상태가 노출될까 두려워하며 하루 속히 동성애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고 있다. 그런데 만약에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면 이들의 소망은 원천 봉쇄되어 죽기보다도 싫은 동성애자의 생활을 하며 지옥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는 탈동성애를 소망하는 탈동성애지향자들의 인격을 말살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성애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고 사회생활 속에서 어떤 위해 당하지 않도록 보살펴 주는 동시에 그들에게 탈동성애의 정의를 바르게 가르치고 해결될 수 있는 길을 자유롭게 모색할 수 길을 열어 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동성애의 거대한 물결을 막기 위해서는 탈동성애자들의 국제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홀리라이프는 오는 6월 9일 '퀴어문화축제'로 전 세계 동성애자들이 서울광장에 모이는 그날 프레스센타 기자회견장에서 오늘 포럼에 참석한 일본의 하사하라 디모데씨를 비롯하여 미국의 제임스 톰슨, 크리스토퍼 유한, 데니스 저니건, 캐나다의 브라이언 클라워, 호주의 닉 쿠이퍼, 싱가폴의 레슬리 룽, 필리핀 온 글라스 등, 전 세계의 탈동성애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 탈동성애인권 개선을 위한 <탈동성애인권국제연맹> 결성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향후 탈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위해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계와 서구의 타락한 비윤리적 성문화인 동성애의 확산을 반대하는 모든 국민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또한 탈동성애인권 개선을 위한 일에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여 국회, 정부, 법원, 언론 등 모든 공적기관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한다.

발제ㅣ이요나 목사(갈보리채플 서울교회 담임·홀리라이프 대표)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신학단상 #성소수자 #성소수자인권운동 #이요나목사 #탈동성애인권포럼 #동성애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