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7: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행7: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행7: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행7:41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행7:42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행7:43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행7: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행7: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이선규 목사ㅣ금천교회

비전을 안은 개인이나 민족과 국가는 반드시 살아남으며 번영합니다. 그러나 비전이나 꿈이 없는 개인이나 민족은 쇠잔 합니다.

꿈은 언제나 활력을 자아내는 어머니가 되기 때문입니다.

본래 세상의 교회는 완전한 교회가 아닙니다. 천국의 그림자 입니다. 천국에서는 꿈이 필요 없습니다. 그 곳은 꿈이 이미 완성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교회는 아직 꿈이 미완성된 곳이기 때문에 꿈을 가져야 함이 당연한 것입니다.

마치 오늘 세상의 교회는 본문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교회와 같습니다. 그 광야 교회는 장막 교회로써 꿈을 가진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오늘의 교회의 모체입니다.

구약의 장막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로 번역 되었습니다. 이 에클레시아는 헬라 사람들이 모이는 공회당 이었습니다. 현재 이 말이 영어로cherch로 번역 했습니다.

광야 교회가 가나안 예루살렘 시온성에 세워진 표상 이었던 것과 같이 오늘의 교회는 신령한 가나안 예루살렘에 세워질 천국 교회의 표상입니다.

이제 그 광야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교회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광야 교회는 애굽에서 나온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로 이루어진 교회입니다.

오늘의 교회도 택함을 받고 부름을 받아 세상에서 나온 그리스도인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광야 교회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하는 집단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교회를 예수님의 몸이라고 할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통치자라는 뜻입니다.

에베소서1:22절에 그리스도를 가리켜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통치권이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 질 때 모든 것이 충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 통치자로 모시고 그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교회는 충만한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권위 외에는 어떤 인간의 권위도 배격하는 교회 그 교회만이 충만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광야 교회는 사람들만이 모이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늘 임재 해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곳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 드렸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늘의 교회도 단순한 사람만 모이는 교회당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령이 임재 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중에 내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에서 기도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영혼이 병든 자는 고침을 받습니다. 마음이 괴로운 자는 평안을 얻습니다. 슬픔을 당한 자는 위로를 받습니다. 죄를 지은 자는 회개하면 정결함을 받고 용서 받은 의인이 됩니다.

교만한 자는 겸손해 집니다. 무정한자는 사랑을 배우고 이기주의의 탐욕의 사람은 봉사를 배웁니다. 괴로운 인생길에서 심령이 목말라 허덕이는 나그네 들이 해갈과 안위를 얻는 천국 모형을 경험 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교회에 나와 그리스도를 만나고 소망과 위로를 가지며 천국의 생수를 마음껏 마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과 7장을 보면 세 가지 큰 진리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네가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 하신대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의 설교를 하실 때에 호기심에 잠긴 여인은 그 물을 달라고 간청 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물을 마시기 전에 할 일은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 여인의 행위를 아시고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원하십니까? 숨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 하여야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마시는 방법 이는 믿는 사람이 받을 성신을 가리킴이니 (7;39)
첫째는 믿는 것입니다. 물을 마시려면 그릇이 필요 하고 생수를 마시려면 믿음이 필요 합니다. 오늘 사람들은 성령을 눈으로 귀로, 코로, 몸으로 받을려고 합니다.

이 여인에게 주님은 여인아 나를 믿으라 하셨습니다. 믿음은 나와 주를 연결하는 수도관입니다. 저수지의 물이 통하여 송수 됩니다.

생수도 믿음의 관을 통하여 임합니다.

그리고 '솟으리라.' 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 곱의 우물을 생명수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숭배 하거나 물질을 숭배하는 자 야곱의 우물에 물 긷는 수고와 같은 것입니다.

이 수고는 암만 하여도 헛된 것 뿐 입니다.

주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물은 속에서 솟아나는 물입니다.

내가 주는 물이 그 속에서 샘이 되어 영생 하도록 솟으리라. 이 물을 마신 자 마다 그 속에 서 또 샘구멍이 터져서 길이 마르지 않고 솟아나옵니다. 이 물은 어디든지 흐르는 물입니다. 동으로 트면 동으로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흐릅니다. 성령도 빈부귀천 남녀노소 가리지 않습니다. 물의 근원이 높으면 높을수록 높고 멀리 흐릅니다. 말세에 이 생수를 물 붓듯이 부어 주십니다.

주님은 목마른 자 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지금 이 강산은 생수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많은데 생수는 말라가고 있습니다.

심령들이 생수를 찾다가 찾지 못하니 웅덩이 물을 찾아 놓고 이것이 생수라고 떠듭니다.

생수 대신 독수를 마시고 신음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교회는 이 생수가 공급되는 교회되기를 소원 합니다.

광야교회는 낮에는 그름 기둥과 밤에는 구름 기둥이 인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오직 그 기둥이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가야만 했습니다.

우리교회도 구름 기둥과 같은 말씀 진리, 불기둥과 같은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도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말씀과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만일 성령의 역사가 끊어지고 말씀이 중지되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로 정지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말씀과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전진해 가는 교회여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이 어디까지 인도 하든지 우리는 다만 순종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을 따라 움직였을 때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애굽을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원망과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모세를 거역하고 불순종 하며 하나님에게까지 반역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 쓰러져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의 인도로 살지 아니하고 애굽과 같은 세상을 생각하며 지난날의 육신의 정욕을 쫒던 때를 생각하며 신앙생활에 원망과 불평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며 자기 멋대로 살아가면 그 영혼은 죽고 말 것입니다.

말씀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하늘가는 밝은 길을 보여주며 공명정대한 길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거기에 따라 순종 할 것뿐입니다.

말씀이 복음을 전하라하면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말씀이 주일 성수 하라 하셨으면 교회는 주일 성수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으면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이 소금과 빛이 되라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합니다.

북한 선교 다 문화 선교 하라 하시면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순종하고 따라 갈 때 그 교회는 꿈을 실현하는 교회 변화하는 교회 장성해 가 는 교회 생명이 넘치는 교회 활력이 약동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광야 사십년간의 노정에서 여러 차례 적과 싸웠고 고라의 자손과의 내란과 싸웠고 아랏 왕 아몰 왕 미디안 군대 가나안에 갈 때 까지 싸웠습니다.

그러나 싸울 때 마다 광야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온 세상에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의 교회도 전투적인 교회 이어야 합니다. 땅 위에는 교회의 원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권세 불의와 죄악 부정과 부패 우상, 타락의 풍조 온갖 사탄의 세력들이 교회를 향하여 끊임없이 도전해 옵니다.

교회는 이런 악의 세력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불의한 세력, 우상과 기타 죄악을 이 땅위에서 추방해야 합니다. 교회는 약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부정과 불의 모든 죄악의 세력을 추방하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신자 한분 한분이 기도하는 일입니다. 나 자신을 말씀 앞에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을 바라보고 전진하여 나갔듯이 천국의 환상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천국 환상을 가지지 못한다면 이 땅에 교회가 존재 할 의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천국 환상을 바라보고 잠시 훈련을 받으며 준비 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가 천국 환상을 가지지 못 한다면 한다면 존재의 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봉사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이 궁극적 목적이 아닙니다.

교회의 궁극적 목적은 부름 받아 나온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주어 영혼을 구원하며 이 들을 완성된 영원한 천국 교회에 옮기 우기 위해서 세상과 천국 중간에 잠시 머물러 있으면서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저 동토의 땅에서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고 자유도 누리지 못 하 는 북한의 우리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저들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해 오다가 시련이 잠 시 머물다가 이번에 다시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사명을 감당 할 때 우리 교회의 존재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소망과 꿈이 없다면 우리는 허무 할 것뿐입니다.

이제 앞으로 주님 오실 때에 마태복음 25장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듯이 교회는 신령한 가나안으로 들리 워 올라갈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 교회의 비전이고 꿈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이 소망이 가득한 교회로 믿음으로 열심히 훈련과 연단을 받아 하나님 나 라 생활을 익히고 훈련을 쌓아 갈 것입니다.

이 꿈을 간직한 교회 많은 생명을 건져 내기 위하여 꿈을 펼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질적으로 양적으로 부흥 되어야 할 것이고 지역 복음화는 물론 이어니와 중국 선교 세계 선교 북한 선교에 까지 확장 시켜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많은 생명을 건져 내려는 환상을 가진 교회가 되게 하십시다.

이를 위해 이제 다 문화 선교 센타를 중심해서 온 교우들이 믿음으로 하나 되어 잡음이 없이 하나님 뜻을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이일을 위해 거룩한 일에 우리의 건강과 재능 시간 물질 낭비할 수 있는 성도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에 목숨을 거는 성도가 나오게 되기를 소원 합니다.

그러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과 투자를 성별하여 그것들을 드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목적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글ㅣ금천교회 이선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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