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통합이 주최한 광복 70주년 세미나 모습.   ©이동윤 기자

[기독일보 이동윤 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총회(총회장 정영택 목사)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3·1운동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광복 7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열고 3.1절의 기독교적 의미를 되돌아 봤다.

이번 세미나는 개회예배에 이어 장로회신학대학교 임희국 교수과 이치만 교수, 부산장로회신학대학교 황홍렬 교수가 발제했고 호남신학대학교 강성열 교수가 논찬을 담당했다. 개회예배는 서기 김순미 장로의 인도로 부총회장 박화섭 장로가 기도를 부총회장 채영남 목사가 설교를 전했다.

◆ 3.1운동 독립선언서 속 평화사상의 의미 = 임희국 교수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본 3·1운동의 평화사상'이라는 제하의 발제에서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그 당시 한국 기독교(개신교)의 역사는 불과 40년이 채 되지 못했고 또 교세도 25만명 정도였다"며 "이 정도의 작은 종교단체였던 기독교가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민족의 독립을 위해 3·1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당시의 기독교는 대단히 강한 조직체였고 전국적인 조직 맥망이 있었으므로 신속하게 움직이며 이 운동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임 교수는 또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평화사상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했다.

그는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 선포된 평화사상은 그 당시 국제 정세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그 배경에 깔려있었다. 즉 식민지배 아래에서 신음하는 약한 민족들이 러시아 혁명과 독일 혁명에 자극을 받아 독립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던 그 시기에 일어난 것이 한국 민족의 독립운동이었다"면서 "이에 3·1운동은 일제의 식민지배의 부당함과 그동안(1910~19)의 학정을 온 세계에 알리면서 세계의 개조를 주장했다. 세계의 개조란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제국주의 약육강식의 세상이 종식되고 정의와 인도에 기초한 민족자결을 통해 이루는 평화의 세상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이어 "그 평화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고 이미 구한말 시대의 삼화사상과 정족평화론에 기반한 동양평화였고, 정족평화론에 기초한 기미년(1919) 3·1운동은 국내외에서 거주하는 한민족의 평화운동이라 해석할 수 있다"며 "3·1운동의 평화사상은 성경의 평화(샬롬, 에이레네)와 조화를 이루며, 특별히 구약성경 이사야서 11장에 선포된 평화와 3·1운동의 평화사상이 서로 상응되고 일치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임 교수는 "그러나 이 평화운동은 3·1운동 당시에는 한국의 독립으로 성사되지 못했고 국제정세 또한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다"면서 "이로써, 이 평화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야 이뤄진다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광복 70주년과 분단 70주년을 맞이해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세계의 평화가 보다 더 절실한 2015년도 3·1절에 우리는 하늘로부터 종말론적으로 임하는 평화를 기다리고 있다. 세계 모든 민족과 나라가 상호 평등한 지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각각 자유를 누리면서 서로 연대하고 연합하는 정의로운 평화가 오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 3.1운동에 있어서의 기독교의 역할 = 이치만 교수는 '3·1운동과 장로교의 역할'이라는 발제를 통해 삼일운동에 있어서의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 전했다.

이 교수는 "삼일운동에 있어 기독교의 역할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며 "그것은 신민회의 연계성, 민족운동의 대중화, 기독교인의 정치의식 분화 등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신민회에 있어서 기독교와 관련해 주목할 점은 서북지방의 기독교인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는 신민회 결성의 주도적인 인물인 안창호가 서북지역 출신 기독교인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서북지방이 기독교가 왕성한 지역있었다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신민회 출신의 기독교인들은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신민회의 조직력과 국권회복의 정신은 삼일운동에 있어서 기독교계의 활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신민회는 비록 기독교를 표망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인에 의한 사회운동의 맹아로써 역할을 했고, 이러한 선구적인 노력이 면면히 계승돼 삼일운동에 있어서의 기독교인의 활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이 교수는 "삼일운동에서의 기독학생 및 기독여성의 활약이 두르러졌다"며 "기독교계 학생들은 근거지에서 선언서의 배포 및 복제에 참여하거나 귀향에 의한 원정시위를 주도하는 등 만세시위의 확대에 크게 기여했고, 기독여성들은 만세시위 뿐만 아니라 비밀결사를 조직해 수감자 및 그 가족을 원조하거나 임시정부를 위한 의연금 모집 등에 활약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삼일운동에 있어서 기독교계의 특징은 정치적 현실주의였다"며 "삼일운동의 과정에서 기독교인의 정치의식이 분화돼 나타났는데 완전독립을 통한 민주공화국 건설의 입장과 또 하나는 현실적 지배세력을 인정하면서 자치를 통한 점진적 독립국가 건설의 입장이었다. 이는 향후 기독교 민족운동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다"고 전했다.

◆ 자기 부정으로 민족의 십자가 진 교회 = 황홍렬 교수는 '3·1정신과 한국교회의 평화선교와 평화통일을 위한 과제'라는 발제에서 "정교분리의 입장에 서 있던 한국교회가 3·1운동에 참여하고 주도하게 된 것은 식민지 상황에서 핍박을 받던 교회가 기도와 성경읽기를 통해 3·1운동에 대한 참여와 천도교와의 연대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적 결단이 있었다"며 "이로써 한국교회는 자신의 신앙양태(정교분리, 근본주의 신앙)를 부인하고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는 민족과 연대함으로써 민족의 교회로 거듭났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한국교회가 이러한 결단을 하게 된 것은 민족해방적 성서해석학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1907년 대부흥운동을 통한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 확립이 이뤄지고 105인 사건을 통해 역사적·사회적 사건에 참여하는 신앙적 성숙이 이뤄졌다"며 "이런 사건들이 토대가 돼 정치적·사회적 운동과 해방적 영성의 만남이 3·1운동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그렇지만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3·1운동을 실패로 규정하고 좌절 속에서 기독교의 신앙양태가 초월적 신비주의와 계몽운동으로 분화됐고, 전자는 부흥운동과 오순절운동으로 확대되고 후자는 사회선교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3·1운동의 평화사상은 민족의 독립과 자주가 동양평화와 세계평화와 필수적으로 연계되며 그 바탕에는 인화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은 에큐메니칼 운동(교회의 연합과 일치, 남여협력, 청년과 학생의 참여)과 종교간 연대 및 비폭력 평화운동의 방식"이라며 "3·1운동의 한계로는 교단적 참여가 아닌 개인적 참여였으며, 엘리트 중심적이었고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인한 일본교회의 한계동양평화 건설에 응답하지 않는 일본인과 일본국가"라고 전했다.

한편, 예장 통합총회는 올해 '민족공동체의 치유와 화해, 평화통일을 위한 2015'라는 주제로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일 '2.·8 독립선언 및 3·1운동 기념 횃불기도회'를 개최했고, 이번 3·1운동 기념 세미나에 이어 3월 1일 '3·1절 공동예배'를 비롯해 새터민 희망캠프, 세월호 유가족 위로예배,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예배 및 故 문용동 전도사 순교기념예배, 독도 영토수호 대책 세미나 및 국제기도운동, 62주년 6·25 한국전쟁 평화기도회, 민통선 평화순례, 광복 70주년 기념예배, 광복 70주년 기념 평화의밥상 등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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