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농아학교의 성폭행 실태를 고발한 공지영의 장편소설<도가니>를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도가니>(감독 황동혁)의 '농아학교'는 장애인의 인권 유린 뿐만 아니라 혈연, 학연, 인맥, 지연 등으로 연결된 사회 중심 정치 권력의 축소판이다.

지난 2009년 6월 공지영 장편 소설< 도가니 >가 첫 출판됐던 당시 네티즌 사이에서 사회소수자, 약자, 장애인 등에 대한 인권 유린문제가 약간의 반항을 일으켰지만 완전한 여론화에 실패해 흐지브지 넘어갔다. 그러나 현재 영화<도가니>를 통해 다시 재점화 됐다.

똑같은 내용인데 '문자언어'인 책과 '영상언어'인 영화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쨌든 직접적으로 와 닿는 영상언어의 파괴력을 영화 <도가니>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청각장애학교의 성폭행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영화 <도가니>가 개봉 5일 만에 관객 100만을 넘기면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장애인이나 어린 아이를 성폭행하면 징벌적 배상제 도입이나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사회복지관련법(일명 도가니법) 개정 여론과 사회적 논의도 활발하다.

지난 2일 일요일 밤 지상파 TV인 <MBC 2580> <KBS 4321> 등 프로그램에서도 실제 소재인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실태를 재조명했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의 문제, 장애인 인권에 대한 문제 등을 다름대로 잘 파악해 다뤄줬다.

최근 여야는 이른바 사회복지재단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공익이사 선임 등을 의무화하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과거에도 법 개정을 두고 여야 설전이 있었다. 지난 2007년 참여정부에서 한 차례 법 개정을 추진했다. 당시 광주인화학교 농아 성폭력 사건이 폭로된 이후 참여정부가 추진을 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일부 종교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한나라당은 공익이사 선임, 대표이사와 가족들의 재산변동 사항 공개 등의 핵심조항을 두고 '사회주의법' 이라고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이후 한동안 이 문제는 잠잠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6월 29일 소설가 공지영 씨가 장편소설 <도가니>를 출판하게 되면서 일부 네티즌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 <도가니> 소설을 읽는 네티즌들은 장애인 인권 유린 등을 폭로하는 글들 인터넷상에 올렸고, 사회복지관련법 개정을 주문하기도 했다. <도가니>가 발표된 이후인 8월 18일 고 김대중 전대통령이 서거를 한다. 사회적 여론이 그곳으로 집중되자 미처 사 놓은 책을 읽지 못하다가 장례가 끝난 이후 지하철, 버스 등에서 틈틈이 모두 읽었다.

책을 일고 난 후인 지난 2009년 8월 27일 <오마이뉴스>에 ‘공지영 소설<도가니>의 본질, 권력의 치부에 경종’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요약하면 바로 농아학교(교장, 행정실장)는 하나의 정부나 거대여당 등 권력 구조의 축소판인 것을 강조했다. 학연, 혈연, 지연 등으로 얽히고설킨 기득권세력의 권력의 구조와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도가니>를 읽고 너무 가슴이 아파 글을 올렸지만 미동없이 훌쩍 지나가는 사회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당시 이런 문제에 대해 심도있게 사회적 논의가 됐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그렇지 못했다. 당시의 경험에 따라 현재 영화를 통해 부각된 여론이 영화가 끝나면 슬그머니 사라지지 않을까하는 조바심도 생긴다. 영화 <도가니>가 흥행하고 있는 이 때, 지난 1일부터 3일(오늘)까지의 연휴를 통해 집 서재에 있는 공지영 장편소설 <도가니>를 다시 촘촘히 읽었다.

공지영 소설 <도가니>의 줄거리는 말 못하는 장애인이 모여 사는 농아학교에 농아들이 교장, 행정실장, 교사 등에게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한다. 새로 부임한 기간제 교사와 인권운동단체들이 이를 언론에 폭로하고, 법정 문제로까지 비화시키지만 학연, 혈연, 지연 등 얽히고설킨 지역사회 기득권세력들의 상호 보험적 관계 때문에 좌절하고 만다. 기득권세력을 동원한 온갖 거짓과 협잡과 폭력의 치부들이 감추어지고 진실은 질식돼 간다.

바로 농아학교는 정부나 거대여당 등 권력 구조의 한 축소판인 것이다. 이 사회에 최대 빈자이며 약자인 말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권력을 가진 교장, 행정실장 등에게 여러 차례 성폭력을 당해 외음부까지 심한 상처를 내는 것들을. 그러나 그들을 보호해주는 기득권세력이 연결돼 있기에 변호가 된다.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도 강자를 보호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온갖 잘못을 저질러도 지연, 학연, 혈연, 공권력 등을 동원해 면죄부를 받거나 죄를 축소하려는 속성이 있다. 영화 <도가니>는 하나의 농아학교 권력자인 교장과 행정실장을 통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사회의 기득권자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상호 보험적으로 연결돼 있는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약자들의 진실이 강자들의 거짓으로 은폐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공지영 소설 <도가니>와 영화<도가니>의 핵심 키워드다.

글ㅣ김철관 객원논설위원(한국인터넷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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