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인도하심은 없었고, 하나님은 너무 멀어 보였다. 데이비 없는 세상은 여전히 허전했으며, 하나님조차 이제는 뒤로 물러나 있는 듯했다. 쓸쓸함은 깊어만 갔다. 하나님이시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사랑이나 그 비슷한 것들이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다. 잠 못 들어 아침이 가까운 시각에, 우주는 이제 하나님도 없고 데이비도 없는 절대 공허라는 느낌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었다. “좋아.” 나는 중얼거렸다. “하나님은 없어도 돼. 이 구질구질한 것을 더 이상 안 믿는다. 다 거짓말이야. 나는 완전히 속았어.” 나는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나님은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하나님이 거부가 안 되었다.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지금도 설명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힘을 써서 밀어도 꿈쩍 않는 바위가 있다. 이게 안 되는 거구나. 그런 식으로 나는 기독교를 거부할 수 없음을 알았다. 갑자기 엄청난 사랑이나 믿음이 밀려들어 온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렇게 됐을 뿐이다. 거부할 수 없었다.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쉘던 베너컨 – 잔인한 자비
보스턴에서 보낸 시간은 나라는 그릇이 만들어지는 시간이었다. 질그릇 같은 인생에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가 담기면서 쓰임받는 그릇이 되는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룬 것이 부족할 뿐 아니라 여전히 이루어가는 과정 가운데 있지만, 보잘것없는 나라는 인생을 훈련시키시며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께만 영광 돌린다. 어린 시절 튜브를 타고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아버지의 발도 땅에 닿지 않을 만큼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아버지만 보면 왠지 평안하고 웃음이 나왔다. 나 자신을 보면 두렵고 불안하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보려고 한다. 그저 그분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을 기도하며, 그 기쁘신 뜻을 이루는 데 내가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면 기꺼이 끝까지 내어드릴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의 마침을 꿈꾼다.
김영호 - 담장 넘은 가지
세례는 여러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례는 죄 씻음을 나타내며,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또한 옛 삶을 벗고 새 삶으로 거듭났음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세례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음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부모님의 기도와 다짐으로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가 성장해서 입교자가 되었습니다. 온갖 고민과 방황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곁에서 부모가, 교회 공동체의 목회자 ·교사 ·친구들이 그의 신앙을 응원하고 지지할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어린 신앙에서 벗어나 마침내 스스로의 결단으로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회 공동체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입교(入敎)는 이 놀라운 결단을 온 교회가 함께 축하하고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예식입니다.
송근종, 손성현 - 세례와 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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