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환 목사
김창환 목사

가룟유다에서 가룟은 지명이며, 유다는 이름이다. 유다의 뜻은 ‘찬양하다’이며, 유다 지파의 기원이 되는 야곱의 아들 유다에게서 기원했다. 가룟은 케룟(Kerioth)이며,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자그마한 마을이다. 여호수아 15:25에서는 ‘그리욧’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으로부터는 남서쪽으로 28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시몬이다(요 13:2).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명으로 예수를 판 자다. 가룟유다는 복음서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가장 불가사의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의 뜻과 배경, 성품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한 동기와 죽은 방법 등 모든 것들이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가룟이라는 이름에는 다양한 설명들이 제시되어 왔다. 즉 "그리욧 사람" "암살자" "가짜, 거짓말쟁이, 위선자" 등의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그가 열두 제자 중의 한 명이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가장 초기에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단의 회계 일을 보면서 일행의 전대를 맡았다. 그는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수많은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을 보았다. 하지만 마지막 그는 가망이 없다고 느꼈을 때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 버렸다.

복음을 전할 자로 택함을 받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4-6).

유일하게 유다 출신의 제자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눅 22:3).

처음부터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요 6:64).

예수님 공생애 초기부터 사탄에게 팔렸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 6:70-71).

유다는 철저하게 가면을 쓴 이중 신분자였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 12:4-6).

가룟유다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돈을 사랑했다. 여인이 옥함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었을 때는 잔인하게 그것을 왜 팔지 않느냐고 꾸중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모든 것이 돈다. 이러한 성향을 이해한다면 그가 처음에 예수님을 따른 이유는 성공을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기로 의논하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마 26:15-16).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자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겟세마네로 군병들과 함께 찾아오다.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요 18:2-3).

자신이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배반했다.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마 26:49).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의 피 값을 돌려 주려했다.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마 27:3-4).

이튿날 아침 어느 정도 냉정해진 유다는 예수께서 정죄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것, 자기가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판 것을 알고 후회하면서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가서 은 삼십을 돌려주면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라고 말했다. 그의 양심은 제자들의 양심처럼 마비되어 있지 않았다. 제사장들은 그에게 말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리라] 그래서 유다는 은을 성소에 던져놓고 나가서 목매어 죽었다. 제사장들은 [핏값]을 성전 재정에 넣는 것을 싫어하여 그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산다. 이 밭은 [피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마 27:3-5). 사도행전에서는 이 부분을 상당히 다르게 언급하고 있다(행 1:18-19). 즉 사도행전에 따르면 유다 자신이 그 밭을 샀으며, 그의 몸이 곤두박질하여(혹 부풀어 올라?)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의 비참한 죽음은 초기 기독교 설교자들과 저자들에 의하여 수없이 인용되곤 하였다.

결국 후회하기는 하였으나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 27:5).

가룟유다는 사랑과 용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이끌렸을 가능성이 높지만, 결국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배신한 사람으로 기록이 되었다. 그가 배신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인 사랑에 대해 환멸을 느꼈거나,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다가 실패하여 배신했을 가능성이 높다. 배신 후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심각성을 깨닫고 뉘우치며 목을 매어 자살했다. 가룟유다의 배신은, 우리 모두가 언제든지 신앙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신앙을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신앙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가룟유다에게는 적어도 세 번쯤은 회개할 기회가 있었다.

첫째는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이 떡 조각을 받은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했을 때이다.

둘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네가 입맞춤으로 나를 파느냐”하셨을 때이다.

셋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로 결정된 후 그것이 죄악인 줄 알았을 때였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기는 했으나 자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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