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방송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는 단연 ‘북방 선교’다. ‘방송으로 그리스도를 전 세계에!’가 사시(社是)인 극동방송은 선교사 파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냉전 시절 북한과 중국, 러시아, 몽골의 지하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해 왔다.
극동방송이 송출하는 중파(AM) 신호는 야간이 되면 전파 전리층을 타고 북한 전역은 물론 만주 벌판과 시베리아까지 전달됐다. 방송사 측은 “북한의 수많은 주민이 단파와 중파 라디오를 숨겨두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극동방송의 설교와 찬송을 들으며 신앙을 지켰고, 이는 훗날 수많은 탈북성도들의 간증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 증명됐다”고 밝혔다.
중국의 개혁개방 조치 이후 극동방송에는 매년 수만 통의 편지가 전 세계에서 배달됐다고 한다. 방송사 측은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힌 중국 조선족 동포들의 감사 편지,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온 사연들은 방송선교가 거둔 눈물겨운 열매들이었다”며 “공산권 선교의 최전방 공격수로서 극동방송은 정치적 이념 대립 속에서도 영적 평화 통일의 기반을 닦는 독보적인 사명을 감당해냈다”고 전했다.
극동방송은 미국 톰 왓슨(Tom Watson) 선교사에 의해 1956년 12월 23일 호출부호 HLKX, 주파수 1230kHz, 출력 20kW로 인천시 학익동에서 첫 전파를 보냈다. 당시 방송사명은 ‘한국복음주의 방송국’이었고, KBS와 CBS에 이은 우리나라 세 번째 지상파 방송사였다. 또한 한반도에서 외국어로 외국의 청취자들에게 방송을 한 최초의 대외방송사였다.
한편 미국의 또 다른 국제적인 방송 선교기관인 FEBC(Far East Broadcasting Company)는 1973년 6월 30일에 일본 오키나와에 있던 송신소를 제주도로 옮기면서 방송사명을 ‘아세아방송’으로 정하고 민간방송 최대출력인 250kW의 대공산권, 북방선교 방송을 시작했다. 초대국장으로 김장환 목사가 취임하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가청권으로 복음방송을 송출했다. 그리고 1977년부터는 극동방송과 아세아방송이 공동운영을 시작하면서 두 방송사는 김장환 목사의 리더십 아래에서 통합 운영됐다.
2001년 재단법인 극동방송은 하나의 법인이 되고 아세아방송은 제주극동방송으로 사명을 변경한다. 53년의 역사를 이어온 제주극동방송은 지금도 북한에서 가장 선명하게 들을 수 있는 한국어 방송이라고 한다. 아울러 중국에서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듣고 있는 복음방송으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4개 언어로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현재 극동방송은 2개의 AM, 13개의 FM, 14개의 중계소를 가진 국내 대표적 선교방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극동방송은 70주년 발대식과 목회자세미나, 부활절 음악회, 영호남 전도대회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10월 15일 부산콘서트홀에서 70주년 기념 대합창제, 10월 17일 한양대 노천극장 및 운동장에서 7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 등을 진행할 예정이며, 창립기념일인 오는 12월 23일엔 서울 사옥에서 70주년 감사예배를 드린다.
이어 “6.25 한국전쟁으로 분단의 아픔이 70년을 넘어가며 불신과 단절의 골이 깊어지는 시대, 극동방송의 북방 전파는 변함없이 휴전선을 넘어 북녘 땅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다”며 “1956년 어둠 속에서 타오른 작은 불꽃이 오늘날 민족을 밝히는 거대한 등대가 되었듯, 극동방송이 선포하는 소망의 전파는 다가올 통일 대한민국의 아침을 앞당기는 가장 강력한 영적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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