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오늘 다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영성의 본질이다. 교회가 성장하고 조직이 커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그 은혜를 삶으로 실천하는 신앙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현대사에서 조용기 목사와 김용기 장로가 보여준 영성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의 한국교회에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조용기의 신비적 영성, 김용기의 실천적 영성. 조용기 목사의 신앙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기도와 성령에 대한 강조였다. 인간의 힘과 능력만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신앙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신비적 영성이란 현실을 떠나는 신비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의지하고,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영성을 의미한다. 한국교회가 어려웠던 시절, 이러한 신앙은 많은 사람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었다. 절망의 현실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깊이 만난 신앙은 결국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 점에서 김용기 장로의 삶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김용기 장로는 신앙을 교회 안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가나안농군학교로 대표되는 그의 삶에는 근면과 절제, 자립과 봉사, 공동체 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에게 신앙은 단순히 무엇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믿음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였다. 흙을 일구고 땀을 흘리는 일도 신앙이 될 수 있었고, 자신에게 맡겨진 삶에 충실한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삶 역시 신앙의 중요한 표현이었다.
그래서 조용기 목사의 영성을 하나님을 깊이 바라보는 영성이라고 한다면, 김용기 장로의 영성은 그 믿음을 삶으로 옮기는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기도의 무릎이고, 다른 하나는 일하는 손이다. 한국교회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이 두 영성은 사실 기독교 역사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을 보라.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깊은 영적 체험을 했다. 그러나 그 체험은 개인적인 감격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복음을 들고 세계를 향해 나아갔고, 수많은 교회를 세우며 자신의 삶을 복음의 사명을 위해 바쳤다. 체험이 사명이 된 것이다. 마르틴 루터 역시 말씀 앞에서 깊은 신앙적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자신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았다. 성경과 믿음에 대한 그의 확신은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변화로 이어졌다. 말씀의 깨달음이 개혁의 행동이 된 것이다. 칼빈 역시 하나님의 주권과 말씀에 대한 신앙을 신학적 사유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교회와 교육,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일에 그 신앙을 적용했다. 신학이 삶과 공동체를 세우는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존 웨슬리에게서 우리는 이 두 영성의 결합을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다.
1738년 올더스게이트에서 경험한 이른바 ‘마음의 뜨거워짐’은 웨슬리의 신앙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그 체험은 개인적인 감격으로 끝나지 않았다. 웨슬리는 거리와 광장으로 나갔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으며, 교육과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개인의 성결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성화를 추구했다. 성령의 체험이 거룩한 삶으로, 거룩한 삶이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다. 바울과 루터와 칼빈과 웨슬리가 역사적으로 위대한 신앙의 인물로 기억되는 이유를 단순히 그들의 지식이나 업적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내면의 신앙과 그것을 세상 속에서 실천하는 삶이 함께 있었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 생각해야 할 중요한 교훈이다. 신비적 영성만 강조하면 현실을 외면할 위험이 있고, 실천만 강조하면 신앙의 뿌리를 잃을 수 있다. 기도 없는 실천은 인간의 열심이 될 수 있고, 실천 없는 영성은 자기만족에 머물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두 날개가 필요하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영성의 날개와 세상을 섬기는 실천의 날개다. 오늘 한국교회가 조용기 목사의 신앙에서 다시 배울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기도와 믿음이다. 김용기 장로의 삶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그 믿음을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이다. 그리고 바울·루터·칼빈·웨슬리의 삶은 이 두 가지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구호가 아닐 것이다. 기도하는 교회, 말씀을 붙드는 교회, 그리고 그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교회. 예배당에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세상에서는 그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무릎으로 기도하고 손으로 섬기는 교회.이것이야말로 오늘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영성이다.
조용기의 신비적 영성과 김용기의 실천적 영성은 서로 다른 두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의 신앙을 완성하는 두 방향이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사람을 섬기는 것. 바울과 루터와 칼빈과 웨슬리가 보여준 신앙도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난다. 한국교회가 다시 기도의 무릎을 회복하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나아갈 때다. 깊은 영성과 뜨거운 실천. 기도하는 신앙과 행동하는 신앙.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두 날개다.
양기성 교수(Ph.D., Hon. Th.D.)
서울신학대학교 행정학 특임교수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기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