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의 명칭과 조직 개편 등을 둘러싼 내홍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한복협의 체제를 바꾸려는 일부 지도부와는 달리 기존 회원들은 사랑의교회 소속의 인사가 한복협의 기구 개편 등에 깊이 관여한 의혹을 제기하며 정치색을 배제한 순수 복음주의 정신의 회복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때 ‘총무 내정설’로 시끄러웠다가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한복협이 다시 내홍 상황에 휩싸이게 된 건 사랑의교회 주연종 부목사가 최근 개최된 한복협 임시총회에서 무리하게 조직 안에 진입하려는 시도가 드러난 게 발단이 됐다.
회원들은 이 인물이 회칙에도 없는 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자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 아니냐고 지적하면서, 한복협이 유지해 온 순수성과 방향성을 상실했다고 질타하며 지도부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해당 인물은 한복협의 직접적인 관계자도 아니면서 얼마 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아시아복음주의연맹(AEA)이 주관한 ‘아시아 교회와 선교 컨퍼런스’에 참석해 한복협 인사들과 AEA 측을 접촉하고, 한복협의 조직 개편에 사전 개입한 의혹이 짙어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질 듯 보인다. 회원들은 특정 교회가 한복협 운영에 사전 개입하려 한 의혹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책임을 요구하는 데까지 이른 상황이다.
기존 회원들이 한복협의 최근 행보에 크게 반발한 가장 큰 이유는 한복협이 창립 정신인 순수 복음주의 단체에서 연합기구화하려는 정치적 탈바꿈 시도에 있어 보인다. 한복협 영문 명칭의 ‘Fellowship’을 ‘Alliance’로 바꾸고 개인 중심의 회원 구조에 교회·단체를 포함하는 구조 개편을 단행해 AEA의 승인을 얻으려 했다는 건데, 회원들은 한복협이 걸어온 순수 복음주의 정신을 저버린 정치적 일탈로까지 간주하는 분위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AEA 측에 전달한 회원 명부가 허위로 드러나 AEA 측이 한복협 명칭과 조직 개편 승인을 보류했다는 사실이다. 회원들의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 없이 조직의 성격과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려 한 것도 큰 문제지만, 서류를 허위로 작성한 게 드러나 승인이 보류됐다는 점은 한복협 역사에 길이 남을 참사이자 망신이다.
회원들이 이 사안을 해프닝 또는 단순 실수로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얄팍한 거짓말로 국제 기구를 속이려 했기 때문이다. 한복협 내 이 서류를 작성한 주동자는 누구인가. 실지로 본보 기자가 사실 파악을 위해 제출된 명단에 들어있는 교회에 직접 문의한 결과 “회원으로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누군가가 오로지 AEA에 조직 개편의 승인을 받을 목적으로 문서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가입 의사를 밝히지 않은 교회들까지 무슨 의도, 또는 어떤 근거로 명단에 넣었는지, 누구의 동의를 확인했고, 누가 명단을 작성하고 최종 승인했는지 모든 게 불투명한 것 가운데 철저한 조사와 함께 이 일을 벌인 자들이 누구인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는 게 회원들의 입장이다.
사실 한복협은 그동안 순수 복음주의를 지향하는 개인들이 참여해 매월 주제에 따른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며 친목 단체 성격으로 운영돼 왔다. 고 김명혁 목사가 이 단체를 시작할 때 만해도 이 단체가 정치색을 띤 기구처럼 변모하리란 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다. 출범 당시의 순수 복음 정신이 일부 인사들에 의해 흔들리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위기감이 오늘 한복협이 직면한 현실을 말해준다.
회원들은 한복협의 이런 변질이 지난 3월경 당시 선교위원장이던 문 모 목사를 지도부가 신임 총무로 내정한 악수(惡手)로 말미암아 수면 위로 드러난 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총무는 회원들이 총회에서 선출해야 한다’는 회칙 규정을 어긴 임원회와 지도부 성토에 회원들이 나서면서 내홍으로까지 번질 뻔한 사태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다시 신임 총무를 총회에서 선임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선에서 마무리 됐지만, 이후 한복협의 조직 개편을 특정 교회가 주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다시 불거지고 급기야 AEA에 제출한 서류의 허위 사실이 드러나면서 겨우 가라앉았던 내홍의 불씨가 되살아나게 된 거다.
한복협을 기존의 체제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회원들은 이번 사태를 촉발한 지도부를 향해 중요 결정 사항들이 어떤 절차와 경로로 이뤄졌는지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약 한복협 현재의 조직 개편 진행에 있어 외부 교회 인사의 사전 개입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사무총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는 게 이들의 일관된 입장이다.
특정 교회가 한복협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기구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한복협의 내홍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번질 수도 있어 보인다. 지금 회원들이 한복협의 설립 취지와 다른 방향성으로 끌고 가려는 세력을 향해 별도 조직을 원하면 짐 싸서 나가라는 말까지 하는 마당에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법적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회원들은 조직 개편을 승인받고자 AEA에 허위 서류를 제작해 제출한 당사자들이 누구인지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마 조직 개편을 주장했던 세력의 실무자들이 범인일 것이다. 누가 이 허위 서류를 제작해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했는지, 혹시 알고 만든 위조 서류는 아닌지, 한복협은 자체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위 여부를 가리고, 이 일을 공작한 자들이 누구인지 한국교회 앞에 그 진실을 낱낱이 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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