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바클레이 숭실대
존 바클레이 교수. ©노형구 기자

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는 1일 세계적 바울 신학 권위자인 존 바클레이(John M. G. Barclay) 영국 더럼(Durham)대 교수를 초청해 ‘은혜와 기독교 윤리 : 바울 신학의 실천적 함의’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존 바클레이 교수는 개신교인들이 이웃을 향한 나눔과 연보(헌금)에 대해 의무감에 그치거나 오해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으로, 종교개혁 이후 고착화된 신학적 성향을 지목했다.

바클레이 교수는 “개신교 전통이 ‘행위 구원론’에 대한 강박적 공포를 지녀왔다”며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은 인간의 선행이 구원의 공로가 되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고, 신자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은혜의 근원만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역사가 역설적으로 구원 이후의 삶에서 ‘행위와 선행(헌금)’의 가치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며 “이를 강물이 흘러오는 곳만을 바라보는 ‘상류(Upstream)의 신학’이라 지칭하고 싶다.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근원(상류)만 중요할 뿐, 이웃을 향해 흘러가는 나눔과 선행(하류)은 어떻게 흐르든 무관하다는 인식이 은연중에 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구조 안에서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무기체적인 통로, 즉 ‘파이프(Conduit)’에 불과하게 된다”며 “이러한 ‘상류 중심적 신학’이 필연적으로 ‘율법폐기론(Antinomianism)의 함정’과 ‘영성 형성(Spiritual Formation)의 부재’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헌금이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안 해도 그만’이라는 도덕적 무관심에 빠지거나, 나눔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아 새롭게 빚어지는 성화의 과정을 간과하게 만들었다”며, 그러나 고린도후서 8~9장을 근거로 “바울은 결코 ‘상류만을 바라보라’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바울이 가르친 참된 연보의 의미는 은혜가 도달할 목적지와 그로 인해 변화될 인간의 미래를 향하는 ‘하류(Downstream)의 신학’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며 “현대 세속 윤리나 일반적인 인과관계 속에서 ‘타인의 개입’은 나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요소로 여겨진다. 누군가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할수록 나의 주체성은 줄어드는 경쟁적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클레이 교수는 “이러한 논리를 헌금에 적용하면 ‘하나님이 다 하셨으니 인간의 열심은 의미가 없다’거나, ‘내가 땀 흘려 번 돈을 내는 것이니 내 공로다’라는 식의 제로섬(Zero-sum) 게임에 빠지게 된다”며 “토마스 아퀴나스와 현대 신학자 캐서린 태너의 개념을 빌려, 연보에 담긴 하나님의 역사를 ‘비경쟁적 초월성(Non-competitive Transcendence)’으로 명쾌하게 정리했다.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마케도니아 교회들의 연보는 100% 하나님의 은혜(Charis)에 의한 결과인 동시에, 100% 인간의 진심 어린 헌신과 자발적 선택의 결과라는 해석”이라고 했다.

존 바클레이 숭실대
주요 관계자들이 단체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노형구 기자

바클레이 교수는 “하나님은 인간의 지분과 경쟁하시는 분이 아니”라며 “오히려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혜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기심과 부족에 대한 공포에 묶여 있던 인간의 의지를 ‘해방’시켜 자발적으로 연보를 드릴 수 있는 참된 주체로 만들어 준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바울에게 헌금이란 의무나 명령에 마지못해 굴복하는 행위가 아닌, 신성한 은혜의 역동성에 능동적으로 뛰어드는 ‘참여의 윤리’가 된다”며 “기존의 자선(Charity) 모델은 물질을 가진 강자가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구조다. 이 구조 안에서 주는 자의 자원은 고갈되고, 받는 자는 무력감을 느끼기 쉽다”고 했다.

그러나 바클레이 교수는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연보의 풍성함을 표현할 때 사용한 단어는 액수나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플로테스(Haplotes)’였다”며 “이는 선물이 가진 ‘순전함’과 ‘단일한 마음(Single-heartedness)’을 뜻하며, 돈의 액수로 측량할 수 없는 영적인 관대함”이라고 했다.

아울러 “여기서 기독교 윤리만의 독특한 역설이 발생한다. 신자가 자신의 유한한 자원에서 쪼개어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 받은 무한한 공급원(Surplus) 안에서 베푸는 것”이라며 “물질적 빈곤 속에서도 영적 잉여를 나누는 마케도니아 교회처럼 신자는 부족(Scarcity)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지나가기만 하는 차가운 금속 파이프가 아니다. 은혜의 강력한 수압(연보의 실천)이 파이프를 통과할 때 파이프 내부에 쌓여 있던 이기심의 녹과 찌꺼기가 씻겨 나가고 파이프 자체가 확장된다”며 “헌금을 드리는 자(Giver)는 자원의 고갈을 겪는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내적인 성취와 깊어짐(Enrichment)을 경험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바클레이 교수는 “우리는 무언가를 더 많이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온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to become something more) 심는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바클레이 교수가 제시하는 바울의 윤리 구조는 거대한 ‘은혜의 순환(Circle of Charis)’으로 요약된다. 은혜는 하나님(상류)으로부터 시작되어 인간의 자발적인 연보를 거쳐, 다시 하나님을 향한 거대한 찬양과 감사(하류)로 돌아가는 구조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 흐름 안에서 신자는 단순히 타인의 유익만을 위해 물질을 소모하고 손해 보는 존재가 아니”라며 “연보라는 은혜의 강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과정을 통해 신자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며 다가올 영원한 삶에 적합한 존재로 빚어지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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