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존
J.존. ©위키피디아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J.존의 기고글인 ‘흔들리는 삶을 바로 세우는 세 가지 기도’(Three prayers that can steady your life)을 5월 2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J. 존은 목사, 연사, 방송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 팟캐스트인 ‘J.John Podcast’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가 1691년에 드린 기도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귓가에 맴돌고 있다. 삶이 불확실하게 느껴질 때 평안을 갈망하는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필요를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삶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백스터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하옵소서(Lord, what Thou wilt, where Thou wilt, and when Thou wilt)." 이를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다. "주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하옵소서." 그리고 필자는 여기에 한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면 소박한 단어들이지만 그러나 그 안에는 깊은 신뢰가 담겨 있다.

백스터는 17세기의 위대한 기독교 목회자이자 저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내전, 정치적 격변, 박해, 투옥, 그리고 오랜 질병을 겪으며 살았다. 생애 대부분을 육체적 고통과 싸웠고, 종종 죽음이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난은 그를 비관적인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더 지혜롭고, 더 온유하며, 더 긍휼이 많은 사람으로 빚어냈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으로 인해 무너지지만,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통해 더 깊어진다. 백스터는 고통으로 깊어진 사람이었다. 그는 영국 키더민스터(Kidderminster)라는 마을에서 신실하게 사역했으며, 뛰어난 지성뿐만 아니라 목회자적인 따뜻한 마음으로도 잘 알려졌다. 그는 고난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사람들을 깊이 품고 돌보았다.

우리는 통제에 집착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일정, 재정, 미래, 건강, 자녀, 경력, 심지어 대중적인 이미지까지 통제하려고 애쓴다. 우리는 내일의 날씨와 오늘의 헤드라인을 알려주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다닌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기술과 계획에도 불구하고, 삶은 여전히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하게 예측 불가능하다.

전화 한 통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진단서 한 장, 사고 한 번, 대화 한 번, 기회 한 번이 그렇다.

진실은, 우리에게는 통제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백스터의 기도가 그토록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첫 번째 기도: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Lord, what Thou wilt...)"

이는 우리의 '계획'을 내려놓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께 우리의 계획표를 내밀며 축복해 달라고 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주님, 여기 제가 꼼꼼하게 짠 5년 치 계획이 있습니다. 그저 결재 도장만 찍어 주신다면 정말 멋질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우리의 계획을 따르시도록 하나님을 설득하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그분의 계획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예수님 친히 이렇게 기도하셨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누가복음 22:42).

참된 믿음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 제 뜻보다 하나님의 지혜를 더 신뢰합니다." 물론 이는 쉽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과 일치할 때만 그분의 뜻을 기뻐하곤 한다. 진짜 시험은 두 뜻이 어긋날 때 찾아온다.

두 번째 기도: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서(Where Thou wilt...)"

이는 우리의 '편안함'을 내려놓는 것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스스로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곳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때로는 물리적인 장소로, 때로는 정서적인 자리로, 때로는 영적인 상황으로 이끄신다.

성경속 인물들을 보면 모세에게는 광야, 요셉에게는 감옥, 다니엘에게는 바벨론,. 룻에게는 사별의 아픔,. 한나에게는 수년간 응답받지 못한 기도의 시간,. 바울에게는 파선이 있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은 편안함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약속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격렬하게 저항하는 그곳이 종종 우리가 가장 많이 성장하는 자리가 된다. 나무조차도 자신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더욱 단단해지는 법이다.

세 번째 기도: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When Thou wilt...)"

이는 우리의 '타이밍'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타이밍이다.

우리는 즉각적인 응답, 즉각적인 치유, 즉각적인 해결책, 즉각적인 성공을 원한다. 우리는 패스트푸드와 당일 배송의 시대, 웹페이지가 뜨는 데 5초만 걸려도 짜증을 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좀처럼 서두르지 않으신다.

우리는 "주님, 지금이 딱 좋은 때입니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신뢰하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기도는 빨리 응답된다. 어떤 기도는 천천히 응답된다. 어떤 기도는 다르게 응답된다. 또 어떤 기도는 수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응답된다.

따라서 '기다림'은 믿음을 배우는 가장 혹독한 교실 중 하나다. 하나님이 버섯 하나를 만드실 때는 24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참나무 한 그루를 만드실 때는, 나무가 제대로 자리를 잡는 데만 5년이 걸리고 온전히 성숙하기까지는 30년이 걸린다. 우리 중 너무 많은 이들이 참나무를 키우시는 하나님 곁에서, 전자레인지처럼 뚝딱 완성되는 영성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백스터의 기도 기저에 깔린 조용한 확신이 다가온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계심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열쇠 구멍을 통해 삶을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집 전체를 보고 계신다.

나이가 들수록, 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응답 중 일부는 사실 그분의 '거절'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한때는 제발 열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지만, 지금은 그 문을 굳게 닫아두신 것에 감사하게 되는 문들이 있다.

백스터의 기도는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기도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준비하는 기도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린 사람은 평안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다. 문제가 없어서도 아니다. 그저 평안한 것이다.

백스터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또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고통이 있지만, 평안도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간증인가.

우리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로 가득하다: ◆성공했지만 평안이 없는 사람 ◆돈은 있지만 평안이 없는 사람 ◆인기는 있지만 평안이 없는 사람 ◆편안하지만 평안이 없는 사람

예수님은 훨씬 더 깊은 무언가를 제공하신다. 그것은 바로 ◆불확실성 속에서의 평안 ◆고난 속에서의 평안 ◆응답되지 않은 질문 속에서의 평안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 수백 년 된 기도가 오늘날에도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것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마음은 평안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안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데서 오지 않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손에 쥐고 계신 그분을 신뢰하는 데서 온다.

그러니 오늘 우리도 조용히 이렇게 기도해 보면 어떨까? "주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하옵소서... 왜냐하면 주님께서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통제권을 잃는 것이 아니다. 결코 통제권을 잃지 않으시는 하나님 안에서 굳건한 확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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