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이슬라바마드에 위치한 연방헌법재판소(FCC)
파키스탄 이슬라바마드에 위치한 연방헌법재판소(FCC). ©Christian Daily International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비공식 정착촌에 거주하는 2만5천여 명의 기독교인들이 법원의 결정으로 일단 강제철거 위기에서 한숨을 돌리게 됐다고 4월 20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파키스탄 연방헌법재판소(FCC)는 당국에 임박한 철거 조치를 중단하고, 오랫동안 지연돼 온 정착촌 합법화 규정을 4주 안에 확정하라고 명령했다. 다만 현지 기독교 공동체는 과거에도 비슷한 법원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던 만큼, 이번 결정 역시 실제 집행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결정은 지난 4월 16일, 아미누딘 칸 대법원장과 아르샤드 샤 판사로 구성된 2인 재판부가 주민들과 아와미노동자당 지도자 아심 사자드 아흐타르 박사가 제기한 청원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청원인들은 주거권은 기본권에 해당하며, 시민에게 적절한 주거 환경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심리 초반부터 비공식 정착촌 관련 규제 정책이 장기간 마련되지 않은 점에 우려를 나타내며, 수도개발청(CDA)이 이해관계자들과 협의해 관련 규정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재판 과정에서 칸 대법원장은 왜 수도개발청이 아직까지도 관련 규정을 마무리하지 못했는지 추가 법무차관 아미르 레흐만에게 따져 물었다. 레흐만은 수도개발청 청장 교체 등 행정적 변화가 지연의 원인이 됐다고 설명하면서도, 현재 초안은 마련돼 있어 승인 절차만 남아 있다고 답했다.

청원인 측을 대리한 파이살 시디키 대법원 변호사는 적법 절차 없이 이루어지는 강제철거가 헌법상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시혜나 동정의 문제가 아니라 분명한 법적 권리의 문제라며, 대체 거주지를 마련하지 않은 채 주민들을 내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슬라마바드 도시계획에 저소득층 정착촌을 위한 별도 조항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레흐만은 공식적으로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1995년 이전 형성된 정착촌에 대해서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인정한 바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시디키 변호사는 2001년과 2016년에 관련 정책이 도입됐음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정당한 이행 없이 철거만 반복돼 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대체 거주지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구도 강제로 내쫓을 수 없다”며 “여기는 이슬라마바드이지 가자가 아니다”라고 법정에서 말했다. 반면 수도개발청 측 변호인 카심 초한은 재정착용으로 배정된 부지가 오남용된 사례가 있다며, 일부 주민들이 대체 부지를 받고도 기존 거주지를 비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도개발청은 10개 정착촌은 인정하고 있지만, 최소 31개 지역은 공공 녹지 등을 침범한 불법 점유지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원인들은 정부 통계와 실제 상황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슬라마바드 전역의 비공식 정착촌 거주 인구가 약 40만 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파키스탄 내에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종교 소수자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양측 주장을 들은 뒤 사건 심리를 4주 뒤로 미루고, 그때까지 수도개발청이 규정을 마무리해 제출하도록 했다.

법원 결정 하루 전에는 파키스탄 인권위원회(HRCP)가 전파키스탄 카치 아바디 연합, 정의평화국가위원회 등 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회의를 열고, 파키스탄 대법원이 2015년 내린 강제철거 중지 명령을 상급 법원이 다시 확인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저소득층 공동체를 대체 대책 없이 내모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주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이슬라마바드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비공식 정착촌 합법화 법체계를 아직 갖추지 못한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기독교 공동체 지도자 임란 샤자드 사호트라는 이번 연방헌법재판소 결정 자체는 환영하면서도, 완전한 안심은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에도 대법원이 비슷한 취지의 결정을 내렸지만 현장에서는 철거가 계속됐다고 지적했다. 사호트라는 “이전 법원 명령이 있었음에도 철거는 계속됐고, 우리 공동체는 계속 두려움과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며 “이번 결정도 실제 집행될 때에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25년 아와미노동자당이 발표한 ‘영구적인 비영구성(Permanent Impermanence)’ 보고서에 따르면, 이슬라마바드 비공식 정착촌의 절반가량에는 상당한 규모의 기독교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공식 인정된 10개 정착촌 가운데 4곳은 기독교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슬라마바드-라왈핀디 가톨릭대교구의 조지프 아르샤드 대주교도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이 소외된 공동체를 보호하는 긍정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착촌 주민들 역시 존엄과 법적 보호, 기본 서비스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법원 결정은 수도개발청이 지난 3월부터 벌여 온 불법 점유 단속과 맞물려 이어진 수주간의 긴장 끝에 나왔다. 현지에서는 여러 정착촌에서 항의 시위가 이어졌고, 특히 누르푸르 샤한에서는 4월 14일 충돌이 벌어져 경찰 최소 8명과 주민 수십 명이 다친 것으로 현지 언론은 전했다. 당국은 수백 명의 시위 참가자가 있었고 일부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고 밝혔다. 다음 날에는 중무장한 경찰이 배치된 가운데 약 200채의 주택이 철거됐고, 주민 수백 명이 대테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알라마 이크발 거주지, 이른바 샤퍼 거주지에서도 긴장이 이어졌다. 이곳에는 청소 노동과 가사 노동 등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는 기독교인 가족 약 1,300세대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지도자들은 철거 시도에 맞서 장시간 대치가 벌어졌고, 당국이 가재도구를 밖으로 끌어내고 재산을 훼손한 뒤 철수했다고 주장했다. 수도개발청은 이슬라마바드 내 여러 비공식 정착촌을 정리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밝힌 상태이며, 이 가운데 일부는 기독교인이 다수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현지 공동체 대표들은 이번 강제철거 움직임이 일용직 노동자와 저소득 가정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대부분 당장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경제적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번 법원 결정이 단순한 유예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제도 개선과 주거권 보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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