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톤스트리트 회장
존 스톤스트리트 회장.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존 스톤스트리트 회장의 기고글인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분이었다’(Yes, Jesus had a God complex)를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스톤스트리트 회장은 콜슨 기독교 세계관 센터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신앙과 문화, 신학, 세계관, 교육 및 변증법 분야에서 인기 있는 작가이자 연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영국 매체 The Spectator에 기고한 패트릭 웨스트(Patrick West)에 따르면,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은 예수를 “불편하고 거슬리는 존재”로 느끼고 있다. 그는 14세에서 17세 사이 영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Troubling Jesus’라는 설문조사를 소개한다. 이 연구는 Scripture Union과 Bible Society가 공동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로, 비기독교 청소년들이 성경과 기독교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연구진은 조사 결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청소년들이 공유한 내용은 때로 매우 불편하고 당혹스러웠다.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여겨 온 해석들을 낯설게 뒤흔들었고, 하나님과 예수에 대해 처음에는 거의 이단적으로 들릴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실제로 이 청소년들은 성경 속 하나님을 “매우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존재”로 인식했고, “권위적으로 설명하려 드는 태도(mansplaining)”와 “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하나님 아버지는 마치 괴롭히는 존재처럼 보였고, 하나님 아들은 “거만하고, 강력하며, 종교적 동기를 가진 남성”으로 묘사됐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평가는 이것이었다: “예수는 ‘신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웨스트는 이러한 반응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권위를 존중하는 문화 없이 자란 젊은 세대, 교육적 교훈이 사라진 사회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공격적이고 적대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진리’를 가진다고 여기는 시대에서 기독교의 절대적 주장 자체가 이해 불가능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영국과 서구 사회 전반에 퍼진 ‘비판 이론적 분위기(Critical Theory)’는 새로운 도덕적 절대 기준을 만들어냈다. 이 기준 속에서 교육받은 세대는 전통이나 과거의 가치들을 본능적으로 억압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기독교 역시 이러한 잣대 아래에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외부 요인만이 아니다. 웨스트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을 지적한다: “수년 동안 영국 국교회와 많은 기독교 교단들은 사회의 흐름에 그대로 편승했고, 오히려 기독교가 상대주의와 무지로 빠져드는 데 일조해 왔다.”

다시 말해, 문화적 적합성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교회의 전략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났다. 첫째, 많은 교회와 신자들이 ‘시대에 맞추려는 과정’ 속에서 정작 자신들의 신학을 잃어버렸다. 둘째, 예수께서 교회에 맡기신 가장 중요한 사명인 제자 삼기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청소년들이 예수를 “신 콤플렉스를 가진 존재”라고 평가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를 비판으로 말했지만, 사실 그 표현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예수는 실제로 하나님처럼 말씀하고 행동하셨다. 그분은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또한 의심하던 도마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했을 때 이를 부정하지 않으셨다. 예수는 스스로를 “나는 ~이다(I am)”라는 표현으로 자주 설명하셨는데, 이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 사용한 표현과 동일한 것이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셨고, 이를 들은 사람들은 즉시 신성 모독으로 이해했다.

예수는 자신을 구약의 사건들을 완성하는 존재로 제시하셨다. 모세처럼 광야에서 사람들을 먹이셨고, 산에서 율법을 선포하셨다.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죽은 자를 살리셨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라고 말했지만, 예수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자신의 권위로 직접 말씀하셨다.

결국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는 단순히 선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가난한 자를 도왔기 때문도 아니었다. 당시 권력자들에게 그는 위험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대하던 방식의 메시아가 아니었기에 그를 거부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 사도 베드로도 이사야서를 인용하며 예수를 “걸림돌이요 넘어지게 하는 바위”라고 표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국 청소년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의 중요한 진리를 짚어냈다. 오늘날 교회가 종종 약화시키거나 외면해 온 바로 그 핵심이다. 예수는 단순한 도덕 교사나 좋은 스승이 아니다. 그분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드러내신 분이다.

따라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태도는 단순하다: 예수를 불편해하며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를 바보로 취급하며 입을 막을 수도 있고, 악마라고 하며 침을 뱉고 죽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이요 하나님이라 고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위대한 인간 스승으로 여기며 적당히 칭찬하는 태도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는 그런 선택지를 남겨 두지 않으셨다.”

결국 문제는 우리는 예수를 불편한 존재로 밀어낼 것인가 아니면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그의 주장 앞에 서게 될 것인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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