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반 마일라의 기고글인 ‘대중적 플랫폼은 사역자들을 지켜주지 않는다’(Public platforms offer no protection for ministry leaders)를 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반 마일라(Van Mylar, MA, CFRM)는 수십 년간 신앙 기반 비영리단체, 선교기관, 그리고 대학들의 사명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 온 베테랑 미디어 및 모금 전략가다. 현재 Apex Media Partners의 고객 전략 및 성장 부문 부사장으로서, 다양한 조직들이 변화의 시대를 명확한 방향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헤쳐 나가도록 돕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잠들기 전, 휴대폰으로 뉴스를 넘기다가 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믿기지 않았고 그리고 부정하게 되었다. 첫 문단을 읽고 더는 읽을 수 없었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다시 기사를 열어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너무도 익숙한 감정의 순서가 찾아왔다. 배신감, 분노, 그리고 지친 생각이 하나 들었다: “또 이런 일인가?”
젊은 신앙 시절부터 필자의 믿음을 형성해 주었고 수십 년간 필자를 이끌어 주었던 필자가 가장 좋아하던 기독교 작가, 흠잡을 데 없다고 여겼던 한 사람이, 55년간의 결혼 생활 이후 수년에 걸친 외도를 고백했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아침 묵상 중에 마음이 달라졌다. 분노는 사라지고 더 부드러운 감정이 자리 잡았다. 연민과 슬픔이었다. 그와 그의 아내, 가족, 그리고 그 여성과 그 가족까지 모두를 향한 마음이었다.
이 마음의 변화가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우리는 왜 계속해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사역자들을 잃게 되는 걸까?
우리는 사역자의 모든 것을 수치로 세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지 않는다. 출석률, 참여도, 책 판매량은 꼼꼼히 측정하지만, 영혼의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는 없다. 충성은 생산성과 혼동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열매는 성과가 아니라 ‘거함’에서 나온다고 하셨다.
사역의 가장 큰 위협은 외부에 있지 않다. 정치적 반감이나 신뢰 하락도 현실이지만, 더 치명적인 위험은 조용히 내부에서 자라난다. 잘못된 정체성, 점검되지 않은 교만, 희생이라는 이름의 고립이다. 가시성과 끊임없는 성과를 보상하는 시스템 안에서 이런 취약점은 깊어진다. 무너짐은 대개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느린 침식이다.
최근의 뉴스들은 그 침식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여준다.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작가들, 성공적인 교회를 세운 목회자들이 오랜 시간의 도덕적 실패를 고백한다. 이 무너짐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 정체성이 사역의 무대와 결합되고, 공적인 모습 뒤에서 고립이 깊어지며,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활동으로 대체한다.
오늘날 사역 문화는 지도자에게 진짜 목양을 제공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고, 영적으로 강해야 하며, 교리적으로 정확해야 하고, 끊임없이 생산해야 한다. 그러나 정직한 고백과 책임, 쉼의 구조는 거의 없다. 늘 평가받지만, 거의 알려지지는 않는다.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코람 데오’를 말했다.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거하는 삶에서 멀어질 때, 이 시선을 잊는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착각할 때, 죄는 발붙일 틈을 얻는다.
리처드 포스터는 『영적 훈련과 성장』에서 영적 생명력은 의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기도, 침묵, 고백, 단순함은 사역에 덧붙이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의존을 보존하는 평범한 수단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는 책망이 아니라 질서의 회복이다. 열매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맺어진다. 사역자도 인간이다. 의심과 두려움, 유혹과 피로와 씨름하지만, 기대는 더 크고 안전한 고백의 공간은 더 적다.
포스터가 말했듯 영적 훈련은 의존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침묵은 성과 중심의 태도를 끊는다. 고독은 정체성을 마주하게 한다. 고백은 고립을 무너뜨린다. 안식일은 “지치면 충성”이라는 거짓말에 저항한다. 이 훈련들은 사역자를 효율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그리스도께 붙들어 매어 둔다.
해답은 구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측정되기 전에 빚어져야 하고 평가되기 전에 알려져야 하며 양을 치기 전에 먼저 돌봄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패가 뉴스가 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역자들이 조용히 충실하게 섬기고 있다. 차이는 재능이나 신학이 아니다. 무너지는 지도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죄를 고백하지 않고, 정체성을 무대와 합치며, 하나님과의 고독 대신 유명세의 고독을 선택한다. 청중은 있었지만 친구는 없었고, 찬사는 있었지만 직언할 사람은 없었다.
끝까지 잘 달린 지도자들은 달랐다. 존 스토트는 검소하게 살며 동료들의 권면을 받았다. J. I. 패커는 평생 한 작은 교회 성도로 남았다. 빌리 그래함은 일찍부터 엄격한 책임 구조를 세웠다. 아내가 아닌 여성과 단둘이 있지 않았고, 재정은 투명하게 공개했으며, 자신에게 말할 수 있는 팀을 두었다.
이들은 덜 유혹받아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구조와 자신을 아는 공동체를 세웠기 때문에 끝까지 갈 수 있었다. 무대가 교구를 대신하게 하지 않았고, 청중이 책임을 대신하게 두지 않았다.
건강한 사역은 성과가 아니라 ‘내면의 건강’에서 나온다. 기도와 쉼, 고백과 영적 동반이 없으면, 아무리 은사가 뛰어난 지도자라도 취약해진다. 이 훈련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단지 참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오직 그 은혜로만 우리는 끝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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