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요나서는 성경 안에서 매우 독특한 책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지자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 사이의 깊은 간격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요나라는 인물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선지자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지식을 가진 요나가 하나님의 뜻 앞에서는 순종하기를 꺼려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즉시 순종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갔다.

요나서 1장 3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여기서 우리는 요나의 신앙적 모순을 본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아는 선지자가 도망가고 있다. 이것은 풍성한 지식이 순종을 자동으로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더 놀라운 장면은 요나서 4장에 나온다.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재앙을 거두시자 요나는 기뻐하지 않고 분노한다. 요나서 4장 1절은 말한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그리고 요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 4:2).

이 고백은 신학적으로 완벽하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히 알고 있다. 출애굽기 34장 6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바로 그 성품을 요나가 그대로 알고 고백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요나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하나님이 니느웨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식은 있었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일치하지 않았음을 본다.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하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성경을 많이 읽고, 교리를 배우고, 설교를 들으며, 심지어 신학적 언어로 하나님을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순종과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은 이렇게 경고한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듣는 것’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말씀은 삶과 순종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요나처럼 “지식은 많으나”, “순종하지는 않는” 선지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야고보서 2장 19절은 더욱 날카롭게 말한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귀신들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지식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참된 믿음은 단순한 ‘인지’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순종 없는 지식은 교만만 가져올 뿐이다. 요나의 문제는 하나님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맡기지 못한 데 있었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사례를 자주 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며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 설교도 잘 요약할 수 있을 만큼 지식이 풍부하다고 하자.

그러나 정작 인간관계에서는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자존심을 앞세우는 경우가 있다. 그런 모습은 “지식은 있지만 순종은 없는 신앙”의 전형이다. 또 어떤 설교자가 성경 원어와 신학을 깊이 연구하지만, 삶에서는 겸손과 사랑이 부족하여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다. 지식은 커졌지만, 그 지식이 인격과 순종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또 다른 실례로,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의 하나님이 나와 다른 사람, 내가 용납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동일한 자비를 베푸신다는 사실 앞에서는 불편해한다. 요나가 니느웨를 미워했던 것처럼, 우리도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는 나에게는 좋지만, 저 사람에게는 싫다”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분히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요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는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에서 끝나지 않고, “네가 아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느냐? 그 하나님과 마음이 같아지고 있느냐?”라고 말이다. 참된 신앙은 지식에서 시작되지만, 반드시 순종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3장 17절에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참 복은 아는 데 있지 않고, 행하는 데 있다.

요나는 마지막까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이야기가 끝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열린 결말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너는 요나와 다르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지식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도 여전히 요나의 자리에서 머물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요나와는 달리 단순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마음과 삶을 움직이는 살아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함을 기억하자.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