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법원이 이른바 ‘귀환 사업’으로 북한에 보내졌던 재일동포들에 대해 북한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처음으로 내렸다. 도쿄지방법원은 26일 탈북한 재일동포 4명이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북한의 책임을 인정하고 총 8800만엔, 우리 돈으로 약 8억2000만원의 배상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해당 사안이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된 ‘계속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며, 원고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빼앗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일본 사법부가 북한을 상대로 배상 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5년간 이어진 ‘귀환사업’, 북한·일본 이해관계 속에 추진

이번 판결의 배경에는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약 25년에 걸쳐 진행된 재일동포 북송, 이른바 ‘귀환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북한 김일성 정권과 일본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추진됐다. 김일성 정권은 1956년 ‘8월 종파 사건’ 이후 대규모 숙청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중국 인력이 대거 철수하자, 부족해진 노동력을 보충하고 체제 선전 효과를 동시에 노릴 수 있는 대상으로 재일동포에 주목했다. 일본 정부 역시 재일교포 문제를 정리하려는 입장이었고, 이러한 상황이 맞물리며 북송 사업은 본격화됐다.

1959년 8월 일본과 북한의 적십자사는 인도 콜카타에서 재일교포 북송 협정을 체결했다. 같은 해 12월 니가타항을 출발해 함경북도 청진항으로 향한 첫 배에는 975명이 탑승했다. 이를 시작으로 약 180차례에 걸쳐 9만3000여 명의 재일동포와 일본인 배우자들이 북한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이른바 조총련은 북한을 ‘지상 낙원’으로 선전하며 북송을 적극 독려했다. 일본인 아내들에게는 3년이 지나면 귀국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지상 낙원’ 선전과 달랐던 현실…차별과 생존 위기

그러나 북한에 도착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현실은 선전과는 전혀 달랐다. 가혹한 노동 환경과 만성적인 식량 부족, 출신 성분에 따른 차별이 일상적으로 이어졌고, 귀국이 가능하다는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는 2014년 보고서를 통해 북송된 재일교포들이 출신 배경을 이유로 차별을 받았으며, 1990년대 대규모 기근인 ‘고난의 행군’ 시기에 상당수가 가장 먼저 희생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탈북 후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거쳐 책임 인정

이번 소송의 원고들은 본인 또는 부모가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 사이 귀환 사업에 참여해 북한으로 이동했다가, 2001년부터 2003년 사이 탈북해 일본으로 돌아온 이들이다. 이들은 2018년 도쿄지방법원에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22년 1심 재판부는 “북한 내에서 발생한 행위에 대해 일본 법원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판단은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2023년 항소심 재판부는 북한 정부가 사실과 다른 정보를 제공해 원고들을 북한으로 이동하게 한 뒤 출국을 허가하지 않았고, 그 결과 원고들이 ‘인생을 빼앗겼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도쿄지방법원으로 파기환송했고, 재심리 끝에 이번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혹한과 굶주림 속 삶…법정에 울린 생전 증언

원고 가운데 한 명인 이시카와 마나부 씨 가족의 사례는 이번 재판에서 상징적으로 다뤄졌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이시카와 씨 가족은 북한에서 기온이 영하 30도에서 45도까지 떨어지는 혹한 지역에 배치돼 제대로 된 식량 배급조차 받지 못했다. 극심한 생활고와 정신적 고통 속에서 가족들은 고통을 호소했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고 전해졌다. 항소심 과정에서는 2024년 사망한 이시카와 씨가 생전에 남긴 영상 진술이 법정에서 재생됐으며, 그는 “우리의 목소리가 반드시 닿을 것을 진심으로 기도하고 믿는다”고 말했다.

◈공시송달로 진행된 재판…배상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

이번 재판은 북한 측이 소송에 응하지 않은 가운데, 법원이 소송 관련 서류를 법원 게시판에 게시하는 ‘공시 송달’ 절차를 통해 진행됐다. 지지통신은 외국 정부가 수행한 국가 사업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배상을 명령한 판결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실제로 배상금이 회수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국제사회·인권단체 환영…국군포로 소송 신속 판결 촉구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사회와 국내 북한 인권 단체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유엔인권사무소 서울사무소의 제임스 히난 소장은 이번 판결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책임 규명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물망초, 6·25국군포로가족회,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TJWG) 등 국내 북한 인권 단체들도 공동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들 단체는 다만 한국에서는 승소 판결을 받은 국군포로들조차 배상금을 받지 못한 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며, 대법원에 계류 중인 국군포로 추심금 소송에 대한 신속한 판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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