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한국은행이 새해 첫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기준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했다. 외환시장 불안과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는 상황에서, 통화 완화에 나서기보다는 금융안정을 우선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수출을 중심으로 한 경기 흐름이 비교적 견조하다는 점도 기준금리 동결을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에서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이후 이어진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5회 연속 이어가게 됐다. 앞서 단행됐던 금리 인하 흐름은 사실상 멈춘 상태다.

이번 결정은 고환율 환경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원·달러 환율은 한·미 기준금리 역전이 장기화되고 대규모 대미 투자 자금 유출 우려가 겹치면서 15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미국 재무부 장관의 발언 이후에도 환율은 1460원대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외환시장 불안과 물가 압력, 금리 인하 제약 요인으로 작용

외환시장의 불안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선택 폭을 좁히고 있다. 환율이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수출 기업들이 달러 환전을 미루는 이른바 ‘레깅’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해외 주식 투자 확대와 맞물려 달러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원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고환율은 물가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0.7% 상승하며 6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이는 2021년 이후 가장 긴 연속 상승 기간이다. 수입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통화정책 당국의 경계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3% 상승하며 네 달 연속 2%대를 기록했다.

이처럼 환율과 물가가 동시에 불안정한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금융시장 전반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이 한은 내부에서 공유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안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물가 흐름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 이번 기준금리 동결의 핵심 배경으로 작용했다.

수도권 부동산 열기 지속, 자산시장 자극 우려 여전

부동산 시장 역시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시장은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이어지며 매수세가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이달 5일 기준으로 49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자산 가격 상승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주택 시장 과열이 금융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행으로서는 신중한 접근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부동산 리스크가 완화되지 않는 한 통화 완화 정책을 선택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수출 회복, 통화 완화 필요성 낮춰

반면 내수 부진에도 불구하고 수출 부문은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로 지난해 수출 규모는 7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올해 역시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이 거시경제 지표를 지탱하면서 실물경제 전반의 충격을 일부 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수출 회복세는 한국은행이 당장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할 시급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내수와 수출 간 회복 속도가 엇갈리는 ‘K자형’ 경기 양극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전체 경제를 고려할 때 통화 완화에 나설 명분이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통화정책 전망 엇갈려…신중한 행보 이어질 듯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두고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내수 부진을 고려해 하반기에는 기준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고환율이 고착화될 경우 연내 인하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오히려 금리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환율 상황에서 한·미 금리 역전 폭이 확대된 만큼 기준금리 인하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내수 부진이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의 금리 인하가 선행돼야 한국은행이 하반기 통화 완화에 나설 여지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향후 발표될 실물 경기 지표와 외환시장, 금융안정 관련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며 신중한 통화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준금리 동결 기조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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