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경제·통상 수장들이 미국 워싱턴DC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을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액에 대해 ‘선불(Up front)’ 지급을 고집하면서 협의가 장기간 답보 상태에 있었으나, 한국 경제팀이 총출동하며 타결 가능성에 기대가 모이고 있다.
1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약 2시간 동안 협상을 진행했다. 이번 협상에는 김용범 정책실장을 중심으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장관 등이 참석해 트럼프 행정부와의 입장 차이를 조율했다.
협상의 핵심 쟁점은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금을 선불로 지급할지 여부다. 구윤철 부총리는 같은 날 주요 20개국(G20) 회의장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수차례 면담을 진행하며 “선불 지급 요구를 완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은 지난 7월 한국에 대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반도체·의약품 등 주요 품목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금융패키지 조성을 제안했으나, 투자 형태와 지급 방식에 대한 양국 간 이견으로 최종 서명은 미뤄진 상태다.
미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높여 전액 현금으로 부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직접 투자를 약 5% 수준으로 제한하고, 나머지를 출자·대출·보증 등의 금융수단으로 채우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입장 차로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은 3500억 달러를 선불로 지급하기로 했다”고 언급하며 한국 측을 압박했다.
한미 협상 지연으로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한 102억7000만 달러를 기록해 9대 주요 교역국 중 유일하게 하락세를 나타냈다. 8월에도 12% 급감한 87억4000만 달러를 기록해 두 달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특히 자동차 수출은 19억1000만 달러로 2.3% 줄었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이미 관세 협상을 마무리해 세율을 15%로 낮춘 반면, 한국은 여전히 25%의 고관세가 유지되고 있어 경쟁력이 약화된 상태다.
또한 중국은 미국의 조선산업 부흥정책 ‘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를 둘러싸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에 대해 제재를 발표했으며, 이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민간 기업의 운영에 간섭하고 한미 조선 협력을 훼손하려는 무책임한 시도”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한미 관세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만큼, 이달 말 경북 경주시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최종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9~30일께 방한할 예정이며, 한미 정상 간 합의 서명식이 APEC 회의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김정관 장관은 방미 전 기자들과 만나 “APEC은 양국 정상이 직접 만나는 자리인 만큼 협상에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다만 국익과 국민의 이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이끌어가겠다”고 말했다.
백철우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협상 타결 직전 일부 양보를 통해 중재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며 “APEC에서 양국 정상 간 협약식이 열릴 가능성이 높으며, 그 전까지 실무진 간 협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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