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총장 안상혁, 합신대)가 '죽음에 대한 기독교 생명윤리적 논의'를 주제로 2025학년도 2학기 기독교생명윤리(M.A. in Christian Bioethics) 강의 과정을 개설한 가운데, 김수정 박사(성누가병원 내과)가 지난달 30일 오후 합신대 설교센터에서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 문제:용어 정의와 그 쟁점’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합신대 기독교생명윤리 강의 과정은 지난 8월 26일부터 12월 2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학교 4층 설교센터에서 열린다.
김 박사는 “안락사·의사조력자살과 연명의료포기결정 용어는 서로 다른 것으로 명백히 구분돼야 한다”고 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연명의료포기결정은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보류하는 것으로서 자연적 죽음이 아닌 고통받는 기간만 연장하는 의료행위의 개입에 대해 환자가 거부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을 인정해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안락사는 의사가 환자의 통증이나 고통을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환자에게 치명적인 약물을 주입해 환자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의사조력자살도 안락사와 미묘하게 다른 용어다. 이는 의사가 환자의 통증이나 고통을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환자에게 치명적 약물을 처방해 환자가 스스로 복용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김수정 박사는 “안락사는 동기가 고통을 없애고, 사망의 원인은 주사나 약 등 해당 행위이며, 의도는 죽음을 앞당기는 데 있다. 죽을 권리가 그 근거”라며 “그러나 연명의료포기결정의 동기는 고통을 없애는 데 있으나, 의도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원치 않는 치료를 받을 권리를 기초로 한다”고 했다.
2016년 국회를 통과해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시작된 ‘연명의료결정법’은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이어가기보다, 환자 스스로의 결정권을 존중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법에 따르면 연명의료를 중단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증상이 빠르게 악화해 임종이 임박했으며 ▲담당 의사와 전문의 1인의 확인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이 소극적 조치라며, 말기 환자가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을 시 주치의에게 '조력 존엄사'를 요청하고, 담당 의사가 이를 돕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을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발의했다.
김 박사는 의사조력자살을 '존엄사'라는 용어로 쓰는 것이 명백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과반이 넘는 57.2%가 연명의료포기결정을 존엄사로 인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전혀 방향이 다른 두 행위가 동일한 용어로 혼용되어 사용하고 있으므로, 존엄사라는 용어를 쓰면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연명의료포기결정을 소극적 안락사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EAPC 2015 백서' 및 대부분의 나라의 법적 정의에 따르면, 안락사는 정의상 능동성을 내포하므로 수동적 안락사라는 말은 용어상 모순이며 생명의 단축을 의도하지 않는 연명의료포기결정은 소극적 안락사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연명의료포기결정은 의학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치료를 중단해 고통스러운 임종의 기간 연장을 막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말기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까지 중단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소극적 안락사는 사망을 앞당길 의도를 띠며 도움이 되는 치료까지 중단한다”고 했다.
김 박사는 ‘안락사’가 합법화되면 ‘미끄러운 경사로 논증’에 따라 확대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일단 입법이 되면 의학적 자살은 그 자체로 역동적인 양상을 띠게 되며, 원래 의도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확대된다”며 “말기환자의 고통 완화를 목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관행적으로 ‘왜 이 고통에는 적용 안 되는가’라는 근거로 ‘말기->비말기->정신적고통->노쇠, 비자발적/미성년자’까지 허용범위가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지난해 한 언론에선 정신적고통을 이유로 28살의 한 젊은 여성이 안락사를 예고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며 일례로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노인요양병원에서 안락사가 시행되는 경우도 보고되어 왔다."며 "이 때문에 안락사가 합법화된 국가에서는 노인요양병원에서 안락사를 당하지 않는 것은 환자의 몫이 되어버렸다는 자조가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김수정 박사는 “캐나다에선 2021년 ‘예측할 수 없는 사망’이나 ‘중대한 비말기 상태’까지로 안락사 허용 범위를 확대했다”며 “2023년부터 퀘벡주에선 호스피스 병동에도 안락사 허용이 의무화됐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시설로 강제 이송되지 않을 권리 보장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고 했다. 2025년 유엔 보고서는 말기 환자가 아닌 사람이 안락사를 받을 수 없도록 권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안락사가 법의 문턱을 넘으면 효용가치가 없다며 안락사를 경유해 죽음을 강요하는 현실판 고려장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말기 상태인 나를 어떻게 바라보실지를 생각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내 존재 가치가 부여되는(Doing) 게 아닌 존재 자체로 귀히 여기시는(Being) 하나님의 시선을 묵상해야 한다”고 했다.
김 박사는 또한 극심한 통증이 안락사 허용의 주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2017년 네덜란드 전체 사망자 수의 4.4%는 안락사로 사망했다"며 "그런데 통증이 주된 원인이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죽음을 요청하는 환자의 마음은 조석변개 등 강한 변동성과 휘발성을 띤다. 말기 환자의 60.2%는 추상적 상황에서 EAS(안락사 또는 조력자살)를 지지했고, 자기 자신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한 것은 10.6%였다. 그런데 후속 면담 결과 50.7%는 6개월 후 EAS에 대한 마음을 바꿨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완화의료의 발전으로 대부분의 통증이 조절 가능하며 최후의 수단으로 완화적 진정이라는 방법도 있기 때문에, 극심한 통증이 안락사 이행의 주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완화적 진정요법'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완화될 수 없는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아프지 않도록 진정제를 투여하여 재워드리는 방법이다. 이는 생명을 단축시키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 있으며, 사망을 앞당길 의도가 없으므로 윤리적 정당성 확보하는 이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원장은 "안락사를 요청했던 많은 환자들이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고 증상이 완화되어 그때 안락사를 안 받았던 것을 감사해했다는 시슬리 손더스의 말"을 인용하였다.
특히 김 박사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확대를 강조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말기암 등 치료가 어려운 환자와 가족에게 통증 조절과 심리·사회·영적 지지를 제공해 삶의 질을 높이는 의료 서비스다. 입원형, 가정형, 자문형, 소아청소년형 등 다양한 유형으로 운영되며, 통증 완화부터 임종 준비와 사별가족 돌봄까지 전인적 돌봄을 지원한다. 단순히 임종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 남은 삶을 존엄하게 보내도록 돕는 의료로,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하다. 김 박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한민국의 말기 환자에 대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보급률이 24.2%다.
김수정 박사는 “2025 한국리서치의 ‘조력 존엄사 및 웰다잉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EAS 찬성률이 50대 84%, 60대 81%, 70대 85% 등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높았다”며 “요양병원에서 불편하게 임종을 맞이하느니 차라리 안락사당하는 게 낫다는 의견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10여 년 전 대만 호스피스 돌봄 기관 및 노인요양기관을 방문했는데, 당구대·도서관·운동시설·그림 그리기 등 일상 활동을 윤택하게 영위하도록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고 1-2인실로 평소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사생활을 보호하는 모습을 봤다"며 "해당 기관들은 현실적인 의료수가로 인해 점차 확대·보편화되는 추세"라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경우 완화의료전문기관이 낮은 의료수가로 적자를 면치 못하는 구조다. 상급병원 산하 입원형 완화의료 전문기관이 점차 줄고 있고 독립형 호스피스도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며 "대부분의 노인질환, 말기 환자들이 이용하게 되는 노인 요양병원이나 요양원들은 군대 내무반처럼 대부분 다인실로 구성돼 있고, 환자의 일상 범위를 병상에만 국한시키려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비인간적이고 과의료화된 노화와 죽음 문화를 반성해야 한다”며 “인간적인 노인 요양 시설과 충분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그리고 존엄한 자연사에 대한 긍정적 논의가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한편, 합신대 2025학년도 2학기 기독교생명윤리 강의에서는 미디어 속 죽음의 이해, 성경적 관점에서 본 삶과 죽음, 호스피스 사역과 사례, 연명의료 중단 문제, 안락사와 자살 문제, 뇌사 및 장기 이식 논의, 기독교 장례 문화의 변화 등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강사진으로는 고신대 강진구·강성호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김병훈·박바울·이승구 교수, 건국대 엄주희 교수, 전 총신대 이상원 교수 등 학계와 현장의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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