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정보센터(센터장 송한나, 이하 NKDB)가 22일 오후 프레스센터 19층에서 ‘북러관계 변화와 러시아 파견 북한 노동자 인권의 오늘’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행사는 개회 및 환영사, 세미나, 토론 순으로 진행됐으며 개회 및 환영사에서 문서영 조사연구원(NKDB), 페이터 반 더 플리트 주한 네덜란드 대사가 각각 개회사 및 환영사를 전했다.
이어 김유니크 조사연구원(NKDB)이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 속에 남겨진 러시아 파견 북한 노동자 실태 발표'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김 연구원은 “NKDB에서 발간한 최신 보고서는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재 이후에도 북한은 학생비자를 위장 수단으로 활용해 노동자들을 러시아에 보냈으며, 이들은 하루 12~17시간씩 혹독하게 일하면서도 임금의 대부분을 상납당하고 있다. 가족은 북한 내에 인질로 남아 있어 탈출은 불가능하고, 여권과 신분증은 압수당한 채 이동과 생활조차 통제받는다. 이들의 처우는 국제노동기구가 규정한 강제노동의 모든 지표를 충족하며, 일부는 현대판 노예제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했다.
그는 “노동자들은 단순히 열악한 노동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와 북한 정권의 생존 전략 속에 철저히 이용되고 있다. 임금의 90% 이상이 북한 당국에 상납되며, 이 돈은 핵과 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전용된다. 결국 노동자 개인의 권리 침해가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고 있으며, 이는 인권 문제를 넘어 국제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구조는 러시아의 법 제도와 대학, 중개업체, 북한 대사관까지 얽힌 부패와 이권 관계 속에서 제도화되어 있다. 학생비자 소지자가 별도의 노동 허가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한 러시아의 법 개정은 사실상 제재 회피를 합법화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몫이 되었다. 현장은 열악한 숙소와 안전장비 부족, 치료비조차 보장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 끊임없는 사고와 부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단순히 북한 해외 노동을 전면 금지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대신 ‘원칙적 관여’라는 접근을 통해 임금이 직접 노동자에게 돌아가도록 제3자 관리 계좌를 도입하고, 국제기구와 기업의 인권 실사와 현장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한 해외 노동 문제는 인권 유린이자 국제 안보 문제이므로, 국제사회가 보다 책임 있는 방식으로 대응할 때만이 노동자들의 삶과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군 출신 탈북민 이은평 씨가 '군출신 러시아 건설 노동 현장 경험자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이 씨는 “저는 2010년에 북한군 131지도국에 입대하였다. 이 부대는 원자력과 핵무력을 강화하는 핵심 조직으로, 핵실험과 위성 발사에 필요한 시설을 건설하고 운용하는 임무를 맡았다. 저는 2017년까지 평양에서 복무하면서 핵무력 강화를 위한 여러 사업을 직접 수행하였다. 그러나 자금과 물자가 부족해지자 부대는 김정은에게 해외 노동 파견을 통한 외화벌이 방안을 제안했고, 저는 충성심과 신체 조건 등을 기준으로 선발되어 그 대상자가 되었다. 이후 대외 건설 지도 양성소에서 외국 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뒤 2017년 러시아 모스크바로 파견되었다”고 했다.
그는 “파견 이후 저는 외출과 휴대폰 사용, 현지인과의 접촉이 철저히 금지된 채 하루 12~16시간 노동을 이어갔다. 임금은 현지 노동자의 몇 배라 했지만 각종 상납과 공제로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거의 없었고, 컨테이너 숙소와 냉수 세면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내야 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접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제가 교육받은 한국과 실제 대한민국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자유에 대한 갈망이 싹트기 시작하였다”고 했다.
이어 “2018년 유엔 제재로 잠시 북한에 돌아갔다가, ‘유학’ 명목의 학생비자를 받아 다시 러시아로 재파견되었다. 형식상 학생이었지만 실제로는 노동을 계속해야 했고, 등록금 부담까지 더해져 생활은 더 악화되었다. 현지에서 동료가 위궤양으로 고통받으며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탈출을 결심하게 되었다. 단속을 피해 숨어 다니며 선교사와 교회의 도움을 받아 유엔에 난민 의사를 밝히고 절차를 밟았다. 북한의 추적과 위협 속에서도 버텨낸 끝에 2021년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저는 북한 해외노동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강제노동과 임금 착취, 가족을 인질로 한 억압 구조임을 분명히 증언한다. 더 나아가 전쟁 속에서 북한 청년들이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현실을 보며, 이들에게 자유와 인권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을 절실히 느낀다. 이 자리에서 국제사회와 시민들에게 북한 노동자와 군인들에게 인도적 통로를 마련해 줄 것을 호소하며, 언젠가 모든 북한 주민이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