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왜 이토록 희망을 잃었는가?’라는 물음은 이제 막연한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존적으로 다가오는 시대의 고통이 되었다. 과학과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현대인은 여전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허무함과 무력감 속에 살아가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시대에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교회는 어떤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절박한 질문에 응답하려는 책이 출간됐다. 바로 <레슬리 뉴비긴, 세상 속 교회의 길을 묻다>이다. 이 책은 선교사이자 신학자였던 레슬리 뉴비긴의 통찰을 바탕으로, 현대 문명이 처한 위기의 근원을 진단하고, 기독교 신앙이 감당해야 할 공적 책임을 선교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성찰한다. 본서는 단순한 문화 비평서도, 교회론 입문서도 아니다. 근대 계몽주의 세계관이 남긴 유산과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안에서 복음의 빛이 어떻게 다시 시대를 비추어야 할지를 치열하게 묻고 있는 책이다.
계몽주의의 빛과 그늘 속에서 교회는 무엇을 놓쳤는가
뉴비긴은 계몽주의가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중심에 두고 중세의 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고자 한 운동이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분명 계몽주의는 인류의 역사에 혁명적 진보를 가져온 사상적 전환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사상적 진보가 가져온 결과가 과연 전적으로 긍정적인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질문을 던진다.
계몽주의는 ‘믿음’보다는 ‘의심’을 출발점으로 삼았고, 인간의 이성과 감각에 기초한 과학적 세계관이 점차 하나님 계시의 자리를 대체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으로 축소되었고, 공적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권위는 밀려났다. 뉴비긴은 이러한 변화를 단지 문화의 진화가 아니라, ‘희망의 상실’이라는 문명적 위기로 진단한다. 더 이상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는 사회, 기계적 세계관에 갇힌 인간—이것이 그가 진단한 서구 문명의 현주소다.
교리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이해의 틀로서의 복음
책의 서문에서 뉴비긴은 “기존의 이해 틀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며,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 대안으로 ‘기독교 교리’를 제안한다. 이때의 교리는 낡은 정답지가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고 살아가는 하나의 ‘신앙의 틀(faith framework)’이다. 그는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의 통찰을 따라, 모든 인간은 ‘절대 중립’에서 사고하지 않으며, 이해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신념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제는 이 신념이 어떤 방향을 향해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더 이상 복음의 본질을 변명하거나 위축된 채 침묵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뉴비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비전이야말로 현대 문명이 회복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 신앙은 사적 감정이 아니라, 공적 진리이며, 공동체적 비전이다. 이 책은 그 사실을 독자들에게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증명해낸다.
선교는 대결이 아니라 대화다
뉴비긴은 근대 문화와의 대화를 ‘선교적 만남’이라고 표현한다. 기독교는 단순히 과학주의적 세계관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관이 내포한 모순과 한계를 인정하게 하며, 그 틈 사이로 복음의 비전이 스며들도록 돕는 것이다. 이 선교적 만남은, 진리의 독점이 아니라, 예수의 길을 따르는 겸손하고도 단호한 증언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는 교회가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이나 ‘기독교 국가’라는 콘스탄티누스적 틀을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또한 단순히 개인의 영성에만 갇힌 신앙 역시 시대의 아픔과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교회는 사회와 정치의 심장부에 깊이 관여하면서도, 그 성취를 인간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 다시 ‘빛의 자녀’로
이 책은 단순한 진단에서 멈추지 않는다. 독자는 책장을 넘기며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뉴비긴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환과 고백의 신학을 본보기로 삼아, 현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종말론적 비전을 기반으로 새로운 이해의 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일하고 완벽한 정책이나 해답은 없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행동을 삶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레슬리 뉴비긴, 세상 속 교회의 길을 묻다>는 단지 교회의 미래를 논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게 하며,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어떤 ‘빛’이 되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한국 교회를 위한 새로운 공적 신앙의 모색
본서는 목회자 모임 ‘사귐과 섬김’의 지원으로 출간되었으며, 한국 교회 내에서 기독교의 공공성과 선교적 정체성에 대한 담론을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현대 문명의 종말적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다시 ‘희망’의 언어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은 시대를 꿰뚫는 통찰로 무장한 지성인 뉴비긴이 우리에게 던지는 선교적 제안이다. 공허한 미래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다시 드러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신학적이면서도 목회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선교적인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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