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스타뉴스(Morning Star News)의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 신성모독법이 종교적 소수자와 빈곤층을 겨냥해 재산을 강탈하고 개인적, 경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조직적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HRW)가 경고했다.

◈신성모독 혐의, 폭력과 강탈의 구실로 전락

6월 9일 발표된 29쪽 분량의 HRW 보고서 "땅을 빼앗기 위한 음모: 신성모독법의 협박 및 이익 목적 악용"은 신성모독 혐의가 군중 폭력을 선동하고, 취약한 공동체를 몰아내며, 그들의 주거지와 재산을 무책임하게 강탈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HRW 아시아 부국장 패트리샤 고스먼은 "신성모독법을 이용해 종교를 명분으로 협박과 갈취를 일삼는 이들이 기소되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으면서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다"며, 파키스탄 정부가 법 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피해 사례: 삶의 터전 잃은 종교 소수자들

HRW는 2024년 5월부터 2025년 1월 사이 펀자브 주의 라호르, 구즈란왈라, 카수르, 셰이크우푸라, 그리고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신성모독 혐의를 받은 피해자 14명과 변호사, 판사, 검사, 인권활동가, 언론인을 직접 인터뷰했다.

라호르에 거주하는 52세의 기독교인 여성은 2019년, 평생의 저축과 지인에게 받은 대출로 독립 미용실을 열었다. 이전 직장은 급여 인상으로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가 이를 거절하자 협박을 가했다. 몇 달 뒤, 지역 성직자가 이끄는 폭도들이 그녀의 미용실을 급습해 직원들과 함께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했다. 이들은 그녀가 꾸란을 모독했다고 주장했지만, 피해 여성은 "성경조차 갖고 있지 않았고, 꾸란을 소지할 이유가 없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또 다른 사례는 라호르의 한 빈민가에서 사립학교를 운영 중인 43세의 기독교인이다. 2021년, 한 학부모가 특정 교사가 신성모독 발언을 했다고 항의하자 그는 교사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지만 해당 교사는 부인했다. 며칠 뒤, 지역 종교 단체가 학교를 불태우겠다고 협박했고, 결국 교사는 사직했다. 그러나 그 이후 단체는 피해자에게 20만 루피(약 미화 800달러)를 종교 단체에 기부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말도, 어떤 진실도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속적인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신성모독법, 사실상 폭력의 면죄부

파키스탄에서 신성모독은 여전히 사형에 해당하는 중범죄다. 지금까지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사례는 없지만, 단지 혐의만으로도 수십 명이 폭도에 의해 살해됐다. 피고인들은 장기 구금, 불공정한 재판, 심지어 극단주의자들의 자력구제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이번 HRW 보고서는 특히 기독교인, 아마디야파,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들이 신성모독법 남용의 주된 피해자임을 지적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법적 소유권이 없는 거주지에 살고 있어 폭력 사태 발생 시 퇴거 위기에 쉽게 처하게 된다. 실제로 몇몇 지역에서는 폭도들의 공격 이후 공동체 전체가 탈출하며 집과 생업을 모두 버려야 했다.

보고서는 신성모독법이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재산을 강제로 빼앗는 도구로 이용된 사례도 확인했다. 광범위하고 모호한 법 조항은 거의 증거 없이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해, 공포와 불안의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방임

HRW는 파키스탄의 형사사법 체계가 이러한 남용을 가능하게 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보고서는 당국이 군중 폭력의 주동자를 거의 처벌하지 않으며, 경찰도 피고인 보호나 사건 수사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일부 경찰은 개입했다가 협박을 받는 경우도 있었으며, 정치인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선동에 연루되고도 체포되지 않거나 협박과 정치적 무관심 속에 무죄로 풀려나는 일이 잦다고 밝혔다.

◈국제사회 향한 경고와 촉구

HRW는 파키스탄 정부에 신성모독법의 전면 폐지와 이 혐의로 수감된 모든 이들의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또한 혐의로 인한 이주 및 재산 강탈 사건에 대한 전면 조사와, 혐의 이후 강제로 이뤄지는 재산 양도나 매각을 방지할 법적 장치 마련도 촉구했다.

고스먼 부국장은 "정부가 신성모독법에 따른 폭력과 인권 침해를 방치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며 기본적 자유의 침해"라며, "이 문제에 대한 무대응은 단순한 묵인이 아니라, 불의에 대한 명백한 동조"라고 비판했다.

한편, 파키스탄은 오픈도어선교회가 발표한 2025년 세계 기독교 박해국 순위(World Watch List)에서 8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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