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은행이 올해 국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하며 기준금리도 전격 인하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같은 수준의 저성장을 경고하는 조치로, 현재 경제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한국은행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9일 서울 중구 본점에서 열린 5월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2.75%에서 0.25%포인트 내린 2.50%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는 다시 2.00%포인트로 벌어지게 됐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연속 금리를 인하한 뒤, 올해 1월에는 동결을 선택했다. 이어 2월에는 다시 한 차례 인하를 단행했지만, 4월에는 고환율과 미국 경기 정책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다시 관망세로 돌아선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경기 침체 신호가 구체화되고, 글로벌 무역 환경의 악화 우려가 커지면서 이번 5월 회의에서는 금리 인하로 선회했다.

특히, 1분기 한국 경제는 시장의 예상을 깨고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246%를 기록하며, 경기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는 우려가 커졌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조치가 본격화되기도 전이었던 만큼, 향후 통상 마찰이 현실화되면 한국 수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성장률을 1.5%로 예상하며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했지만, 이번 발표에서는 성장률을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는 경제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혹은 코로나19 충격처럼 심각한 수준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0%대의 성장률은 한국 현대사에서도 드문 사례다. 1956년 한국전쟁 직후 성장률이 0.7%를 기록했고, 1980년 오일쇼크 당시 -1.5%, 1998년 외환위기 때 -4.9%, 2009년 금융위기 시기에는 0.8%,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의 충격으로 -0.7%를 기록한 바 있다. 이번 전망치는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한국 경제가 다시 한 번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이미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잇따라 낮추며 경고음을 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을 0.8%로 제시했고, 국제통화기금(IMF)도 기존 2.0%에서 1.0%로 하향 조정한 상태다. 다만 IMF 전망은 1분기 역성장 충격을 반영하지 않은 수치로, 실제 경제 상황을 과소평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다행히 금리 인하의 걸림돌로 작용하던 환율 부담은 최근 완화되는 흐름이다. 4월 초까지만 해도 달러당 1,480원선을 넘나들던 환율은 현재 1,300원대 후반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증가로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통상 협상에서 원화 강세 압박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도 다소 둔화됐다. 1분기 가계대출은 약 2조8,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다만 토지거래허가제가 일시적으로 해제되면서 2분기에는 다시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한은은 스트레스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의 7월 시행과 함께 토허제 확대 지정 등으로 과열을 억제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은의 이번 결정 배경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지연 가능성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정책 여파로 물가 불안이 확대되자 연내 기준금리를 1회 인하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면, 경기 회복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이번 조치에 그치지 않고, 오는 8월 추가적인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이 더 구체화될 경우 수출 환경이 악화될 수 있으며, 새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같은 확장적 재정정책과 맞물려 추가적인 통화완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충분히 금리를 낮추고, 정부가 재정을 적극적으로 투입해 내수를 부양해야 할 정도로 경기가 좋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저출산 문제 해결, 기술혁신, 생산성 제고 등 장기적인 구조개혁 없이는 지속가능한 성장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도 “환율 부담이 줄어든 덕분에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었다”면서 “성장률 전망을 크게 낮출 정도로 경기 둔화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 만큼, 재정정책 역시 본격적으로 동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과 동일한 1.9%로 유지했다. 내년 물가상승률은 기존 1.9%에서 다소 낮은 1.8%로 수정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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