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훈련 군사기밀을 중국군 정보조직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현역 병사가 중국 출신으로 밝혀지면서 안보 이적 행위에 대처하는 허술한 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병사가 사실상 간첩 행위를 했음에도 북한 이외의 나라를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를 처벌하지 못하는 현행 ‘간첩죄’의 허점이 또다시 드러난 거다.

해당 병사는 수사 초기엔 중국 군사정보조직과 연결된 한국 군인 신분으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군 검찰 조사과정에서 2003년에 중국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베이징에서 성장한 중국계 한국인으로 밝혀졌다.

그가 한국에 거주한 기간은 5살 무렵 약 5개월간 지낸 게 전부다.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성장한 청년이 한국 군대에 입대할 수 있었건 부친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 하나로 2023년 12월에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해 전방부대에서 보급병으로 복무할 수 있었던 거다.

해당 병사가 중국계지만 처음부터 군사기밀을 중국에 넘기는 이적 행위를 한 건 아니다. 중국 태생인 그가 한국 군대에 입대한 군복을 입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 화근이 됐다. 이 사진을 본 중국군 연합참모부 군사정보국이 그를 ‘스파이’로 끌어들인 거다.

이 병사가 중국 군사정보국에 넘긴 자료는 미군이 작성해 한국군에 전파한 군사기밀이다. 주한미군 주둔지 명칭과 병력증원 계획, 유사시 적 정밀타격 대상이 될 수 있는 표적 위치 등이 포함돼 있다. 아울러 한미 연합연습 업무 담당자들의 소속·계급·성명·연락처 등 개인정보와 한미연합사령부 교범 목록까지 중국군 정보 당국에 넘긴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병사의 안보 이적 행위는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중국에 넘어간 군사기밀이 북한에까지 들어가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군 당국은 간첩 행위를 한 해당 병사를 ‘간첩죄’가 아닌 일반이적 등의 혐의만 적용해 구속했다. 이적 행위의 대상이 북한이 아닌 중국이란 이유 때문이다.

군사시설을 탐지한 기밀을 외부에 유출하다 적발된 다른 사례가 있다. 함경북도 온성군 출신의 최모 씨는 지난 2011년 탈북해 남한에 정착했다. 탈북 전 북한 대남 공작 부서인 보위부에 서약서를 쓰고 비밀 정보원에 임명됐으나 탈북과 함께 귀순했다. 하지만 남한 정착 3년 만인 2015년 3월 보위부의 회유에 따라 간첩 활동을 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최 씨는 2017년 8월 서귀포시 모슬포읍 모슬봉에 건설된 레이더 기지를 탐지해 그 자료를 북한 측 요원에게 넘겼다. 레이더망 반경·높이, 받침대 높이, 검문소에서 봉우리까지 거리 등을 실측한 자료를 기지 및 부속 건물을 촬영한 사진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다른 탈북민 4명의 동향을 보고하기 위해 제주에서 탈북민이 운영하는 식당에 위장 취업하고,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민에게 선물을 보내주는 등 인지도를 쌓는 방법으로 인적 사항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수상한 행동이 경찰과 검찰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앞서 현역 군인이 군사기밀을 중국군 정보 당국에 넘긴 것이나 탈북민이 주요 군사시설 등 정보를 탐지해 북한 보위부에 넘긴 건 모두 국가 안보에 위해를 끼치는 중대한 이적 행위다. 하지만 현역 군인은 일반 이적죄로, 탈북민은 ‘간첩죄’로 처벌받게 된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비슷한 죄를 저질렀으나 처벌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거다.

현역 병사에 의해 중국에 넘겨진 자료는 대한민국의 안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건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이 관련된 군사기밀이란 점에서 외부에 고의로 유출한 건 간첩 행위에 버금간다. 그런데도 해당 병사에겐 일반 이적 외에 간첩 혐의를 적용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해당 병사가 사실상 간첩과 다름없는 이적 행위를 했는데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이유는 지난 1953년에 제정된 ‘간첩죄’ 규정 때문이다. 이 법은 북한을 제외한 다른 국가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선 간첩 행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될 당시인 6.25 전쟁 휴전 직후의 사회 분위기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국가 안보에 위해가 되는 적은 도처에 널려 있다. 첨단 기술 환경에서 암약하는 다양한 간첩 활동을 케케묵은 법 조항으로 막을 수 없게 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 중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와 오산 미군 기지 등 군사시설을 카메라로 촬영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벌어져 문제가 됐다. 이건 OECD 회원국 중 ‘간첩죄’를 적국, 즉 북한에 한정하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은 ‘간첩죄’의 범위를 확대하면 인권 침해와 권한 남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여전히 법 개정에 소극적인 자세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국가 안보에 엄청난 위협 요소를 간과하는 것이란 점에서 더는 용납이 안 된다.

무슨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생각에 죄의식 없이 간첩질을 감행하고 이들에게 한국은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누가 집권하든 이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간첩이 마음대로 활개 치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