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는 피터 와드업의 기고글인 ‘행동에 대한 믿음은 어떤 모습인가’를 1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피터 와드업은 The Leprosy Mission의 CEO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신앙과 정치가 대립하는 이 시대에, 새 교황을 향한 대중의 환영은 참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레오 14세는 역사상 첫 미국인 교황이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주교로 섬겼던 나라, 페루에서 ‘자신들의 교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페루에서 소외된 공동체와 함께했던 사역을 지금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바티칸에서의 첫 연설에서 그는 이탈리아어에서 스페인어로 자연스럽게 언어를 전환했다. 발코니에서 그는 “내가 사랑하는 페루 칙라요 교구의 신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한 자선단체 관계자는 이 교황이 “장화를 신고 진흙탕을 헤치고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지 비유가 아니라, 2022년 페루 칙라요에 폭우가 쏟아졌을 때 실제로 그가 했던 행동이다.
레오 14세 교황의 인격에 대한 이런 찬사를 접하며 필자는 큰 격려를 받았다. 그의 첫 주일 연설에서 평화와 인도적 지원을 외친 메시지는 혼란과 분열이 심화되는 이 시대에 마치 영혼에 건네는 치유의 묘약 같았다. 오늘날 가장 부유한 국가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을 외면하는 현실 속에서, 그런 외침은 오히려 시대를 거스르는 용기로 들린다.
불행히도 미국과 영국은 점점 더 자국 중심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두 나라는 해외 원조 예산을 크게 삭감했으며, 반이민 정서가 뚜렷하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 부통령은 심지어 반이민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랑의 위계(hierarchy of love)’라는 개념까지 주장했다. 제이디 밴스는 사랑은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웃, 국가로 확장되며, 마지막으로는 다른 인간에게 향한다고 말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밴스가 이러한 위계를 ‘기독교적 가르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는 정치인이 사랑을 정의하는 것이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필자는 기독교인이다. 우리는 분명히 성경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예수님은 이 이웃이 단지 내 옆집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그는 이웃이 다른 문화나 인종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신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기독교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모든 주요 종교는 자비, 정의, 구제(알므즈)를 강조한다.
필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곳곳에서 다양한 종교의 지도자들과 협력한다. 필자의 동료들은 이들에게 나병(한센병)의 초기 증상을 인식하는 교육을 제공해 많은 생명을 살려냈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이 섬기는 공동체와 깊은 신뢰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나병에 대해 교육하고, 환자들이 부끄러워하거나 저주받았다고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며, 의료진을 찾아 치료받도록 권유하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다.
물론 필자는 신앙이 없는 이들이 매일 보여주는 놀라운 봉사와 선행을 부정하지 않는다. 크든 작든 친절한 행동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 그리고 당연히, 필자의 동료들은 전 세계에서 모든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돕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행동의 원천이 되는 것이 바로 ‘믿음’일 때가 많다. 기독교인으로서 필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님께 깊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필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한다. 사실, 믿음이란 다른 사람을 돌보는 행동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믿음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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