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최근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문제로 인해 상처 입거나 회의적인 신앙인으로 바뀐 이들이 꽤 많다. 가장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가 응답 되지 않을 때,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가 승리하는 현상들을 계속 목도할 때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 목사라 할지라도 낙심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유명한 부흥사요 설교가인 D. L. 무디(D. L. Moody)는 ‘기도의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불신자 백 명의 명단이 적힌 쪽지를 갖고 다니며 평생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도가 응답되어 한 사람씩 그리스도인이 될 때마다 명단에서 그들의 이름을 지워나갔다. 마지막에 그가 임종할 때는 그 명단에 있던 백 명 가운데 96명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네 명도 무디의 장례식에서 그들의 삶을 예수님께 드리면서 무디의 기도는 다 응답되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제임스 O. 프레이저 (James O. Fraser)는 인내로 기도했던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중국 리수족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처음 몇 년은 참으로 고달팠다. 프레이저는 진흙 위에서 자주 잠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사역에 열매가 없었기 때문에 심한 좌절감에 빠졌었다. 어렵사리 전도한 신자들마저 모두 다 예수님을 포기하고 우상에게로 되돌아갔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리수족들이 복음에는 물론 프레이저 자신에게도 아주 냉담했다는 것이다. 5년이나 기도하고 희생하며 고된 사역을 이어갔지만, 사역의 열매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심히 낙심했다.

프레이저의 일기를 보면, 우리 역시 기도하면서 힘겨워하고 있는 바로 그 이유에 대해 그가 하나님께 용감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돌보고 계신다는 것은 확실합니까?”

프레이저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고서야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추측하고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그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거절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사탄의 군대가 하나님의 뜻을 대항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영적인 대립을 깨닫게 되면서 프레이저는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영적인 싸움에서는 논리나 호소가 아닌 꾸준하고 지속적인 기도가 유일한 무기였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프레이저는 부싯돌처럼 자기 얼굴을 하나님을 향해 고정시킨 채 기도에 전념했다. 사역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면 기도했고, 섬김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면 더 열심히 기도했다. 아무 결실 없이 몇 개월의 시간이 흘러가도 인내로 계속 기도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제임스 프레이저는 세상을 떠났다. 말라리아의 후유증인 뇌질환으로 인해 사망했다. 처음에는 일본인의 박해를, 다음엔 공산주의자들의 극심한 박해를 받은 뒤 ‘인내하고 견뎌내라!’는 격려의 말을 남기고 리수족 그리스도인들의 작은 공동체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놀라지 말라. 그 모든 환란에도 불구하고 1990년까지 공산주의자들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리수족의 90퍼센트가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한다.

프레이저는 죽기 몇 년 전에 이런 글을 남겼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승리하시는 방법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기도’와 ‘믿음’과 ‘인내’ 이 세 가지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2). 이 말씀대로 때가 될 때까지 믿음과 인내로 기도함으로, 우리 모두도 기도 응답의 기적을 하나씩 체험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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