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중복음과 성결교단
사중복음은 한국의 복음주의 계통 성결교단이 중심으로 삼는 전도표제다. 사중복음이란 중생(Regeneration), 성결(Sanctification), 신유(Divine Healing), 재림(Jesus’ Second Coming)으로서 1930~40년대 초창기부터 성결교회의 복음전도와 교세확장을 위해 강조하던 전도표제였고, 한국의 성결교회는 이것을 교단을 상징하는 신학적 기조처럼 여겨 지금까지 내려 오고 있다. 그래서 사중복음하면, 특히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을 떠 올리게 할 만큼 성결교단은 이를 교단을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Trade Mark)로 여기고 있다.
성결교단 소속의 신학교수들은 이 사중복음의 신학적 의미, 역사성, 사회에 끼친 영향 등에 대한 자신들만의 연구를 글이나 논문, 소규모 서적들을 통해 발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제들을 신학화하여 가시적 결과물로 아직 기독교계에 내 놓고 있지 못하는 입장이다. 오로지 자신들만이 그것을 옥이야 금이야 하고 있는 것 같은 상황속에 있다.
성결교단은 사중복음 때문에 성장했는가?
한때, 성결교단은 이 전도표제를 전도나 부흥의 모토로 사용하여 한국 3대 교단 중의 하나로 성장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하여 보면, 성결교단이 그런 경지에 이르기에는 위의 4가지 전도표제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실, 그 사중복음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전체적인 교회성장의 사회적 분위기를 힘입은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의 한국 산업화의 물결을 탄 교회성장에 의한 것이 더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즉,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증가라는 수요에 교단이 목회자를 파견 하여 교회를 세우는 공급에 의한 결과로 본다는 말이다. 또 성도들이 교리에 좌우되어 교회를 정하거나, 신앙생활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교회에 출석하는 동기에는 종교사회환경적 요인들이 있는데, 교회성장연구에 의하면, (1) 자신의 영적 신앙을 갖고자 하는 동기, (2) 교회가 사회활동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조직, 즉 사회에 그룹활동을 위한 가입에 가장 손쉬운 단체이기 때문에, (3) 자녀들의 학교 외 교육적 혜택을 보기 위해, (4) 종교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는 판단 때문에, (5) 목회자 설교나, 교회건물환경, (6) 집에서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있기 때문, 등 이런 사회 환경적 요인에 의해 한국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했다고 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는 예를 들어, 신학적으로 칼비니즘이 자신의 신앙 스타일(style)에 맞아서 장로교인이 되었고, 또는 그 밖의 어떤 교단이 강조하는 신학적 경향이 맞아서 크리스챤이 되었다는 주장은 그리 타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결교회 성장도 성결교단이 강조하는 사중복음에 신앙적으로, 또는 신학적으로 좋다고 생각하여 성결교회에 출석하여 교회, 교단이 성장하게 되었다고 하기가 어렵는 말이다. 결국, 사중복음은 교단을 상징하는 슬로건일 뿐, 구체적으로 교인들이 그 신학적 성향에 맞아 성결교회 성도가 되게하는 영향력을 갖지 못하다라는 것을 생각을 하게 한다.
성결교단용 사중복음
위에서 이러한 슬로건이 성결교단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하였다. 사중복음의 특성은 영혼의 내적 구원 의미에만 치중되어 있다. 한 개인이 갖는 영적 신앙 영역에 갇혀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거듭남, 성결한 성품 향상, 개인의 영적치유,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개인적 신앙에 의한 기대감에 국한되어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그동안 사중복음이 성결교단의 정체성이나 이미지에서 긴요한 명분을 제공해 왔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국내용 복음화 운동에 머물러 있어서는 않된다. 분명한 것은, 그렇게 하면 큰 교단, 영향력 행사로 인류에 공헌, 나아가 국제화, 세계화 될 수가 없다. 둘러 쌓여진 울타리를 넘어가거나 제거해야 하는데, 그런 방법론 중의 하나가 복음의 사회적 적용이다.
개인구원을 넘어 웨슬리가 실천한 사회복음(구원)과 걸음을 같이해야 한다
개인이나 어느 단체가 발전하려면 사회성을 가져야 한다. 사회와 떨어져 있으면 잘하면 현상유지, 못하면 축소, 악화되면 소멸된다. 어느 단체나 사회, 또는 국가는 끝없는 사회적 도전을 통해 부흥하고 발전하였다. 즉, 대 사회적 영향력 확대가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사중복음이 성결교단이라는 울타리를 넘어가려면 무엇에선가 우선 사회적 가치 창조를 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사중복음으로 자신의 교회나 교단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나, 국가, 또는 일반단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를 하고, 나아가 대안을 제시하여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했는지 그 사회복음적 성향을 알아보자. 예수는 영성훈련을 철저히 하였다. 3여년 동안 공생애의 삶을 살기 전 40일을 금식하기도 했다. 40일 금식을 마치신 후, 예수는 사회 현장으로 나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다. 골방에서 기도나 하신 것이 아니고, 탁상복음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하고, 현장에 나아가 행동으로 하셨다. 이사야서 61장으로 자신이 사회에 온 목적을 누가복음 4:8절을 통해 나타내셨다. 가난한 자, 핍박받는 자들을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사람들로 말씀하시고, 나아가 병든자들을 치유하신 내용들을 신약성경 복음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 교회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내용들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의 교회나 목회자들은 사회구원을 잘 설교하지 않는다. 더 큰 모순은 사회복음적 설교를 하거나 말하면 자유주의 신학자, 또는 좌파 목회자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이 하시고 가르쳐준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편견으로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목사들이 순수 성경정신에 입각해 있는 것이 아닌, 또는 복음의 정신 보다 정치적 이념에 자신도 모르게 깊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들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성결교단은, 사회현상에 대체로 무관심한 면을 나타내 보이고 있으며, 또한 매우 소극적 자세를 나타내 보인다. 이러한 부정적이거나 소극적 전도 표제를 넘어야 발전하고 성장하게 되며, 국제화 될 수 있다. 사중복음을 이제는 바깥세상에 내어 놓아야 하는데, 단순한 이론, 논리가지고는 않되며, 적용하여 행동하는 운동의 결과를 나타내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사중복음은 빛이 날 것으로 확신한다.
“사중복음(개인구원)을 넘어 웨슬리의 사회복음(사회구원)으로”
“Beyond the Fourfold Gospel of Personal Salvation, Toward Wesley's Social Gospel of Social Redem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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