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1절 41절 강해주석과 설교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9장의 감동적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진리를 함께 깨닫고자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을 만나 치유하시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 기적 속에는 죄와 고난의 의미,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믿음과 순종의 중요성, 그리고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우리의 사명까지, 깊고 풍성한 영적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강해주석을 통해 각 구절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깨닫고, 설교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한복음 9장 1절)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강해주석: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논쟁을 마치시고 나가시는 길에(요 8:59)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것은 그의 불행이 선천적이며, 오랜 기간 동안 고통 속에 살아왔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인간의 근원적인 죄성과 그로 인한 영적 어둠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사람이 날 때부터 타락한 그 이후에는 성령의 지혜와 총명,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의 상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설교: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눈길이 향한 곳은 화려하고 존귀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고통 속에 신음하는 한 영혼, 나면서부터 빛을 보지 못했던 소경에게 시선을 두셨습니다. 그의 어둠은 단순히 육체의 어둠만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경험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구걸하며 살아가야 했던 그의 삶은 깊은 절망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바로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멸망으로 향하는 영적인 소경의 상태와 같습니다. 이 모습은 바로 죄로 인해 영적인 어둠 속에 갇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실존적인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스스로는 빛을 볼 수 없는 영적인 소경과 같았음을 기억하고, 긍휼의 눈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 2절)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강해주석: 제자들의 질문은 당시 유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인과응보 사상에 근거합니다. 그들은 질병이나 장애와 같은 고난은 반드시 개인의 죄나 그 부모의 죄의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이 질문은 인간적인 호기심과 함께, 고난의 원인을 쉽게 단정하고 타인의 불행을 평가하려는 인간의 속성을 드러냅니다.
◆설교: 제자들의 질문 속에는 인간의 섣부른 판단과 정죄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이 소경의 불행을 보며, '도대체 누구의 죄 때문에 저렇게 고통 받는 것일까?' 쉽게 단정하려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역시 때로는 주변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보며, 그 원인을 단정 짓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인간적인 판단을 경계해야 합니다. 고난의 원인은 우리가 쉽게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이 사람의 이렇게 된 그 원인이 뭣이 원인입니까? 제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누구의 삐뚤어짐으로 이와 같이 됐습니까, 죄입니까?’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 3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강해주석: 예수님의 답변은 당시의 통념을 깨뜨리는 혁신적인 말씀입니다. 이 소경의 고난은 그의 죄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나기 위한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난이 항상 죄의 결과만은 아니며, 때로는 하나님의 주권적안 큰 계획 안 에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설교: 예수님의 답변은 당시의 통념을 깨뜨리는 혁신적인 말씀이며, 우리의 좁은 시야를 넓혀줍니다. 고난이 반드시 죄의 대가라는 우리의 생각에 예수님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 소경의 고통은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에 직면할 때에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선하신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 고난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제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9장 4절)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면 아무도 능히 일할 수 없느니라
◆강해주석: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 곧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수행해야 할 제한된 시간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낮’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상징하며, '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사역을 완성하실 수 없는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설교: 예수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분명했고, 그 일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 제한적임을 아셨습니다. ‘낮이매… 하여야 하리라’는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긴박함과 헌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역시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은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밤이 오면 아무도 능히 일할 수 없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깨어 있는 동안, 힘이 있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열정을 쏟아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 5절)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강해주석: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영적인 어둠을 밝히고 진리를 드러내는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그늘 아래 신음하는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추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어둠 속에서 방황하지 않고 진리의 빛 가운데 행하게 됩니다(요 8:12).
◆설교: 예수님은 스스로를 ‘세상의 빛’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모든 것을 드러내듯이,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어둠에 갇힌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추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진리 자체이시며, 그분을 따르는 자는 영원한 어둠 속에서 방황하지 않고 생명의 빛 가운데 행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자로서,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의 자녀로 살아가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어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 6절)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강해주석: 예수님의 치유 방식은 때때로 우리의 이성적인 이해를 뛰어넘습니다.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는 행위는 위생적이지 않고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권능과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 치유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으며, 소외되고 고통 받는 소경을 향한 긍휼의 마음으로 이와 같은 행위를 하신 것입니다. 이 진흙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현실과 같습니다.
◆설교: 예수님의 치유 방식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는 모습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행위 속에는 예수님의 깊은 사랑과 권능이 담겨 있습니다. 비록 겉으로 보면 필요 없고 부담스럽고 괴로운 이해 못 할 현실일지라도, 주님이 낫게 하시기 위해 고쳐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을 그 소경은 알았고 바라봤기 때문에 원망 불평하지 않고 기쁨으로 소망을 가지고 주님께 순종했던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일지라도, 예수님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치유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적인 판단을 넘어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신뢰하고, 그분의 주권적인 역사를 겸손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현실이라는 진흙 속에는 예수님의 복음의 진액, 사랑의 피와 성령, 하나님의 선택의 은총이 담겨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 7절)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강해주석: 예수님은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고, 그 결과 육신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영적인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설교: 예수님은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단순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그 못의 이름, '보냄을 받았다'는 의미 속에는 깊은 영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눈을 뜨게 된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에게 사자 구덩이에 던져 넣는 것과 같은 현실이 닥칠지라도, 주님 명령대로 순종하고 통과하면 환한 광명이 열립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그분께 순종할 때 영적인 어둠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죄와 어둠을 씻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 8-9절) 그러므로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저는 내가 그로라 하니
◆강해주석: 소경이었던 사람이 눈을 뜨고 나타나자 주변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변화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 이전의 거지였던 그를 쉽게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비슷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유된 소경은 자신이 바로 그 사람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과거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설교: 소경이었던 사람이 눈을 뜨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자 주변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의 변화가 너무나 극적이었기 때문에 동일인인지조차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된 성도의 삶 역시 세상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의문을 던져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변화된 모습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전의 흉하고 더럽고 죄악된 모습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회개하고 청산되면 무궁세계에서 그 흉터있는 것이 오히려 더 매력적입니다. ‘이런 죄인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됐습니다’ 하니까 더 매력인 것입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거룩하고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때, 사람들은 그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관심을 더 갖게 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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