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4·27 판문점선언’ 7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남북대화 재개를 주장했다. “다시 한반도 평화의 길로 나설 때”라며 “군사적 충돌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9·19 군사합의를 복원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연설 대부분을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데 쏟았다. “지난 3년은 그야말로 반동과 퇴행의 시간이었다”며 12·3 비상계엄을 “대한민국 퇴행의 결정판”이라고 비난했다. “비상계엄이 남긴 경제적 손실이 엄청나다”면서 “계엄으로 인한 소비 위축으로, 두 달 만에 자영업자 수가 20만명이나 감소하는 등 민생경제에 준 악영향은 더욱 크다”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이 ‘4·27 판문점선언’ 기념식 자리에서 남북대화와 9·19 군사합의 복원을 주장한 건 충분히 예상됐다. 윤 정부 들어서 남북 경색이 굳어진 상황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일테니 말이다. 이참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등 자신이 생각하는 재임 시의 치적을 내세우고도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과 도보다리를 산책하며 발표한 ‘판문점 선언’을 기념하자는 뜻에서 마련한 자리에서 12.3 비상계엄이 민생경제에 막대한 악영향을 초래했다고 맹비난한 건 낯이 뜨거울 정도다. 아무려면 본인 집권 시 초래한 부동산 폭등 등 경제 실패만 하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집값 안정에 명운을 걸겠다”며 부동산 대책을 무려 27차례나 발표했다.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데도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데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실제 효과가 나타난 게 아니라, 문 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치 실제 대책 효과가 있는 것처럼 거짓 통계로 국민을 속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이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이다. 소득을 늘려서 경제를 성장시키겠다 이론인데 소득을 빨리 늘게 하려고 최저임금부터 올렸다. 이게 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부담을 가중시켜 고용률을 떨어뜨리고 서민의 일자리를 빼앗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끝까지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문 정부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행복이라는 현실에 정치를 맞추지 않고 미리 가지고 있던 정치이념에 현실을 맞추는 역행의 연속이었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진영 이념을 위한 반민주적 퇴락의 길을 선택해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이른바 ‘운동권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이념 정책은 상대방의 사상적 공존을 용납해선 성공할 수 없다. 그들이 나와 뜻이 다른 상대를 적폐로 몰아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유민주경제가 지향하는 경제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지도자가 사회주의 식 이념정치에 몰입하면 어떻게 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게 바로 문재인 정부가 아니던가.

문 전 대통령이 5년 임기 치적으로 내세우는 남북문제의 실상은 더 심각하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의 성과물이 그해 9월에 북한 개성공단에 건립한 남북연락사무소다. 우리 돈 97억원이 들어간 그 건물을 북한은 문 정부 때인 2020년 6월에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완전히 폭파해 버리고 말았다.

당시 문 정부는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불법 행위라고 비판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것을 윤 정부 들어 통일부가 연락사무소 폭파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3년을 중단하고 국가채권을 보전하기 위해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게 지난 2023년 6월이다.

문 정부가 남북 화해 협력의 상징 사업으로 여겼던 경의선·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은 어떤가.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때 거창한 착공식을 열어 마치 곧 남북이 하나로 연결될 듯 떠들썩했다. 그러나 문 정부에 요구했던 일들이 지지부진하자 북한은 이마저 완전히 파괴했다. ‘남북 화합’의 상징이 하루아침에 ‘남북 단절’의 상징물이 되고만 것이다.

북한의 이런 깡패짓이 처음이 아니지 않은가. 이전에도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금강산 관광 시설 등 우리 국민의 세금 수백억 원을 투입해 북한 땅에 세운 남북 교류의 상징물들을 하나씩 파괴해 왔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은 작심한 듯 오는 6월 열리는 대선으로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남북관계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특히 한국이 한반도 평화의 구경꾼으로 남아있어선 안 된다며 자신이 성사시킨 9·19 군사합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과 합의한 9·19 군사합의를 2023년 11월에 일방적으로 파기한 게 바로 북한이다. 그런 북한을 향해선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마치 윤 정부에 모든 책임이 있는 듯 말하는 건 최소한 피아(彼我) 구분이 안 된다는 뜻이다.

‘판문점 선언’으로 우리 군은 GP(최전방 소초)를 없애고 한미 훈련까지 축소했다. 그로인해 안보 태세가 심각하게 위태로워졌는데 민주당 정부가 다시 집권해 이를 계승하라는 건 전직 대통령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

이런 발언들이 얼마 전 자신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것에 격앙돼 나온 발언들은 아닐 것이다. 잊혀져가는 업적을 끄집어내고픈 마음을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다만 집권 내내 북한에 질질 끌려 다니며 북핵 완성에 일조한 전직 대통령이 여전히 북한을 추종하는 일편단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