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 희생 제사의 종언으로서의 십자가: 예수는 희생양 메커니즘(scapegoat mechanism)의 종결자

1. 지라르의 해석: 예수 십자가 죽음은 사회적 폭력의 원초적 메커니즘 계시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종교인류학자 지라르는 그의 저서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인간 구원의 상징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 사회에 내연한 갈등과 반목과 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희생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여 정통 기독교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지라르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이후로 은폐되어온 희생양 메커니즘의 종결자다: “예수의 십자가는 폭력의 원초적 메커니즘을 계시한다.” 지라르는 예수에게 일어난 일은 하나의 희생제의(sacrifice)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어느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죽음은 하나의 희생제사로 정의되지 않는다.” 십자가는 “문화의 발생적 매트릭스 속에 있는 희생자에 대한 폭로”이며 우리 인류가 “타락 이후 문화(postlapsarian culture)의 시작부터 살해자”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희생양들의 무죄를 계시함으로써 성경적 계시는 “신성화된 희생양들을 탈신성화시킨다.”

2. 지라르: 예수 죽음은 희생제사 아닌 폭력의 원초적 메커니즘의 종결

지라르가 정통 기독교의 입장을 대변하면서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원시적 희생 제의로 해석하는 것을 거부한 것은 예수의 죽음이 다시 “원시적 희생 제의”로 환원될 위험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라르는 처음에는 마태복음 9장 13절(하나님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을 언급하면서 예수의 죽음을 희생 내지 희생제사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했다. 복음서나 바울 서신에서도 예수의 죽음은 희생제사 대신 사랑의 행위, 내지 은혜 행위로 표현되었고 희생제의(Opfer) 언어가 사용된 드문 경우에도 일종의 메타포로 사용되었지 히브리서에서 볼 수 있는 희생제의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René Girard, Das Ende der Gewalt. Analyse des Menschheitsverhängnisses, 253).

3. 지라르는 나중에 예수는 최종의 희생양 인정

나중에 지라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의 의미를 전달하는 “최종의 희생양”(the final sacrificial lamb, the Final Scapegoat)으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지라르는 성경의 하나님이 인류의 살인적 폭력에 대해 복수(復讐)하지 않으시며, 인류의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자기 자신(자신의 독생자)을 희생양으로 주신 분이라고 해석하고자 한다

그러나 지라르는 스위스 출신의 교의 신학자 슈바거(Raymund Schwager)와의 깊이있는 대화를 통하여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희생(犧牲)제의(祭儀) 놀이를 종식시키는 최종의 희생”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지라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신성화된 희생양들의 원시주의”를 극복했다고 해석한다: “그리스도는 수없이 존재하는 신성화된 희생양들 중 또 하나의 희생양이 아니라 바로 그 마지막 희생양이 되었다. 그리스도는 그 때의 수많은 희생양들을 탈신성화시키며 또한, 그 이후 희생양들의 신성화를 막는다.”.

4. 예수 십자가 희생은 단 한번의 영원한 희생제사

“하나님은 스스로 희생양 도식을 다시 사용하시지만 그것을 전복(顚覆)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대가를 치르신다.” “희생양 메커니즘의 신적인 사용”은 바로 “인류 종교성의 일치를 보증”하는 것이다. “원시적인 신들은 희생양들의 효과로부터 직접적으로 생산되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역설적이게도 그 희생양 메커니즘의 무효과로부터 그리고 거짓 신들의 파괴로부터 나온다.” 지라르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참 사람이며 참 하나님이신 완전한 희생양으로서 모든 종교의 지역적이고, 지상적이고, 시간적인 희생양의 종식이다. 예수의 십자가 희생은 단 한번의 영원한 희생제사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성화된 희생양들과는 달리 십자가에 희생된 예수는 인류의 모든 희생자들과 연대하는 비폭력적인 희생자의 하나님(Dieu des victimes)이다. 이는 모든 종교들의 희생제사를 종식시켰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부활 사건은 종교다원주의의 종식이다. 십자가 사건의 역설은 단 한번의 영원한 희생제사로서 희생양 메카니즘을 내부로부터 고발하고 폭발시키고 종식시킨 것이다. 기독교 신학자가 아닌 문화 인류학자인 지라르가 인류학적 지평에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지닌 구속사적 의미의 유일성을 드러낸 것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단지 신화론적으로 상징적으로만 해석하는 현대신학에 있어서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5. 지라르의 십자가 인류학은 미메시스적 현실주의

지라르의 십자가 인류학과 십자가 해석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희생 사건으로서의 십자가 사건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인류학적-수평적 해석학을 제공한다. 지라르의 십자가 인류학은 십자가에 대한 전통적, 신학적 그리고 교의학적 이해를 보완하고 더 풍성하게 하면서 인류학적이고 문명담론의 차원에서 십자가의 승리를 선언한다.(정일권, 『십자가의 인류학: 미메시스 이론과 르네 지라르』, 대장간, 2015, 165).

미국의 개신교 신약학자 해머턴-켈리(R. G. Hamerton-Kelly)는 이러한 지라르의 이론을 “미메시스적 현실주의”(mimetic realism)라고 부른다. 지라르는 “십자가에 대한 경험적이고 과학적 해석학”을 제공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세 이후로 죽임당한 어린 양으로서 희생시킴으로 인류의 땅으로부터 폭력을 옮겨서 사랑의 바다로 가져가셨다.” “그 폭력이 이동되는 통로 혹은 전달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해머턴-켈리는 “십자가의 해석학적 기능”에 관해 말한다. 십자가는 텍스트들 속의 폭력과 텍스트에 의한 폭력을 계시한다. 텍스트 폭력은 예수 세미나 학자들에서 보는 바같이 복음서 자체의 계시적 주장을 부정하는 자기 투영적 접근으로 인한 오독(誤讀)을 산출한다. 예수의 십자가는 텍스트 폭력을 노정(露呈)시킴으로 텍스트 폭력을 종식시키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인문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지평에서 유대-기독교적 전통, 가치, 유산 그리고 텍스트를 자기반성적이고 비판적으로 재변증하는 지라르의 입장은 정통적 기독교 입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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