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대 중국인 둘이 수원공군기지 전투기 이착륙 장면을 몰래 촬영하다가 붙잡혔다. 외국인이 국내 중요 군사보안시설 정보를 무단으로 탐지하는 건 명백한 간첩 행위인데 현행법으론 처벌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지난달 21일 수원공군기지에서 전투기를 무단 촬영하다 붙잡힌 이들은 중국인 10대 고교생 2명. 이들은 공군기지 근처에서 카메라와 휴대전화로 이착륙하는 전투기를 촬영하다 이를 수상히 여긴 주민 신고로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이들의 카메라와 휴대전화에 수원공군기지 뿐 아니라 오산 공군기지와 청주 공군기지에서 찍은 F-35 스텔스 등 최소 수백 장의 전투기 사진이 담긴 것을 찾아냈다. 이 중국인들은 우리 군 시설 4곳 뿐 아니라 김포공항과 제주공항, 인천공항 등 국제공항 3곳을 돌며 수천 장의 사진을 찍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지난달 18일 관광비자로 입국한 후 사흘간 군사시설을 돌며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로 주로 전투기 사진을 촬영했다. 경찰엔 취미로 비행기 사진을 찍었다고 진술했으나 비행기 뿐 아니라 관제시설도 촬영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드러나 목적이 뭔지를 파악하는데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 중 한명이 중국 베이징 공안의 자녀인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관련성 여부를 캐고 있다.
경찰이 이들 중국인의 군사시설 무단 촬영에 다른 목적을 의심하는 이유는 이들의 입국한 시기가 한미연합연습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는 점이다. 또 수사 과정에서 이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두세 차례 입국한 사실을 파악하고 출국 정지와 함께 여죄를 수사하고 있다.
중국인이 군사 보안시설을 불법 촬영하다 적발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엔 중국인 유학생 3명이 부산에 입항한 미국 항공모함을 드론으로 촬영하다 검거됐고, 같은 해 11월엔 국가정보원 청사를 촬영하던 중국인이 붙잡히기도 했다.
중국인 조직이 한미 연합 훈련 정보를 캐기 위해서 현역 군인을 매수한 일도 있었다. 이 중국인 조직은 현역 병사에게 접근해 한미 연합 훈련 계획에 대한 정보를 촬영해 넘기면 돈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이 병사는 그 군사 기밀 정보를 촬영해 중국인 조직에 넘긴 일로 군 수사당국에 체포됐고, 중국인 조직은 이 기밀을 제공한 현역 병사에게 돈을 주러 입국했다가 검거됐다.
이처럼 외국인 우리 군사시설을 몰래 촬영하거나 군사 기밀을 탐지하는 건 명백한 간첩 행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중국인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현행 간첩죄는 북한이 직접 관련된 활동으로만 제한돼 있어 중국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앞서 공군기지를 무단 촬영하고 드론으로 미 항공모함을 촬영한 중국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군사보안시설 무단 촬영 등 행위가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이루어졌고 촬영한 사진들이 군사 기밀이라고 해도, 혹 대공용의점이 발견돼도 간첩죄로는 처벌하지 못한다. 북한 국적이 아닌 중국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형법 제98조는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현행법상 적국은 '북한'만을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은 간첩 행위를 해도 간첩죄 처벌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법의 허점이 최근 들어 중국인의 군사시설 무단 탐지를 사실상 부채질해 온 것이다.
이와 반대로 최근 중국에선 우리 국민이 간첩 혐의로 체포돼 5개월간 감금 상태로 조사를 받고 기소된 일이 있었다. 삼성전자에 근무하다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회사에 근무하던 이 한국인은 본인 명의로 창업을 준비하다 중국 공안에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중국이 이 한국인을 5개월이나 가족들도 일체 접촉하지 못하게 감금한 상태로 조사했다는 거다. 지병이 있는데 약도 안 주고,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아 우리 대사관의 영사 조력도 전혀 받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중국은 지난해 7월 1일부터 ‘반간첩법’을 개정해 시행 중이다. 개정된 간첩죄가 전과 다른 건 간첩 행위에 대한 정의와 적용 범위가 대폭 확대된 데 있다. 한마디로 중국 당국이 간첩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하면 누구든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간첩죄 처벌 규정은 우리나라처럼 어느 특정 국가로 국한하지 않는다. 국가 안보나 국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하면 그 어떤 외국인도 처벌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인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간첩죄로 기소하는데 우리는 간첩행위를 한 중국인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이런 현실을 이해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간첩법을 개정해 ‘적국’을 북한에서 외국인으로 바꾸려 했으나 더불어 민주당의 반대로 불발되고 말았다.
최근 중국인 간첩 행위가 자주 발각되면서 간첩죄 적용 대상을 북한 뿐 아니라 외국인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던 게 정치권의 실상이다. 이런 비판 여론에 여야는 형법 제98조 간첩죄의 범위를 ‘외국’으로 바꾸는 형법 개정안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고 지난 13일 이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를 겨우 통과했다.
중국은 물론 미국·독일 등의 나라도 국적에 상관없이 군사기밀을 탐지하거나 촬영하는 행위를 간첩죄로 처벌한다. 국회는 더 시간 끌 이유 없이 속히 본회의를 열어 간첩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라 안보에 뻥 뚫린 구멍을 조금이라도 메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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