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가 예상보다 많이 지연되면서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일부 방송에서 헌재 재판관 사이에 인용과 기각 의견이 뚜렷이 갈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후 궁금증이 괴담으로 증폭되고 있는 게 문제다.
헌재가 국회로부터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게 지난해 12월 14일이다. 탄핵 심판 심리를 개시한 지 108일이나 경과했고, 특히 지난달 25일 변론 종결 이후 두 달째 접어들도록 선고 기일을 통지하지 못하자 그 속사정이 무엇인지 국민적 궁금증이 커지고 있는 거다.
헌재의 역대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접수한 지 6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91일이 걸렸다. 윤 대통령에 대한 심판 선고가 그때보다 훨씬 기간이 길어진 건 그만큼 법리 해석이 복잡한 게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헌재 내부에서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못해 교착상태에 빠졌기 때문일 거라는 게 지배적이다.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 기간이 명시돼 있는 건 아니다. 만약 법리상의 문제가 생겨 심사숙고하는 것이라면 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문제 삼을 순 없을 것이다. 다만 변론 종결 후 선고가 무작정 늘어지다 보니 국민 사이에 탄핵 찬반 대립이 격화하고 온갖 추측성 주장으로 국론 분열이 심화하고 있는 게 문제다.
헌재가 변론을 종결한 후에 다시 변론을 재개해야 할 어떤 말못할 사정이 생겼다면 속히 변론을 재개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사유 없이 시간을 끄는 건 어떤 이유로든 용납이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 편향적이란 비판을 받아 온 헌재가 직무유기이자 권한 남용으로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를 저질러선 안 될 것이다.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가 지연되면서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에선 재판관 8명이 5대3 또는 4대4로 인용과 기각 의견이 나뉘었을 것이란 추측성 보도가 나오고 있다. 무슨 근거에 의한 것이든 헌재 재판관 개개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 임명에 목을 매고 있는 점이다. 지금 헌재 재판관 8명 중에 인용 의견이 6명 이상이면 야당이 이 문제에 이토록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민주당은 마 재판관 후보를 임명하지 않은 문제로 대통령 권한대행직에서 물러난 최상목 경제 부총리와 탄핵 심판 기각으로 대통령 권한 대행 직무에 복귀한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다시 탄핵하겠다고 겁박하고 있다.
민주당이 한 권한대행에게 마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라고 못 박은 시한이 4월 1일이다. 이때까지 임명하지 않으면 재 탄핵하겠다는 건데 누가 봐도 정치적 무리수이다. 당장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더라도 반드시 윤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해 파면시키고 말겠다는 의도로 봐서 심리적으로 얼마나 쫓기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민주당은 지난 18일 마 후보자에게 임시로 헌법재판관 지위를 부여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헌재에 접수했다. 또 오는 4월 18일 임기가 끝나는 문형배, 이미선 헌법재판관을 잔류시키기 위해 임기 6개월 연장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위헌 논란과 여론의 질타가 뻔한데도 반드시 윤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는 건데 과연 민주당의 뜻대로 될지 지켜볼 일이다.
두 번째 근거는 헌재 소장 대행을 맡은 문형배 재판관의 태도다. 헌재의 탄핵 심판은 평의 과정에서 재판관 사이에 의견이 일치할 수도 있고, 갈릴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인용이면 인용, 기각이면 기각으로 선고하는 게 헌재 소장의 임무다. 그런데 소송의 주권을 행사하는 권한을 가진 문 헌재 소장 대행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고를 마냥 지연시키고 있는 거다.
문 대행이 8:0 전원일치 평결을 바라는 것으로 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판관의 의견이 굳어진 상태라면 시간을 무한정 끈다고 달라지겠는가. 다른 한편으로 만약 인용 의견이 6명이라면 문 대행이 시간을 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문 재판관은 과거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SNS로 대화한 것이 드러나 이미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휩싸였다. 윤 대통령 탄핵심리 과정에서도 증인 채택 및 증거 인정 과정에서 재판부 권한을 강조하며 절차를 강행하는 등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심리를 진행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미 드러난 정치적 성향으로 볼 때 탄핵 인용이 가능한 수가 확보됐다면 그가 이토록 시간을 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 문 재판관이 현 헌재 평결 구도가 만족스럽지 못해 선고를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탄핵 정국이 4개월째 이어지며 우리 사회는 극도의 혼란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자리를 이토록 오래 비워두는 자체가 국가적 손실이다. 탄핵 정국이 길어질수록 국가적으로 닥친 위기 극복도 어려워진다.
오늘 우리 사회의 혼란과 갈등이 윤 대통령의 12.3 계엄으로 촉발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면 대통령과 대통령 권한 대행, 대행의 대행까지 무려 30건의 탄핵소추를 발의한 야당의 입법 독재 또한 내란죄에 버금가는 권한 남용에 해당한다. 여야정 모두가 책임져야 할 문제인 것이다.
헌재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헌법의 최후 보루이다. 헌재까지 정치적 파도에 휩쓸리면 법치와 자유 민주주의는 소생 불가능해진다. 이 혼란한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론을 있는 그대로 내리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오늘의 비정상적인 정치 행태를 정상으로 회복하고, 헌재는 헌재대로 정치 편향이란 오명의 덫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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