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공공선에 대한 구체적 논의와 시사점

국제복음과공공신학연구소 황경철 박사
황경철 박사.

백스터는 다양한 영역과 직업에 따라 공공선의 구체적 지침과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성도들에게 공공선의 책임과 역할을 가르쳤다. 그뿐 아니라 부모는 자녀들을 위한 기독교 교육을 통해 공공선의 소양을 갖추도록 일주일 내내 가정을 바르게 다스리고 근면함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스터가 각 사회 정치영역이나, 직업별로 어떻게 공공선을 가르쳤는지, 그것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항목별로 살펴보도록 하자.

(1) 교사와 공공선

백스터는 ‘교사의 의무’로 시작되는 챕터의 부제를 ‘학생들의 영혼과 관련된 의무에 대해 선생들에게 주는 지침’으로 달고 있다. 교사의 소명과 역할에 대한 논의에서 백스터가 ‘학생들의 영혼’을 일성(一聲)으로 외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제지 간의 폭언과 폭행, 고소와 무관심, 대부분 교사로서 소명감을 갖고 최선으로 애쓰는 이도 많지만, 그것을 담보하지 못하게 하는 교권의 추락, 왕따와 학폭, 끊이지 않는 교사와 학생의 자살 소식, 그에 아랑곳 없이 성장하는 사교육 시장, 이 모든 부조리를 더 강화하는 성적과 학벌 지상주의로 병든 한국 사회는 백스터의 가르침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백스터는 교사에게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라고 촉구한다. 만일 재산이나 명성이 목적이 된다면 그릇된 의도 때문에 수단이 왜곡되고, 수고도 악용되며, 소명도 부패할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교사의 의무와 목적은 4가지이다.

1. 당신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며, 2. 이것으로 공적인 선을 증진시킴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공적인 봉사를 하게 만들며, 3.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고, 4. 학생들의 구원과 세상에서 그들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인지 살피라.

백스터는 공공선의 증진과 공적인 봉사의 근거를 하나님의 영광에서 찾고 있는데, 이는 앞서 “백스터의 공공선의 근거와 이해”에서 논의한 바와 일치한다. 교사의 소명은 단지 세상의 생계에 필요한 기술뿐 아니라 창조주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고, 그들의 이해를 함양하고, 이성을 진전시켜서 사람답게 대화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점검을 포함한다. 한 명의 성숙한 사람이 교회나 국가에 얼마나 큰 유익을 줄지, 한 명의 건강한 인격이 가정과 이웃에게 얼마나 큰 복이 될지를 상상할 때, 교사는 나태하고 피상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탁월한 소명과 즐거운 마음, 그리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자세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자기 일을 천하게 생각하고, 아이들을 마치 돼지나 양을 바라보듯이 바라보거나, 학교를 오직 출세나 자신들이 바라는 삶을 이루는 수단으로만 생각할 때, 교사는 직무를 성실히 감당하지 않고, 학생들도 쉽게 싫증을 내게 될 것이다.

백스터의 견책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단면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이 시의적절하고 예리하다. 그가 말한 교사는 일차적으로 공립학교의 교사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넓게는 교회학교 교사의 소명과 역할에도 적용될 수 있다. 특별히, 백스터는 학생들에게 교리문답 교육을 가르칠 것을 강조하였다. 어린아이에게 주어지는 교리문답이 중요한 까닭은 그들의 기억에 일찍 저장된 내용이 이후에 유용하게 사용되어 하나님을 믿는 성도뿐 아니라, 성숙한 인격을 갖춘 시민이요,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게 할 최고의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백스터의 주장은 성경이나 교리 교육이 건전한 시민 배출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듯한 작금의 한국교회의 이원론적 사고에 균열을 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묻지마 폭행’, ‘N번방 사건’, ‘스토킹 범죄’, 성, 알콜, 도박, SNS 등 다양한 중독과 정서 장애에 노출된 한국 사회에 어디서부터 기초를 놓아야 할지 실제적 대안을 준다.

백스터의 교사에게 주는 지침 10가지 중에서 4개가 징계와 책망에 관련된 것은 흥미롭다. 가령, [지침 5] 양심을 일깨우라. [지침 6] 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엄격하게 점검하라. [지침 8] 학생들 상호 교제시 서로 경계하게 하라(음담패설, 저주, 거짓 맹세, 비난, 조롱, 욕, 성인물 등). [지침 9] 죄짓는 것에 대해 엄격하게 책망하라. [지침 10] 나머지 학생들을 부패시키는 불 경건하고 반항적인 우두머리들을 억제하거나 추방하라. 물론 17세기 교사에게 주어진 의무와 지침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시대적이고 문화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잘못을 엄중하게 다스리지도 못할 만큼 한국 사회에서 부모나 교사의 권위가 실추되었다는 점, 칼빈이 말한 교회의 3대 표지 중 하나인 권징이 교회 중직자에게 조차 유명무실해졌다는 점, 다양성과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죄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점 등은 백스터의 선명한 가르침을 그리워하게 한다.

(2) 군인, 전쟁, 그리고 공공선

백스터는 영국 내전(English Civil War, 1642–1651)시 신형군(New Model Army)이라는 의회군 수비대에서 군목(Chaplain)으로 사역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군인의 의무에 관한 지침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고 있다. 실제로 군목으로서의 생활은 백스터의 삶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칭의론이 전통적인 것에서 이탈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백스터는 군인이 통치자의 합법적인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인은 하나님과 평화를 유지하고, 늘 죽은 준비를 하고 사는 것을 가장 큰 의무로 삼는다. 그러나 군인의 통치자에 대한 명령 복종과 전쟁 수행은 사람을 살해하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에 몇 가지 원칙이 수반된다.

첫째, 이중 책임 구조이다. 군인은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권위에 책임을 지므로 통치자에 대한 복종은 무조건적이지 않다. 정부와 군 통치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받았기에 그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따른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 순종은 도덕적, 성경적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유효하며, 정당하지 않은 전쟁이나 명백히 비윤리적 명령에 대해서는 저항하거나 때로는 중립을 지키고서 차라리 비난받는 것이 낫다.

둘째, 사회적 공공선이다. 백스터는 군인의 역할과 전쟁을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간주했다. 비록 통치자에 대한 순종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지만,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슬픈 일이며 이웃에 대한 사랑과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자신들처럼 사랑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백스터는 전쟁은 하나님이 허용하신 최후의 수단으로써 폭동이나 반역과 같은 악을 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 군인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셋째, 정의와 자비의 균형이다. 군인의 행동은 정의를 실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만, 자비와 인간존엄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전쟁을 시작하는 때에도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위에 의해 선포됨으로써 정당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고(Jus ad bellum), 전쟁 중에도 작전 수행은 윤리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Jus in bello). 무고하고 선량한 민간인을 해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군사적 폭력은 최소화되어야 하며, 필요 이상으로 고통을 초래하지 않아야 한다.

오래지 않아 끝날 것으로 예상되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전쟁에 참전한 나라뿐 아니라 주변국들까지도 자국의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전쟁을 정당화하고 있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는 소중한 가족과 일터를 잃어 생계가 막막한데, 그 사이를 노려 군수산업을 내수경제 부양책의 일환으로 삼는 모습까지 포착되는 지경이다. 기술한 바와 같이 백스터는 전쟁 반대론자가 아니다. 합법적 전쟁을 인정하되, 그 범위를 엄격한 원칙으로 제한하고 있다. 백스터 역시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에 치열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목회자로서 성경을 연구하며 전쟁에 대한 공공신학적 원리를 제시하였다. 4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이름만큼 더욱 긴밀해졌고, 전쟁의 변수는 다양해졌으며, 무기는 지구 전체를 망가뜨릴 만큼 끔찍해졌다. 신자와 시민이 백스터의 어깨 위에서 전쟁에 대한 공공신학적 논의를 개진해야 할 이유이다.

(3) 의사와 공공선

백스터는 각각의 직업군마다 성경적 생활 지침을 제시하며, 가장 첫 번째로 그 직업의 ‘최고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공통으로 다루고 있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교사와 군인이나, 다음에 다룰 법률가와 통치자에서도 나타난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이웃 사랑과 공동선을 구현하는 부르심의 자리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윌리엄 틴데일, 리처드 퍼킨스, 리처드 로저스, 존 코튼 등 청교도의 직업 소명설과 맥을 같이하며, 그 위로는 칼빈과 루터에게까지 이어진다. 백스터는 사람을 귀하게 만들거나 천하게 만드는 것은 직업이라는 수단 자체가 아니라 그 직업이 지향하는 목표라고 설명한다. 의사 또한 최고의 목표로 하나님을 영화롭고 기쁘시게 하고, 공적인 선을 추구하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야 한다. 물론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합법적 이익을 얻고 명예를 유지할 수 있음을 백스터도 인정한다. 그러나 최고의 목적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명확하게 세워지지 않았을 때, 돈이나 실적, 명예나 연구의 유혹들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여 환자의 생명을 희생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공신학적 측면에서 의사의 직무를 중심으로 백스터가 강조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

첫째, 백스터는 의사의 공공선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의사의 의료행위는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건강과 복지를 증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지 불의한 이익을 위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의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로 부르셨다는 자신의 소명을 기억하며, 이를 위해 자신의 은사를 청지기답게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상당량의 경험을 쌓고, 연구와 독서를 하고, 훌륭한 사람의 지도를 받으며, 무지와 만용으로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도록 두려워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보다 더 능력 있는 의사의 실력과 명성을 시기하지 말고, 환자의 생명이나 건강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다른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환자를 배려하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둘째, 백스터는 의사의 윤리적 영적 책임을 강조한다. 의사는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원칙을 따라야 하며, 의술이 단순히 기술적 과정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환자를 단순히 치료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들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에도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환자에게 중생하지 못한 자의 위험과 구세주의 필요성과 영혼의 영원한 상태에 대한 의사의 몇 마디 조언이 그들의 회심과 구원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는 다른 직종의 사람들보다 계속해서 죽음을 목격하기 때문에 다른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고, 영적인 지식과 거룩함과 건전함에서 다른 사람보다 탁월해야 한다고 영적인 책임을 강조하였다.

셋째, 백스터는 창조주요 주관자요 최종적 원인이신 하나님의 본성을 발견할 때, 일반계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연을 공부하면 할수록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을 공부하면 할수록 자연을 만드신 분에게서 멀어진다거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책의 의미를 간과하게 된다거나, 의학을 연구하면 할수록 환자와 그의 건강을 잃어버린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피조물들을 보면서 우리가 그 피조물들이 보는 빛을 보지 못하거나, 나무들과 집들을 보면서 그것들을 지탱하고 있는 땅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주관하시는 최종적인 원인이시기 때문이다.

백스터는 의사가 자신의 전문성을 신앙적 삶과 통합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의학이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고 가르쳤으며, 치료 과정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단순히 의료적 기술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자비를 실천하고,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든 환자를 평등하게 대하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백스터의 가르침은 직업과 신앙이 어떻게 통합되고, 믿음이 일상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백스터가 살던 시기는 크리스텐덤이고 지금이 포스트-크리스텐덤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직업인이 져야 할 사회에 대한 공적 윤리와 공공선에 대한 책임과 관련하여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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