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2. 제자들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본문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초막절이 다가왔습니다. 유대의 3대 절기 중 맨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은 옛날 조상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탈출한 뒤 광야에서 살던 고난의 때를 기억하는 특별한 절기입니다. 거의 추수가 끝난 뒤에 백성들은 일주일 동안 종려나무 가지와 무화과 잎과 시내 버들을 가지고 지은 초막에서 일주일 동안 지냅니다. 이런 초막절은 후손들에게 조상들의 고생담을 전해 줌으로서 후손들이 누리고 있는 복의 근원과 실체를 교훈합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와 제멋대로 자란 아이가 다르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제 주님의 십자가 죽음이 3개월이 남은 때입니다. 드디어 때가 이르자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출발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경이 이 행보를 ‘올라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리적으로는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유대인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듯이 예루살렘과 서울은 우리 땅의 수도이자 중심지이므로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간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십자가 죽음은 하늘로 올라가는 사건이라는 점도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

이 마지막 여행길에도 제자들이 함께 합니다. 시골 촌뜨기인 제자들은 아마 마음이 들뜨고 소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닌지 3년이 된 사람들입니다. 아마 그들은 속으로 이번 방문에는 뭔가 큰 사건이 터질 것이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대의 독립선언을 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라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때 갑자기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소개한 말씀이 그것입니다. 다시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막 10:32~34)

이 말씀을 진정으로 들었다면 제자들 모두가 놀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놀라운 말씀을 듣고도 제자들은 마음이 들떠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논쟁을 벌입니다. 제자들이 지금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까? 누가 예수님의 나라에서 그분의 오른편에 앉을 지를 다투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요구하는 것을 마가복음이 잘 보도하고 있습니다.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7)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러 가시는데 제자들은 자기들이 누릴 영화만 꿈꾸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런 전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사역을 할 때에도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신 바 있습니다(막 9:31). 그러나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오직 ’누가 크냐‘하는 논쟁을 하였습니다(34절). 이것이 제자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마지막 여행길에서도 제자들은 여전히 엉뚱한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다시 꺼내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두 번째로 소개한 본문의 말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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