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막 10:32~34)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45절)

1. 인생의 의미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는데 그것이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라면 어떤 심정으로 그 일을 하겠습니까? 열심히 일하면 그에 따른 소득이나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보장이 없는 일을 한다면 신이 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은 자신의 기쁨과 안위와 관계없이 오직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셨습니다. 오늘은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기꺼이 피를 흘리신 주님의 이야기에 집중해 봅니다.

3년간의 공생애가 서서히 최종 단계에 이를 즈음 예수님은 드디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하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특기할 것은 사복음서 기자들의 관점과 기록형태가 사뭇 다르다는 것입니다. 먼저 마태와 마가는 그냥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마 20:17, 막 10:32)고 보도합니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눅 9:51)라고 보도합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어떻습니까? 특별히 요한은 예수님의 동생들의 사정을 배경으로 깔고 예루살렘 행을 보도합니다. 다시 말해, 동생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요 7:5). 그런데 예수님이 매우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유명한 형님 덕을 좀 보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놓고 예수님께 이렇게 요구합니다.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나내소서 하니”(요 7:3~4)

지금 십자가에 달려 죽으러 가는 길인데 동생들은 그것도 모르고 시골에 묻혀 있지 말고 화려한 도시로 나가 이름을 떨쳐보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이들의 관심은 오직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라는 성공은 그저 잘 먹고 잘사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목적과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런 부류를 세속주의자라 합니다. 이들은 과거나 미래에 관심이 없고 오직 현실에만 관심을 두고 삽니다. 이들은 또 하늘의 일엔 무지합니다. 오직 땅의 일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모든 인간은 주어진 인생 안에서 살다가 죽습니다. 그런데 이 인생은 아무런 목적 없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 의해 인생이 주어진 것이고 누군가의 뜻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아무도 목적 없이 사는 존재는 없습니다. 물론 인본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목적 따윈 없다고 주장합니다. 특별히 허무주의로 불리는 회의주의자들은 무에서 왔다가 무로 돌아갈 뿐이라 말합니다. 창조주의 개입 없이 무에서 어떻게 유가 나오는지 설명하지 못하면서 그냥 그럴듯한 언어유희를 하는 것입니다. 에피쿠로스 같은 쾌락주의자들은 인생은 단순히 즐기는 것이라고 부추겼습니다. 리처드 도킨슨 같은 무신론자는 기금을 모아 “하나님은 없다. 그러므로 인생을 즐겨라”는 광고물을 만들어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인은 산길에 놓여 있는 돌멩이 하나도 창조주의 의도에 따라 그 자리에 위치했다고 노래했습니다.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를 통해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하나의 의미다”고 노래했습니다. 모든 존재는 의미를 가지고 태어나고 살고 의미를 완성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도록 계획되었습니다. 어떤 피조물도 목적 없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존재이자 하나님으로부터 각자 수행해야 할 목적과 의무를 받고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점을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보금자리도 아니고 우리가 영원히 살 곳도 아닙니다. 세상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곳입니다. 세상은 악한 사탄의 지배를 받는 곳입니다. 세상을 통치하는 악한 영은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고 자신이 붙잡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한사코 놓아주지 않으려 모든 술수와 궤계를 다 획책하며 방해합니다. 이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은 우리를 보내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신음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희소식을 공포하고 그들이 스스로 응답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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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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