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맨 오른쪽)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있다. 이로써 8월 15일은 광복절과 동시에 건국절의 의미를 갖는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맨 오른쪽)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있다.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홈페이지

두레마을공동체 대표 김진홍 목사가 최근 ‘이승만의 건국전쟁’이라는 제목의 ‘아침묵상’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공적 4가지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 1일 개봉된 이승만 대통령을 다룬 영화 ‘건국전쟁’(감독 김덕영)을 인용해 이 같이 전했다. 이 영화는 7일 기준 누적 관객 수 6만 3천명을 기록해 박스오피스 3위를 달리고 있다. 이번 기사는 김 목사가 밝힌 이승만 대통령의 공적 4가지 중 3번째인 ‘토지개혁’에 대한 설명을 전한다.

김 목사는 “한국의 토지 개혁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토지 개혁으로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 토지 개혁이 성공하였기에 토지 자본이 산업 자본으로 전용되어 산업 발전을 이루는 종자돈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토지 개혁을 먼저 실시하기는 북한 김일성 정권 쪽이다. 1945년 해방된 그 다음해인 1946년에 소련군의 지원을 받은 소련군 대위였던 김일성은 토지 개혁을 북한 땅에 실시했다”며 “김일성의 토지 개혁은 무상몰수 무상분배(無償沒收 無償分配)였다. 국가 권력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아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했다. 그런데 북한의 토지 개혁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주들로부터 강제로 뺏은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되 소유권을 농민들에게 주지 않았다”며 “그 토지의 소유권은 공산당에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주었다 도로 뺏은 셈”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토지 개혁은 질적으로 달랐다. 유상환수 유상분배(有償還收 有償分配)였다”며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직후 토지 개혁이 되어 농민들이 경제 자립이 돼야 민주주의도 뿌리를 내릴 수 있고 경제도 발전할 수 있음을 깨닫고 당시의 농림부 장관이었던 조봉암 장관에게 지주들의 토지를 소작인들에게 분배하는 토지 개혁을 하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승만 정권은 1949년 초부터 토지 개혁을 강행하여 1950년 4월 20일에 토지 개혁을 완수했다. 북한의 토지 개혁과는 달리 지주들의 토지를 정하여진 값을 치르고 농민들에게는 유상으로 분배하되 5년 기간으로 토지 값을 지불하게 했다”며 “그렇게 하니 소작인들이 매년 지주들에게 지불하던 비용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5년간 토지 값을 완전히 갚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이 정책이 100% 성공하였기에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토지 개혁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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