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알아보자.

(1) 구약성경에 관하여....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라

신동만 장로
신동만 장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아득한 먼 옛날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만드셨다고 성경은 첫머리에 선포하였다. 하나님이 천지의 주재시라는 것이다. 창세기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택한 백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기록한 책이다.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되어 있다.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아버지, 성자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보혜사 성령이시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만드신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은 친구 같고 아들 같은 대화 파트너로 사람을 만드신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봐와 같이 안타깝게도 아담과 이브는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 대화가 단절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인간의 죄악이 온 세상에 가득하자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홍수 심판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로 인간을 쓸어버리셨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또한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다.

홍수 심판 이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큰 그림이 완성됐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후손인 이삭과 야곱을 이스라엘의 민족으로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성품에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 같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래의 몸에서 난 이삭을 후계자로 삼고 이삭은 에서를 버리고 야곱을 후사로 삼아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이 된 것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32:28) 며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신 것이다.

구약성경은 천지 만물의 창조 이야기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와 맺은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 중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셔서 우주와 자연의 질서는 물론 세상의 질서가 하나님의 경영하심에 있음을 분명히 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과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가 오직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기록한 말씀으로 모든 족속의 본이 되게 하셨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상으로만 말씀하셨다면 신약성경의 시작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로 기록하지 않고 “야곱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로 기록했을 것이다. 이는 홍수 이후 살아남은 셈과 함과 야벳의 모든 족속이 예수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도록 설계한 비경이다. 성경은 모든 민족을 대표하여 이스라엘을 하나의 사례로 삼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초점을 맞춰서 읽고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할 말씀이다.

성경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과 흑암의 악한 영의 세력까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역사하고 있음을 기록한 경전(經典)이다. 즉 개인사는 물론 민족과 우주와 어둠의 영의 세계까지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순종해야 할 경전 중의 경전인 비경이다. 성경을 읽어야만 내가 누구인지 우리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떠나서 구원을 줄 아무 인간이나 종교나 철학은 없다. 때로는 귀신들도 떠드나 귀신일 뿐이다.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1~23) 고 하였다.

여러분들 중에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모르면 내 마음이 늘 허전하며 두렵고 마음에 평안이 없는 것을 알 것이다. 부모를 모른 채 외국에 입양된 젊은이들이 뿌리를 찾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자신을 낳은 부모가 그리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내 정체성을 알고자 하는 이유다. 정체성은 뿌리이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를 모르면 그 삶이 열매가 없이 사라져간다.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다.

믿는 자의 정체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데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내가 어떻게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된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다. 믿음 생활은 말씀과 기도와 행함 있는 삶이며 삶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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