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찬양사역자 강은정 자매
탈북민 찬양사역자 강은정 자매가 간증을 하고 있다. ©에스더기도운동 영상 캡처

에스더기도운동(대표 이용희)이 22일부터 26일까지 5일간 제31차 ‘복음통일 컨퍼런스(북한구원 금식성회)’를 원주시 치악산 명성수양관에서 개최한다. 셋째날인 24일 오후에는 탈북민 찬양사역자 강은정 자매가 ‘북한의 실태, 대한민국의 교회와 기도가 절실한 이유’라는 제목으로 간증했다.

강 자매는 “한국에 온지 벌써 17년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사람이 되었다”며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알수록 길을 가다가도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한다. 북한에서 살 때와는 정반대의 삶이며, 삶의 질이 하늘과 땅 차이”이라고 했다.

이어 “저는 9살 때 배고픔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 1990년대 중후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다 무너지면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며 “4일을 굶었던 것 같다. 식량이 부족해서 가족들이 다 식량을 구하러 집을 떠나고, 할머니와 저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 4일을 굶어 정신을 잃게 되었다. 사람이 오래 굶으면 졸음이 오고 정신을 잃게 되고 심하면 목숨까지 잃는다. 제가 깨어보니 아버지께서 때마침 식량을 구했는데, 저를 흔들어 깨워 옥수수를 갈아 죽쒀서 먹여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의 생존본능으로 죽었다 살아나니 다신 죽고 싶지가 않았다. 12살 때 집 안에 중요한 물품을 팔아 밥 장사를 할머니께 제안했다”며 “그래서 밥을 해서 노상인들 상대로 장사를 했다. 학교에 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어머니들 자체가 교육을 포기했다. 우리는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고난의 행군은 나라 전체를 도둑으로 만들었다. 처한 환경이 중요하다. 모두가 도둑이 될 수 있다”며 “그런데 북한 주민 350만 명이 죽어 나갈 때, 금수산태양궁전을 짓는데 9억 달러나 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의 생명과는 상관 없이 체제만 바로 서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공산주의”라고 했다.

이어 “북한은 지금도 세뇌, 즉 사탄에게 잡혀서 어디로 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고통에 체질화 되어 살아가고 있다”며 “저는 굶지 않으니 학교를 졸업하고 기동예술선전대에 들어갔다. 무보수의 일이었기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알고 지낸 언니 한 명이 중국에 가서 6개월만 일해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얘길 듣고, 부모님께 편지 한 장을 남겨 놓고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친구 한 명과 같이 떠났다. 두만강을 지나갈 쯤 누군가가 저의 목덜미를 잡았었다. 그 순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배신자를 색출하는 일에 내가 걸렸구나’하는 생각에 죽음을 예감했다”며 “그런데 귓가에 들리는 말은 ‘중국에 가면 잡혀 나오지 말고 잘 먹고 잘 살아.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해줄께’라는 말이 들렸다. 기도라는 말을 처음 듣고 뒤돌아보니 국경경비대 군인이 서 있었다”고 했다.

강 자매는 “그렇게 연길에 도착했다. 북한과는 정반대의 세상이었다. 너무 잘 사는 도시였다”며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일을 소개해준 언니는 이미 중국과 비밀리에 연계를 해서 불법 장사를 하며, 저 같은 처자들을 돈을 벌게 해 주겠다고 속이고 팔아넘기는 일을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저와 친구는 각각 적당한 가격에 팔린 것이다. 인신매매 브로커들에 의해 강제북송도 될 수 있는 처지가 된 것”이라며 “거기서 한 조선족 가정을 알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탈북민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정보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북한이 얼마나 잘못된 나라인지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에 너무 가고 싶은 소원이 생겼다. 한국에 가기 위해 도망쳐야 했지만 방법이 없어 우울증에 시달렸다. 저를 샀던 조선족 가정의 한 사람이 ‘기도하라’라는 말을 했다. 저는 무슨 뜻인지도 모른채 세 가지를 기도했다”며 ‘도망 칠 수 있도록’, ‘한국으로 갈 수 있도록’, ‘부모님이 굶지 않고 한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기도했다”고 말했다.

이어 “간절히 3일을 기도했는데 응답이 왔다. 일본으로 가는 조총련 후손의 언니가 연락이 와서 일본을 가는데 한국 갈 것을 제게 제안했다”며 “그분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2008년 12월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캄보디아를 방문했는데,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강 자매는 “한국에 왔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식당 홀써빙을 하며 돈을 모았다. 그리고 몸이 아플 땐 주기도문을 외웠다”며 “신기하게도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이후 부모님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돈을 보내니 굶지 말고 지내라’는 말을 전했다”고 했다.

그러나 “제가 브로커에게 알려준 집주소가 북한 보위부에 전달되었고, 부모님은 잡혔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이후 북한당국으로부터 심한 고문을 당하다 돌아가셨다는 얘길 듣게 되었다. 살 소망이 없어 자살을 결심했다. 그러던 중 한국에 사는 한 언니의 전화가 왔고, 죽기 전에 만나게 되었다. 작은 관심이 한 생명을 살린다는 것을 이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언니, 오빠들이라도 살려야 겠다는 생각에 저를 속여 팔았던 브로커와 연락을 해서 돈을 지불하고 만날 수 있게 되었다”며 “그런데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한국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지만 한국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마음을 바꿀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저는 가족들에게 주기도문을 알려 주었다. 지금은 가족들이 교회를 잘 다니고 있다”며 “그런데 한국에 와서 어머니는 큰 병을 앓았다. 의사로부터 손쓰기 어렵다며 마음에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 중환자실에서 회개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의사로부터 수술하지 않고 약만 잘 먹어도 좋아질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약을 드시며 뇌출혈 없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자매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성령을 통해 저를 인도하셨다. 지금도 3만 4천 명의 탈북민이 있지만 이 중에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분들도 있다. 잘못된 체제로 인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잃어버렸다”며 “그래서 북한 사람들을 전도할 때 가르치기보다 그들을 섬겨야 한다. 저의 신앙의 멘토가 있다면 한 집사님이다. 그분의 삶을 통해 저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아울러 “올해 하나님께서 탈북민 예술인들을 전도하라는 마음을 저에게 주셨다”며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은 북한 땅을 향한 영혼구원을 이루어 가신다. 대한민국의 모든 크리스천들과 교회들이 준비가 된다면 복음통일은 멀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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