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성천교회 담임목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이 전 세계의 결속을 모으는 연설을 하러 방송국에 가야 했다. 그가 택시를 잡았다. "BBC 방송국으로 갑시다!"

운전수가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오늘 저는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왜요?"

"한 시간 후에 방송되는 윈스턴 처칠경의 연설을 들어야 하거든요."

그 말을 들은 처칠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1파운드짜리 지폐를 꺼내 운전수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운전수가 처칠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타십시오, 손님. 처칠이고 뭐고, 우선 돈부터 벌고 봐야겠습니다."

상황에 따라, 필요에 따라, 돈에 의해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세상이다.

교인들에게만 온통 빠져 있는 남편 목사님에게 괜스레 짜증이 난 사모님이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지만, 뭔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어느 날 남편 목사님에게 물었다.

"교인과 내가 동시에 물에 빠졌다면, 당신은 누구를 건질 거에요?"

철부지 사모의 말이려니 생각하면서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얼버무려 위기를 모면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다.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당연히 당신부터 구하지. 그러나 교인은 당신이 구해야지!"

사실 난감할 때가 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니.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그렇다. 대기업 총수로서 넓은 세상, 할 일이 오죽 많겠는가?

할 일이 많다 보니 사람들이 우왕좌왕할 때가 있다. 아니 뒤죽박죽인 때도 많다. 가야 할 곳이 너무 많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만날 사람은 왜 그리 많은가? 그래서 헷갈린다. 어떤 선택이 가장 좋을지.

사람들은 저마다 분주하게 살아간다. 알고 보면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가정주부에게 물어 보라. 아니 어린 아이들에게 물어 보라. 아니 백수에게 물어 보라. "당신은 한가하냐?"고.

이런 인생 살이 속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분주하고 쫓기는 삶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급한 일을 좇아 정신없이 우왕좌왕 살아가지만, 실속 없는 삶일 수가 있다.

할 일이야 많겠지. 그런데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것'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양보할 수 없는 일.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일. 그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열심히 사는 것도 좋다.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것도 좋다. 그러나 방향이 잘못 설정되었다면, 어쩌면 부질없는 짓일 수 있다. 아니 큰일 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 무엇이 더 우선적인 것인지, 뭐가 덜 중요한지를. 중요한 것을 미뤄놓은 채, 덜 중요한 일에 매여 분주하게 살아간다면, 그건 어리석은 삶이다.

신학자 존 네이스빗은 말한다.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하면, 삶의 목표에서 멀어진다."

예수님은 늘 우선순위를 따라 살아가셨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먼저 기도하셨다. 늘 사람에게 관심을 두었다. 뿐만 아니라 제자가 되려는 자에게 우선순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찰스 휴멜 역시 우선순위에 대해 역설한다. "우리들이 삶에서 만나는 온갖 딜레마들은 시간과 물질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일의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함에서 온다."

시간이 없어서 늘 허둥대며 급한 일로 쫓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쉴 틈도 없이. 그러나 가던 길을 멈추고 한 번쯤 점검해 봐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말한다. "육체보다는 영혼이 더 중요하지?"

그러나 실제 삶 속에서도 정말 그럴까? 우리의 우선순위를 보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아예 주일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먹고 사는 게 힘든 모습 때문에 마음이 짠하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이 된 그들의 삶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때로는 십일조와 생활비, 아이들 학원비 때문에 주저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럴까? 그런데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하다. 하나님의 것을 먼저 떼어놓는 믿음의 결단을 내릴 수는 없을까? 우선순위의 문제인데.

우선순위가 바로 정해졌는가? 그 다음에는 우선순위를 따라 살아가기 위한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물론 손해 볼 각오도 해야 한다. 어려움이 닥쳐올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 청년 바보의사>라는 책의 주인공인 안수현이 생각난다. 그는 군의관 시절 환자들을 돌보다가 유행성 출혈열에 감염되어 결국 33년의 일기장을 고이 덮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로 전국의 의사들이 파업을 했다. 그때 그는 고대병원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었다. 모든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했다. 그런데 그는 병원에 남아서 환자들 곁에 있었다. 서열이 엄격한 의사 세계에서 자칫 찍힐 수도 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떤 손해를 볼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하루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한 끼를 먹어가면서 환자들을 돌아보았다. 결코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환자들을 두고 병원을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우선순위는 환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본과 시절, 그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 직면해야 했다. "네가 날 위해 시간과 마음을 포기한다면, 내가 정말로 기쁘게 그 예배를 받겠다. 하지만 너는 그로 인해 성적이든, 이성교제든, 사람들과의 관계든, 무엇에선가 분명히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도 내게 그 부분을 주겠니?"

시간 전쟁을 하는 본과 3학년 1학기 때도 예과 1학년들의 성경공부 리더를 하기로 결정했다. 시간 전쟁을 하면서 왜? 그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일에 있었다.

어디 그뿐인 줄 아는가? 우선순위를 따라 살아가기 위해 한 학기 동안 교제하던 자매와 주중에는 만나지 않기로 했다. 인간적으로 손해를 보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는 뚝심 있게 하나님 편에 서는 결정을 내렸다. 우선순위를 설정하기 위해 그는 즐거움을 유보하는 연습을 해야 했다. 일상생활에서 기꺼이 손해 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 시기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 보면, 결코 손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때 내린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그러한 청년 의사 안수현을 추억하며 말한다. "잠깐 내 곁에 왔다 간 예수님 같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무모한 모험을 할 때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예기치 못한 황홀한 결과를 맺게 하신다. 아니 황홀한 미래로 보상하지 않으면 어떤가? 그게 하늘나라 시민의 삶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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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칼럼 #우선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