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약학회 신진학자 논문 발표회
한국신약학회 신진학자 논문 발표회 단체 사진. ©한국신약학회

한국신약학회(회장 이민규)가 최근 연세대학교 원우두 신학관에서 신진학자 논문 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김두석 박사(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와 이현주 박사(에모리대학교)가 발제했다.

먼저, ‘묵시적 바울: 역사적 연구의 개요와 제안’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김두석 박사는 “묵시적 바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며 “묵시는 ‘드러남’ 혹은 ‘계시’로서, 영어로는 apoclayptic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이 단어를 형용사로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명사의 형태로 이해할 것인지에 따라 묵시적 바울은 다르게 정의된다”고 했다.

한국신약학회 신진학자 논문 발표회
김두석 박사가 발제를 하고 있다. ©한국신약학회

김 박사는 “형용사로 이해하는 경우에는 ‘묵시적 종말론’의 정의를 취하는데, 이것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차이, 최후의 심판, 악의 멸망과 의인의 구원과 같은 마지막 때에 벌어질 일에 대한 바울의 신학적 기초를 유대주의 묵시사상에서 발견하려 한다”며 “묵시적 바울 연구의 상당 부분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고 했다.

이어 “반면 이 용어를 명사 형태로 이해하는 학자들은 이를 ‘묵시문헌’(apocalypse)과 혼용한다”며 “롤랜드(Christopher Rowland)는 묵시를 종말론으로 국한하는 기존의 연구에 반대하며 묵시를 ‘드러난 신비’(revealed mysteries)로 정의한다. 이와 같은 정의는 묵시를 단순히 종말론으로 한정한 이해를 벗어나 텍스트의 형태로 판단하며 지혜서 안에서도 묵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제안하며, 이것은 고대 유대주의 묵시문헌과 지혜서에 나타난 천상의 세계로의 여행, 악의 기원과 영향력, 부활과 환생과 같은 요소와 바울의 서신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또한 “마지막으로 이 단어를 ‘묵시주의’(apocalypticism)로 정의하기도 하는데, 이 움직임은 1979년 스웨덴 웁살라(Uppsala) 대학에서 개최된 묵시주의 콜로키움 이후에 묵시를 사회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동향”이라며 “이와 같은 이해는 묵시를 바울 공동체의 저항적 행위를 지지하는 사회적 이념으로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는 상당수의 연구가 유대주의 문헌과 바울의 서신을 비교하여 바울의 묵시 사상의 근원과 핵심을 제안하려는 시도를 한다”며 “하지만 특정 문헌과 바울서신을 비교하여 바울의 묵시사상의 기원을 제안하는 방식의 적실성 논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면서 “이에 묵시적 바울에 대한 정의와 연구의 패러다임을 제안하면 첫째, 바울이 사용하는 묵시적 요소들은 바울 시대의 문화 안에서 널리 퍼져 있는 담화”라며 “다시 말해서 묵시는 문화담화의 한 형태로서 동일한 시대에 다양한 문헌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묵시사상이 그 기원을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 안에서 발전해 왔으며 다양한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했다.

또한 “다양한 문헌이 묵시담화를 공유한다는 것은 묵시에 관한 유사한 이해와 이미지가 그 시대 안에 공유되고 있음을 증명한다”며 “바울 역시 그의 시대에 널리 공유되던 담화의 형태를 자신의 서신 안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둘째, 바울이 표현하는 문화적 담화로서 묵시는 매우 큰 차별성을 보이는데, 그것은 그의 모든 묵시담화가 예수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것”이라며 “동일한 묵시담화가 사용되는 다른 문헌에서는 각각의 담화가 독립된 특징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세 가지의 묵시담화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통합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을 보여준다”며 “바울에게 묵시는 세상, 죽음, 구원, 인류의 운명을 총망라한 사상의 핵심이며, 그리스도는 바울이 이해하는 묵시의 구심점”이라고 했다.

이어 “바울은 문화 안에 존재하는 묵시라는 담화와 자신의 사회적, 영적 경험 사이에서 상호텍스트적 작용을 통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다”며 “그 중심에 그리스도가 자리한다는 것이 바울의 묵시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는 “비평적 제언을 하자면 먼저, 다양한 정의와 접근방법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약학자들은 여전히 유대주의 종말론 관점에서 바울의 묵시사상에 접근한다”며 “오히려 바울의 사상이 묵시적이라는 것은 감춰진 비밀이 드러나 바울의 신학과 사상을 형성한 계시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둘째로 현재까지 많은 연구가 바울의 묵시사상의 기원을 밝히는 노력을 해왔다”며 “묵시적 바울의 지배적인 연구동향은 특정 문헌과 바울의 서신을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 바울의 묵시사상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유대주의와 헬라주의의 이원화에 대한 편견에 기인하며 바울의 묵시 사상의 근원을 특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나온 결과”라며 “묵시사상은 다양한 문헌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며, 바울의 시대 뿐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고대근동지역에서 발전해왔다. 더욱이 각각의 문헌은 핵심적인 요소를 공유함과 동시에 다양성과 독특성이 드러난다”고 했다.

김 박사는 “결론적으로 바울에게 묵시란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며 감춰진 비밀들을 이해하는 그의 사상적 기반이 된다”며 “특히 그리스도는 바울의 묵시사상의 구심점이 되어 문화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묵시의 모든 요소들을 새롭게 이해하게 하였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율법의 기능과 역할, 인류의 구원과 종말, 세상의 끝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관하여 그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해의 틀이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새롭게 형성되었다”고 했다.

이어 “바울에게 묵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형성하게 된 그의 신학의 핵심이며 바울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하는 척도”라며 “바울은 그 담화와 자신이 경험한 그리스도의 계시를 상호텍스트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복음을 제안하였다”고 했다.

아울러 “바울의 묵시사상은 그가 경험한 그리스도의 계시와 바울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문화적 담화 사이에 일어난 상호텍스트성의 결과인 것”이라며 “그러므로 바울의 묵시담화와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문화담화 사이의 상호텍스트적 연구를 통하여 바울이 나타내는 이질성을 발견할 때, 우리는 바울의 묵시사상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신약학회 신진학자 논문 발표회
이현주 박사가 발제를 하고 있다. ©한국신약학회

이어 두 번째로 ‘마태복음의 겟세마네 기도(마 26:36~46)와 ‘자기 비움’의 그리스도론’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이현주 박사는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율법을 가르치시며(23:8) 그 내적 의도를 해석하시는 권위 있는 교사로서(22:35~40),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더 큰 의로움(5:17~20)을 이루고자 하시며,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에 몸소 순종하시는 아들로서 나타난다”고 했다.

이 박사는 “그렇다면 수난 직전 겟세마네의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과 다른 ‘나의 뜻’을 언급하며 슬퍼하신 장면(막 14:32-42; 마 26:36-46; 눅 22:40-46; 요 18:1 참조)을 해석자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이어 “죽음을 의연하고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초연함(apatheia)로부터 인간의 초월성을 발견했던 그리스-로마 문화에 따르면, 겟세마네의 예수는 신의 아들로 여겨질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2세기 철학자인 셀수스의 기독교 비판에 따르면 겟세마네 예수께서는 자기의 죽음 앞에 초연하기는커녕 혼란스럽고 유약한 모습을 보이며 이를 피하고자 한다”며 “이는 죽음을 초연하게 대하는 그리스-로마의 초월적 인간상과 대비되어, 그를 신의 아들로 믿는 초기 기독교의 주장에 걸림돌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셀수스 이후 오랫동안 이어진 이 질문에 대하여 현대 해석자들은 소위 유기론에 입각한 극적 순종을 주장한다”며 “그들은 본문에 드러난 슬픔과 고뇌가 역사적 예수의 생존 욕구를 나타내는 표현들이었을 것으로 주장하는데, 반복되는 기도와 이에 대한 무응답, 심화되는 고립 속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의 뜻,’ 즉 생존 욕구를 내려놓으셨다고 본다”고 했다.

또 “이들에 따르면 마태 기자는 대속을 위해 아들을 버리시는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뜻을 버리는 아들의 극적 순종으로부터 예수의 그리스도성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이러한 현대적 해석에는 ‘아버지의 뜻이 대속을 목표로 아들의 생명을 버리는 데 있었다’는 신학적 전제가 숨어있다”며 “그러나 문학적 흐름의 측면에서, 해당 전제는 먼저, ‘아버지의 뜻’을 예수의 수난에 연결할 마태복음 내 본문 근거가 부재한다는 점, 둘째로 마태복음의 수난예고를 바탕으로 볼 때 ‘나의 뜻’을 예수의 생존 욕구와 연결시키기 어렵다는 점, 셋째로 아들을 버리시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마태복음의 하나님 이미지와 모순된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어 “먼저, 마태복음 기자는 본문 어느 곳에서도 아버지의 뜻과 예수의 수난을 연결하지 않는다”며 “복음서의 흐름상 ‘나의 뜻’을 예수의 생존 욕구와 연결시키기 어렵다. 겟세마네에 오르시기 전 예수께서는 이미 세 번이나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신다(마 16:21-28; 17:22-23; 20:17-19)”고 했다.

더불어 “마태복음의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대속적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묘사되며, 이러한 문학적 흐름 상 겟세마네 본문의 ‘나의 뜻’이 예수의 생존 욕구를 나타낸다고 해석하는 것을 복음서 흐름상 불협화음을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기설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마태복음 기자가 그리는 하나님의 상과 불일치한다”며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1:24)을 상징한다. 사역 내내 예수께서는 신적 임재의 상징으로서, 병든 자를 고치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신다”고 했다.

그녀는 “마태복음의 겟세마네 기도를 유대 선지자들의 회개기도 전통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면서 “그리고 히브리 성서에서 종말적 심판의 상징으로서 쓰이던 ‘잔’ 모티프를 함께 고려하면, 예수의 기도는 단순히 개인의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기도가 아니라 종말적 심판을 앞둔 이스라엘을 위해 드리는 예언자의 탄원 기도로 읽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예수의 자기 비움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두 가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며 “하나는 심판의 지연을 위해 인간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며 기도하실 뿐 아니라 대속을 위해 자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줄 의지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희생으로 인한 대속의 가능성과 상관없이 그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바람으로써 구원에 관한 자신의 인간적 판단과 주관을 비워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을 전부 비우고 그 안에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예수의 이미지는 에스겔이나 Words of Luminaries, 감사 찬송시의 화자들이 추구했던 이상적 인간의 전형으로서, 일찍이 성령을 받았으며(3:13~17) 자기 마음을 다시금 비워 아직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뜻을 그 안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겟세마네 기도의 이해는 바로 이어지는 수난을 이해하는 시각을 제공한다”며 “이 관점에 따르면 예수의 수난은 수치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앞서 약속하신 능동적이고 신실한 자기 결단을 성취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고 했다.

특히 “예수의 죽음 직후 마태 기자는 신 현현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무덤이 열려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했음을 보도한다”며 “죽음을 피할 수 없이 육신에 사로잡히는 존재였던 인간들이 예수께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자유로워진 순간을 그리며, 마태복음은 아버지께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모두 내어드린 예수의 자기 비움이 결과적으로 인간의 구원을 가져왔음을 암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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