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
학술대회 모습. ©노형구 기자

이승만 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통칭하는 것은 무리이며, 오히려 반(半)민주주의 정권(semi-democratic)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우호문화재단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개최한 학술회의에서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이철순 교수는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이승만 정권을 단순히 독재정권이라고 부르는 것은 김일정 독재, 스탈린 독재, 히틀러 독재와 같은 일당 독재의 전체주의 체제로 오해할 수 있다”며 “이러한 인식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했다.

정치학자 스콧 메인웨어링의 분류표에 따른다면, 이승만 정권은 독재가 아닌 半민주주의 체제에 가깝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메인웨어링 교수는 민주주의 체제를 성숙도에 따라 민주주의-半민주주의-권위주의로 분류했는데, 선거 및 언론·출판·결사의 자유 등에서 중대한 위배가 있는 경우는 권위주의 체제로, 부분적인 위배가 있는 경우를 半민주주의라고 보고 있다”며 “이승만 정권은 위 두 가지에서 ‘부분적인 위배’가 있으므로 半민주주의에 가깝다”고 했다.

이어 “이승만 정권은 유권자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의회 해산 등을 하지 않았으며, 당시 동아일보·사상계 등 언론들이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언론 출판의 자유는 보장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또한 이승만 정권 연구 권위자 이정복 서울대 정치학과 명예교수를 인용해 “제1공화국 시대의 낮은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 초기 단계의 근대국가건설 수준, 자유민주주의 실현에 필요한 정치적 전통과 구조의 결여, 한국전쟁이라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일반적인 허용 수준보다 높은 수준의 정치를 지향했고, 적어도 외양적으로는 형식적 자유민주주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3.15 부정선거로 판명 났던 1960년 선거를 제외한 나머지 1948년·1950년·1954년·1958년 총선과 1952년·1956년·1960년 정부통령선거를 보면, 행정부나 경찰의 개입이 일부 있었으나 정부가 선거 승리를 보장하려 사기, 조작, 명백한 억압을 통해 야당 자체를 선거 경쟁에서 몰아냈던 경우는 없었다”며 “1956년 장면 부통령 당선 등 야당 인사들의 정계 진출 사례도 더러 있었다”고 했다.

당시 미국대사관의 보고서는 한국의 선거 과정 추이를 지켜보며 “동아시아에서 민주적인 정부형태가 일보 전진했다” “한국 유권자들의 정치의식 성장” 등으로 평가했다며 “당시 주한미국대사 월터 다울링은 선거 부정행위 사례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결정적으로 선거 결과를 완전히 왜곡하지는 않았다고 봤고, 선거에서 야당의 경쟁 자체가 무력화되지는 않았다고 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또 “엄연히 한민당, 민국당, 민주당 등 야당이 존재했었고 비록 견제와 탄압을 받았지만, 선거경쟁에 참여하는 등 독재 정권처럼 주요 정당 결성이 금지되거나 하나의 정당만 존재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야당 성향의 언론매체 일례로 동아일보, 경향신문, 사상계 등은 일부 정간 조치를 제외하면 상당한 표현의 자유를 누렸다. 당시 4.19 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사상계에서 운동의 성공 요인에 대해 ‘언론기관에 공을 돌린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이승만 정권에 꾀 비판적인 언론인 송건호 씨도 ‘언론탄압도 심했지만 그것에 저항하는 언론자유도 어느 만큼 누리고 있었다’고 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승만 정권이 선거에서 참정권 제한과 야당의 경쟁 무력화, 주요 정당의 결성 금지 그리고 야당 성향의 언론매체에 대한 체계적 검열이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미뤄볼 때 김일성, 히틀러, 스탈린와 같은 독재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라며 “정치학자들도 이승만 정권을 일당독재의 전체주의 체제와 구별해 비민주주의 체제인 권위주의 혹은 반민주주의로 평가하고 있다”라고 했다.

나아가 “2차 대전 이후 신생독립국가들은 국가안보, 경제발전, 민주주의 달성이라는 세 단계를 밟았다”며 “그렇게 본다면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이 국가안보라는 신속한 과제를 달성한 후 경제발전을 거쳐 민주주의 단계로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철순 교수는 “이승만 정권은 1953년 당시 1인당 GNP 73불 등 여러 사회·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 표현의 자유 등 높은 수준의 형식적 자유민주주의를 수립했다. 학계에 따르면, 당시 비서구권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이뤄낸 나라는 인도 코스타리카 일본 등 고작 4개 국가에 불과했다”며 “이승만 정권이 이처럼 외형적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청년 시절부터 견지해온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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