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5년 만에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복귀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관계의 특수성 등을 이유로 2019년부터 4년 연속으로 빠졌던 우리나라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복귀는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 기조를 국제사회에 재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달 27일 시작돼 다음 달 4일까지 열리고 있는 유엔 인권이사회 제52차 회기 중에 채택될 예정인 ‘북한인권결의안’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있다. 이번 결의안 초안에 국군포로 문제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 등 우리와 관련된 내용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초안 중에 “유족들과 관계 기관에 (피해자의) 생사와 소재를 포함한 모든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것을 북한에 촉구한다”는 내용은 지난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으로 살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 씨 유족과 우리 정부의 요구 사항을 상당 부분 반영한 대목으로 읽힌다. 또 “북한으로 송환되는 북한 주민들이 강제 실종, 자의적 처형, 고문, 부당한 대우 등을 포함한 그 어떤 인권 침해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한 건 문 정부 당시인 2019년 탈북 어민 강제 북송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번 북한인권 결의안 초안에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북한이 남한 등 외부문화 유입을 차단할 목적으로 만든 ‘반동사상문화배격법’ 관련 내용이 새로 포함됐다는 점이다. 결의안 초안엔 “온·오프라인에서 사상·양심·종교·신념의 자유와 의견·표현·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러한 권리를 억압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포함한 법과 관행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북한은 한국을 비롯한 외부에서 제작된 콘텐츠 일체를 소위 ‘반동사상문화’로 규정하는 동시에 엄격히 금지할 목적으로 2020년 12월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다. 한류 등 모든 외부문화, 종교, 자본주의적 생활방식 등 북한 당국의 규범에 맞지 않는 행동을 제재하는 내용인데 사실상 김정은의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뿌리 뽑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 법이 2021년 제정된 ‘청년교양보장법’, 올해 제정된 ‘평양문화어보호법’과 함께 김정은 체제의 3대 사회통제 악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최근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한국 드라마 등 한류의 영향으로 생일에 케이크를 먹는다든가, 동료를 ‘동무’라 부르지 않고 연인에게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런 풍조가 한류 등의 유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집중적으로 단속해 왔다. 그래도 북한 전역으로 퍼져나가자 체제에 위협을 느껴 이런 희대의 악법을 제정하게 된 것이다.

북한 당국은 이 법을 크리스마스 등 기독교 문화를 차단하는 데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뿐만 아니라 외국 주재원들까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적용해 간부들과 그 가족을 벌벌 떨게 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북한이 기독교 문화를 대표적인 ‘반사회주의사상문화’로 규정해 배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이런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유엔 인권기구가 심각하게 보고 있는 건 단지 그 내용의 반인권적 측면만이 아니다. 이 법을 어긴 주민에게 가해지는 형벌이 가히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한류를 유포하면 최대 사형,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면 최대 징역 15년형에 처하는 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잔혹 그 자체다.

북한이 주민들에게 이토록 끔찍한 문화 탄압을 가하고 있다는 건 외부문화 유입이 체제를 위태롭게 할 지경에 다다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까지 금지하고 있는 마당에 초유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까지 만들어 가혹한 처벌을 할 정도면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건 북한 당국이 이런 법을 만든 것도 부족해 처벌 수위를 높이는 더 센 법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 형법이 처벌 규정과 범위를 정하고 있음에도 이걸로는 부족해 점점 더 형량을 높이고 처벌의 방법 또한 갈수록 잔혹해지는 건 인권 탄압 외에 다른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인민을 위한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이 주민을 위한 법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막는 법 제정에 혈안이 돼 있으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북한의 심각한 인권 탄압 실태에 주목해 전신인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지난 2003년에 처음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뒤 2005년까지 3년 연속 채택했고, 2008년부터는 인권이사회에서 해마다 채택해 왔다. 이 결의안이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전 세계가 북한의 인권 탄압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상의 대북 압박 수단도 없다. 이런 효과와 함께 전 세계에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리고 개선을 위한 역량을 결집해 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지난 문 정부는 2019년부터 4년 연속으로 공동제안국에 불참했다. 한반도 정세와 제반 상황 등을 고려했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인권을 중시하는 문 정부가 북한 주민의 인권은 외면하고 독재자를 감싸고 도는 외교정책으로 일관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복귀는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다. 과거 지속적으로 공동제안국에 참여해 온 우리 정부로서도 새로울 게 없는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일 뿐이다. 정부의 이번 결정이 대북 인권 개선 의지를 표명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와의 공조와 연대로 탄압받는 북한 주민의 삶의 한 줄기 빛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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