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목사
이태희 목사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를 통해 의롭다 함을 받고, 거룩하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속죄 제사의 의미를, 그 십자가 제사의 능력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와 같은 믿음을 통하여 우리 모두의 죄가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3:27-28)

바로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거룩의 회복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지식이다. 오직 믿음의 법으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되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를 통한 대속의 은혜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 모두는 의롭다, 거룩하다 칭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칭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믿음”이요, 이와 같은 믿음을 우리는 “회개”라고 부른다. 바로 이 영적인 지식이 없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1:9-10)

그렇다면, 회개로 끝인가? 아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한다. 이 지식이 없어서 우리의 회개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눅3:7-8)

그렇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무엇인가? 회개한 삶이다. 회개한 행위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칭의는 길가에 널부러져 있는 돌맹이와 같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돌멩이를 가지고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려고 하면 물건을 내줍니까? 마찬가지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회개를 가지고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바로 이 지식이 없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아, “거룩하다 함”을 받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면, 그 구원 받은 자에게서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삶의 열매가 나타나야만 한다. 우리는 그와 같은 회개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성화” 또는 “거룩한 삶”이라고 부른다.

“거룩하다 칭함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거룩하다 칭함을 받은 사람의 삶에 실제로 “거룩한 삶”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칭의는 돌멩이와 같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그래서 아무런 효력이 없는 가짜인 것이다.

거룩하다 칭함을 받았다면, 그래서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라면, 그 사람의 삶은 실제로 거룩한 삶으로 변화되어져 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의 합당한 열매요, 바로 이 열매를 보고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3:3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6:1-2)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들어 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히10:28-31)

그래서 성경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거룩을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 뿐 아니라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애씀”이 필요하다. 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9:26-27)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히3:12-14)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히3:15-19)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히4:1-2)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4:1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후7:1)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실질적인 “의로운 행위”를 통해 거룩에 이른다. 그리고 이 거룩이 없이는 참된 구원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의 행위를 통해 거룩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믿음으로 거룩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오직 “믿음의 행위”를 통해 거룩에 이른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의 실제적인 의로운 행위만이 우리를 거룩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5:17-20)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