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환 목사
김요환 목사

오늘날 탈종교화 시대를 맞이하여 사람들이 종교성을 잃어간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종교학자 존 카푸토의 분석에 따르면, “21세기는 종교다원주의도 아니라 종교 그 자체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시대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분석은 팩트입니다. 잘못된 분석이 아니라, 정말 그렇습니다.

비단 우리 개신교뿐 아니라, 가톨릭과 불교도 젊은 층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와 가톨릭은 나름의 방법으로 종교기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령 한국 불교는 문화재 보존비 명목으로 나라에서 돈을 지원받기 때문에 젊은 불자들이 안 모여도 종교기관 유지에 있어서는 큰 타격이 없을 겁니다. 로마 가톨릭은 서울 교구에 23명의 사제가 필요한데, 새로 서품받은 사제 수가 9명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에서 제3국의 사제들을 파송시켜서 그 인원을 채워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한국 개신교회입니다. 대책이 없고 속수무책입니다. 과거에는 교회가 문화를 주도하면서 부흥하기도 했으나 현대에는 세상의 화려한 문화를 교회가 따라가기 벅찹니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들에게 종교성은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여전히 종교성은 남아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고도 오늘날 가장 호황을 누리는 종목은 바로 무당과 타로 점집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점보는 사람들 수는 늘어난다고 합니다. 타로점도 덩달아 인기입니다. 대한경신연합회 관계자에 따르면 2006년도에 13만 명이었던 무당의 숫자가 22년도에 이르러서는 무려 30만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원인에 대해서 사회학에서는 청년들의 실업률 증가에 있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직장이 없다고 무당이 될까요?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무당이 증가하는 것은, 수요가 많다는 뜻입니다. 즉, 점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무당이 늘어납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들에게 종교성이 없는 게 아니라, 가르침을 주는 고등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주된 원인입니다. 경전과 가르침이 있는 종교는 필연적으로 윤리성을 요구합니다. 윤리와 도덕은 사람들에게 구속감과 불편함을 주기 때문에, 언제나 죄와 타협해가는 문명 시대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중에서 기독교 신앙의 복음과 은혜의 법칙, 그리고 구원받은 자의 삶은 가장 관심 밖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윤리나 도덕이 아닌 복음의 은혜이기에 자유함과 해방감을 주지만,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모르거나, 오해함으로 기독교 신앙을 멀리합니다. 열심을 다해 선교하고 전도해도 사람들은 복음을 거부합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가 세상보다 더 나은 윤리적 모습을 보이지 못해서 이런 현상이 온 것이라 분석하는데, 사실 이 현상에는 보다 영적인 문제가 짙게 깔려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기독교가 실망스럽다고 타종교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무당 점집을 찾아 나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영적인 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날을 통치하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는 부정하고, 그저 앞일 점치는 귀신에게 의지하며 살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삶의 실천과 복음의 기쁨은 거부하면서 신점이나 타로점으로 자기 인생을 계획하려는 이 시대 사람들의 모습은 엄밀한 의미에서 탈종교화를 맞이한 것이 아니라 우상화를 맞이한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최첨단 과학 시대를 맞이하여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면서도 여전히 돼지머리 앞에 고사 지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가고 신실하게 사랑하는 전능하신 구세주 예수님을 거부하고, 겨우 귀신의 힘을 빌려 앞날만 점치며, 세속적 번영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현대인들에게 교회는 다시 복음을 말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40: 23-24)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이사야 선지자의 이 외침은 당시 그 시대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우상에 찌들어 사는 이 현대 세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입니다. 또 시편 기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시115: 3-9)

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4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8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9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이 시대에 불신앙이란, 종교성을 잃어버려 탈종교화 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종교성으로 우상에 의존하여 파멸로 치닫는 것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소망 없는 이 세상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주님의 십자가만이 우상 가득한 이 시대를 이겨낼 능력이 됩니다. 결국 탈종교의 시대라고 포장된 우상시대에 교회가 찾아야 할 사명은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구세주 예수님만을 분명히 선포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김요환 목사(구성감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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