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에게 ‘북한인권재단’이 조속히 출범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지난 정부에서 5년간 방치돼왔던 재단 설립이 가시화될지 주목된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권영세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북한인권재단’ 출범의 조속한 추진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그런 확고한 의지는 앞서 대통령실 강인선 대변인의 19일 브리핑에서도 드러났다. 강 대변인은 “윤석열 정부는 아직도 지연이 되고 있는 ‘북한인권재단’의 출범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국무회의에서 북한인권 국제협력대사 임명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당도 곧바로 호응했다.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인 권성동 의원은 2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북한 ‘정권’보다, 북한 ‘인권’이 먼저”라며 “‘북한인권재단’ 설립에 대한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알렸다. 이날 권 의원은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지 5년이 넘도록 재단 설립이 지연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는 동시에 여전히 비협조적인 야당에 압박을 가한 것이다.

‘북한인권법’은 박근혜 정부 당시 북한의 인권 개선을 목적으로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 등 23명의 의원이 발의해 2016년 3월 2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 제10조 1항에는 “정부는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남북 인권 대화와 인도적 지원 등 북한 인권 증진과 관련된 연구와 정책개발 등을 수행하기 위하여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한다”라고 명문화돼 있다.

정권이 두 번 바뀌도록 출범은커녕 여전히 쟁점이 되고 있는 ‘북한인권재단’은 ‘북한인권법’의 실질적인 이행을 위한 핵심 기구라 할 수 있다. 법이 있어도 북한의 인권 실태 조사와 관련 연구, 정책 개발을 수행할 기구가 없으면 그 법은 있으나 마나다.

문제는 12명 이내로 구성되는 재단 이사 중 통일부 장관이 추천하는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0명의 추천권을 가진 국회의 여야 교섭단체 간의 이견에 발목이 잡혀 있는 정치 현실이다. 여야가 반반씩 동수로 추천하게 돼 있는 재단 이사를 국민의힘은 지난해 2월에 단독으로 추천한 반면에 민주당이 나머지 5명을 추천하지 않아 재단 출범이 마냥 미뤄져 왔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인권법’이 제정되고 나서도 그 법이 아무짝에도 쓸데없게 된 원인은 문재인 정부가 줄곧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북한인권법’이 제정될 당시에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반대하며 따로 ‘북한민생인권법안’을 발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인권을 내세우는 진보 정당이 유독 북한 인권만은 예외로 해 온 건 아이러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 왔는지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에 4년 연속 불참한 것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문 대통령 앞으로 북한의 최근 악화된 인권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보내고, 국제 인권단체들도 서한을 보내 동참을 호소했으나 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까지 이를 외면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북한인권법’에 규정된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을 ‘재정 손실’을 이유로 아예 폐쇄시키는가 하면 북한 인권침해 사례를 수집하는 정부 예산은 대폭 삭감했다. 북한인권대사는 임기 중에 한 번도 임명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최종문 외교2차관은 유엔인권이사회 고위급 기조연설에서 문 정부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해 국내외 북한 인권단체들의 비웃음을 샀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은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열었다. 정부는 그 이듬해 바로 그곳에서 북으로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는 귀순 어민을 강제로 북한군에 넘겼다. 숱한 의혹은 최근 통일부가 당시의 사진과 동영상 자료를 공개하면서 백일하에 드러났다.

남북한이 전쟁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북한 주민이 당하는 인권유린까지 외면하고 침묵하는 건 민주국가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이복형과 고모부까지 잔인하게 처형하는 체제에서 어떤 인권유린 행위가 벌어질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입이 부르트도록 ‘평화’를 외치면서 그들이 겪는 고통을 못 본 체 못들은 체 외면해 온건 반인권 행위의 동조자 내지는 공범이 되기로 작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해를 피해 탈북한 사람을 포박해 강제 북송시키고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 김정은 체제가 더 공고해지도록 도운 게 사실인 이상 미국 의회의 ‘인권 청문회’ 대상이 되어도 솔직히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최소한 같은 혈육인 북한 주민으로부터 더는 믿지 못할 나라로 추락하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여야가 북한 ‘정권’보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먼저 생각한다면 정치권도 ‘북한인권재단’의 출범을 더는 미룰 명분이 없다. 이는 곧 지난 5년간 국제사회로부터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인권을 외면하는 나라라는 불명예를 씻을 더없이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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