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레이너
톰 레이너 목사.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교회 연구가이자 컨설턴트, 교회 리더들을 지원하는 사역 기관인 처치앤서스(Church Answer)의 설립자이자 CEO인 롬 레이너 목사의 기고글인 ‘지역교회는 왜 드러나 있는 듯하면서도 보이지 않는가?’(Why are local churches hiding in plain sight?)를 6월 21 게재했다.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레이너 목사는 다수의 책을 출간했으며 40년간의 목회 경험을 밑거름 삼아, 개교회와 교회 리더십의 영적 성장과 건강을 위해 실제적인 자료와 컨설팅을 제공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한 교회가 수십 년 동안 같은 교차로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어도, 여전히 지역 사회 사람들에게는 낯선 곳으로 남을 수 있다. 건물은 버젓이 눈에 띄고, 그 안에서 예배하는 성도들은 더없이 신실하다.

하지만 지역 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그 교회는 마치 '투명한' 존재와도 같다. 사람들은 무심코 그곳을 지나치고, 바로 근처에 살면서도 아무런 교류 없이 살아간다. 그 교회가 무엇을 믿고, 왜 그 자리에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이러한 '투명성(invisibility)'은 결코 교회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점점 더 흔해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뼈아픈 대가가 따른다. 필자가 단언컨대, 교회가 어떤 곳인지, 왜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결코 먼저 그 문을 두드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는 '사람들이 당연히 알겠지'라는 막연한 착각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존재(Presence)가 곧 인지(Awareness)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 지역 사회에 수 세대에 걸쳐 존재해 온 교회라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을 수 있다. 역사가 깊다고 해서 존재감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교회 건물이 익숙한 길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곧 교회의 사명을 지역 주민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위치는 알지 몰라도, 교회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교회 간판은 볼지 몰라도, 교회의 '목적'은 모른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에게는 이 교회에 관심을 가져야 할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이유가 단 한 번도 주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들은 자신들이 이미 이 지역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기에 사람들이 당연히 알아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필자는 교회가 지역 사회에 자신을 '의도적으로' 소개하지 않는다면, 지역 사회 역시 '무의식적으로' 교회를 없는 셈 치고 지나갈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교회는 외부가 아닌 내부를 향해 소통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의 모든 소통 방식은 대개 '이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 주보의 광고, 이메일, 소셜 미디어 게시물, 심지어 공식 웹사이트조차도 철저히 '내부자들'만이 아는 지식을 전제로 만들어지곤 한다. 우리끼리만 아는 익숙한 언어를 사용하고, 교인들만 아는 행사를 언급하며, 그들만의 공유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교회 밖의 사람들은 전혀 다른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매우 단순하고 솔직한 질문을 던진다:

"나 같은 사람도 갈 수 있는 곳일까?", "내가 가도 환영받을 수 있을까?", "이 교회가 내 삶의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소통의 방향이 철저히 내부로만 향해 있을 때, 외부인들은 마치 자신을 향하지 않은 사적인 대화에 불쑥 끼어든 것 같은 소외감을 느낀다. 누군가를 일부러 배척하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반대로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초대하려는' 노력도 거의 없었던 것이다.

교회가 진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은, '아직 우리 교회에 오지 않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명확한 언어로 소통하는 법을 배울 때다.

익숙함은 맹점을 낳는다



자신의 교회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누군가에게 '처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잊어버리기 쉽다. 기존 성도들은 교회 건물 안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오간다. 교회만의 언어를 완벽히 이해한다. 언제 일어서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음에 어떤 순서가 이어질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새가족들은 그렇지 않다. 내부자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들이, 외부인들에게는 종종 큰 혼란으로 다가온다. "주차는 어디에 하지?",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데려가야 하지?", "이제 무슨 순서가 진행되는 거지?" 아주 사소한 불확실성조차도 남모를 큰 불편함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누구도 새가족을 소외시키거나 불편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는 '정기 출석 교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장벽들을 겹겹이 쌓아 올리게 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교회가 진정한 존재감을 회복하는 길은, '처음 방문한 새가족'의 눈으로 교회를 되돌아보고 그들의 시선에 맞춰 명확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며 응답하는 것이다.

존재감은 단순한 활동(Activity)이 아닌 의도성(Intentionality)을 요구한다

교회 행사 일정이 달력에 빼곡히 차 있더라도, 여전히 지역 사회에서는 존재감이 없을 수 있다. 많은 활동은 교회가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착각을 주지만, 정작 교회 밖 사람들과의 연결 고리는 거의 만들어내지 못할 때가 많다. 단순히 '바쁘다는 것'이 '존재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교회가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지역 사회에 일관성 있게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외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방식으로 소통해야 한다. 성도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일상의 선교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사람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기회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 모든 것 중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단 하나도 없다. 철저히 기획되고, 이끌리며, 오랜 시간에 걸쳐 끈기 있게 지속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만약 당신의 교회가 지역 사회에서 여전히 '투명한' 존재라면, 그것은 결코 당신이 이웃에게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단지 아직 충분히 '의도적'으로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싶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의도적인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교회는 반드시 지역 사회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될 것이고, 환영받게 될 것이며, 그 지역을 위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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