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연합감리교회 김세환 담임목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종려주일입니다. 죽을 자리를 찾아가시는 중입니다. 이제 서른 세 살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삐쩍 마른 어깨 위에 걸머지기에는 너무도 안쓰러운 나이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자신의 존재 이유가 있기에 젊은 예수는 그 길을 묵묵히 지나갑니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가 귓전을 때립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소리는 무자비한 죽음을 부르는 핏빛 아우성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벗어 놓은 외투와 가지런히 펼쳐 놓은 종려나무 가지들이 왕궁의 카펫처럼 바닥을 수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면 이 길이 피와 눈물로 뒤범벅된 "비아 돌로로사"(고난의 길)가 될 것입니다. 이 길의 끝에는 십자가가 서있습니다. 너무도 잘 알지만 , 예수님은 십자가가 당신의 자리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에 어금니를 다져 물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서른 세 살에 유명을 달리한 많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스무 살에 왕위에 올라 세계 정복을 꿈꾸던 당찬 사나이 "알렉산더 대왕"도 전쟁터에서 서른 세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전쟁터는 그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한국교회의 부흥 2기를 이끌었던 "시므언 이용도 목사"도 서른 세 살의 젊은 나이에 강단에서 피를 토하며 말씀을 전하다가 쓰러져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재능과 열정을 아끼던 당시 조선 감리교회 초대 총리사였던 양주삼은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그를 폐결핵에서 구해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용도는 이미 자신의 죽을 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처럼 살다가 예수처럼 죽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이용도는 그의 바람대로 강단에서 마지막 설교를 외치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1950년 10월 16일, 프랑스의 "브장송 컨서트 홀"에서 창백한 얼굴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젊은 음악 천재 "디누 리파티"(Dinu Lipatti)가 쓰러진 나이도 서른 세 살입니다. 이미 열 여섯의 어린 나이에 피아노로 세상을 정복해 버린 그는 악성 백혈병에 시달립니다. 많은 음악인들이 고열에 시달리던 그가 무대에 서는 것을 만류합니다.

그러나 디누 리파티는 자신이 죽어야 할 자리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디누 리파티가 공연장의 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열정을 다해 연주했던 마지막 곡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예수, 인류 소망의 기쁨"이었습니다. 감미로운 그의 피아노 선율 속에 죽음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의 비장한 투혼이 묻어 있는 이유입니다.

자신이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죽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종려주일의 아침은 항상 그 자리를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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